노동자문예운동...“뾰족한 수가 없네요”
이정범 광주전남 보건의료노조 문화부장

이러저런 취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면 몇 번이나 집회에 나갔는지 언뜻 가늠하기가 어렵다. 분명 두 손 두 발로도 모자랄 횟수였을 것이다. 그 투쟁의 의미 하나하나는 가벼이 여길 것이 없지만, 솔직히 매번 신명을 느낄 순 없었다. “좀 달리하면 안 되냐?”라거나 “집회대중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집회방식은 없냐?”라며 볼 멘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마침내 기자는 “노동자 문예운동을 하는 주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에 떠밀렸다. 수소문 끝에 광주의 한 노동자 문예일꾼을 유선으로 만났다.
이정범 광주전남 보건의료노조 문화부장이 그다. 34세 총각이며 비정규직 해고자인 그는 “제가 뭐 압니까” 라고 억양을 낮추며 대번 쑥스러워 한다. 민중가요 중에 가수 박종화의 '나 답게'를 가장 좋아하고 늘 즐겨 부른단다. 노래가 짧아 술자리에서 부르면 안성맞춤이라는 이정범 문화부장.
대중가요는 별로 아는 것이 없고 트로트는 몇 곡정도 알고 있단다. 단견이다 싶지만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연애하기 쉽지 않겠네"라는 어줍잖은 생각이 스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만큼 노동자 문예운동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하게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장은 98년도에 처음 문예활동을 시작했다. 첫삽을 뜨기 이년전부터 문예운동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학교선배가 ‘광주노동자문예운동연합’(광노문연)에 몸담고 있었는데 선배와의 관계를 통해 그도 광노문연과 인연을 맺었다. 광노문연은 현재 14기까지 내려오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처음에는 사람도 무척 많았고 사업장 소속 일꾼들의 분포도 다양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당시는 극패, 소리패, 문학패, 그림패, 풍물패 등 다양한 문화패들이 존재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패, 율동패, 풍물패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도에 영상패가 구성된 정도”라며 씁쓸해 했다.
광주지역에는 금호타이어,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판매 노조정도가 현장활동력을 보이고 있고, 현장에 노조가 있든 없든, 문예활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공단 외각 패’라는 형식으로 모아내는 노력도 기울인단다. 얼핏 기자는 '그 나름대로 짜임새를 갖춘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예활동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했다. "문예활동도 우리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투쟁 자체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다 담아내지 못하는 면을 문예활동이 제공해 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부문에 복무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 너, 나 없이 모든 투쟁에 적극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문예일꾼 가운데에는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도 있고, 한국노총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운동조직과 달리 문화는 품(포용성)이 크기 때문에 날카로운 대립은 그다지 없는 편이다. 한 마디로 즐겁다. 문예일꾼들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남들 하는 활동, 다 해야한다." 그의 말에 실린 문화패 특유의 단호함이 묻어난다. 열정이 뚝뚝 묻어난다.
이 부장과 같은 열정 품은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자 문예운동을 가꾸고 있겠지만, 분명 침체기를 겪고 있는 듯하다. "문예운동 일꾼들을 배출하는 토대는 약화됐지만, 문예일꾼들 역량을 다른 운동영역으로 전환해달라는 현장 요구가 많다. 그렇게 역량이 빠져나가는 반면 새로 충원되는 규모는 작다"고 이 부장은 말한다. 그런 이유로 점차 운동의 저변이 약화된다는 것.

그는 문예운동이 침체를 겪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점차 회복기를 맞고 있으며 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희망을 함께 전한다. 기자는 그와 함께 다시 노동문화, 투쟁문화에 대해 견해를 나눴다. 그는 “길놀이, 노래, 율동, 상징의식이 수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을 주체로 세우는 투쟁문화, 노동문화를 고민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라며 못내 말끝을 흐린다.

서로 묘수가 없는 상황에서 서로 호흡을 맞추기란 쉽잖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광주지역에서 집회를 열면 현장문예패가 그나마 많이 출연해 상호호흡이 생기지만, 요즘은 전반적으로 전문역량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인 것 같다는 점에 대해 이 부장과 기자는 공감을 나눈다.

끝으로 기자는 그에게 "전국의 문예일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냐"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노동자 문화운동, 우리 운동의 또 다른 장기투쟁현장으로 자리잡지는 않을까라는 조바심도 내본다.

뚜렷한 마침표 하나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는 은근히 이 부장을 몰아세웠다. "어떤 답을 달라는 건 아니니까 편하게 말씀해달라"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문예활동가들이 자주 모여서 실천경험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라고. "이런 문제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라고. 기자가 겨우 얻은 정답이었다.

박성식 bullet19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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