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412

다음 글은 위원장-사무총장 당선자가 후보 시절 보내온 글입니다.
이석행-이용식 당선자가 앞으로 어떤 부문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칠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기사 마감이 촉박했는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편집국장...

2. 이번 선거는 우리 민주노총에게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현장조직력이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조합원은 민주노총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정권과 자본의 민주노총 죽이기는 계속되고 있고 노동악법 비정규악법을 날치기 강행처리하고 있습니다. 정권과 자본은 민주노조운동을 국민적으로 고립시키려고 언론까지 총동원해서 칼끝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첫째,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현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입니다. 그리고 조직의 주체인 조합원이 빠진 민주노총을 온전히 정상화할 수 있느냐 마느냐에 있습니다. 현장을 다시 세우려면, 간부를 재교육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저희가 10만 간부 양병을 주장하는 것도 현장을 바로 세울 간부 활동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산별시대에는 산별시대에 맞는 민주노총의 조직, 투쟁, 교섭, 연대전략이 필요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신하는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노동자 특히 하청노동자부터 산별노조에 가입시켜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로 세워줘야 합니다. 또한 진보적인 산업경제정책 산업노동정책을 적극 개발해서 산별노조의 투쟁력, 조직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셋째로는 임원과 파견대의원 직선제를 동시에 실시하여 조합원에게 민주노총을 돌려줘야 합니다. 직선제가 조직혁신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합원의 마음을 모으고 조직적 단결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데서 매우 유용한 민주적 장치입니다. 조직혁신사업은 산별시대에 맞게 민주노총 조직체계를 개편하는 것도 있습니다. 산별연맹 산별노조와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위상, 역할을 재정립하고 지역본부를 강화해야 합니다.

넷째, 무엇보다 정파적 갈등을 해결하는 단초를 열어야 합니다. 뿌리깊은 불신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상호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교류와 소통이 가능하도록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노동운동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통합지도부를 제안한 바 있는 저희로서는 당선된다면, 다른 견해를 가진 동지들도 적극 중용해서 통합적인 집행력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섯째, 신자유주의 탄압앞에서는 노동자 농민 빈민이 따로가 아닙니다. 노농연대를 기본으로 해서 민중진영 진보진영이 총단결해서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투쟁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연말 연초에 실시되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승리를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합니다.

3. 100만 민중참여경선제를 실시해서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 각계각층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대중조직들의 조합원, 회원들이 참여해서 대통령후보를 뽑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대선승리의 원동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선을 통해 결집된 힘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300만표-30석전략’. 이것이 대선과 총선에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입니다. 대선에서 300만표정도의 지지를 획득해야, 4개월후 총선에서 30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30석을 확보하면 교섭단체를 구성하며 노동자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힘있는 진보정당을 얻게 될 것입니다. 거대 보수양당 사이에서 힘없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집권의 길을 여는 희망을 주고 개입력 교섭력을 갖춘 민주노동당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미FTA협상 2월강행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입법안 쟁취와 산재법 전면개혁 투쟁을 2월과 4월에 실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올해 산별교섭 쟁취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통합력을 갖춘 인선을 단행하여 지도집행력을 신속히 안정화해야 합니다.

산별연맹, 지역본부장들과 2박 3일 수련회라도 가져서, 정파를 뛰어 넘어서 단결하고 투쟁할 수 있는 결의를 다지고 한해 사업계획을 함께 수립해 볼 생각입니다.

5. 조합원 동지 여러분! 기대도 크고 실망도 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을 조합원 동지들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조합원이 주인답게 참여하고 결정하는 민주노총으로 바꾸겠습니다. 그래야 계급성도 높아지고 단결력도 높아집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이 단결하고 노동자-농민-빈민이 총단결해서 세상을 바꿔냅시다. 함께 민주노총을 현장에서부터 조합원과 함께 다시 세우고자 하는 이석행, 이용식과 함께 시작합시다.

<당선자 주요공약 모음>
기호 2번=대안과 전망을 제시하는 투쟁, 비정규 차별철폐와 비정규법 재개정, 노동3권 쟁취투쟁,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100만원 쟁취, 최저생계비 현실화, 산별임단투 총력지원과 산별시대 노동법 쟁취, 산업별 진보적 경제산업정책 노동정책 쟁취, 노농연대를 통해 한미FTA 6차~8차 협상저지투쟁 강력히 전개, 반미반제 반전평화 자주통일투쟁 강화와 6.15공동선언 이행, 60만 하청노동자를 산별노조에 가입=대중적인 산별노조 가입운동으로 비정규노동자 60만명 신규 조직화, 16개 지역본부와 30개 지구협에 비정규 차별해소 상담소 설치, 평균 10만명 이상의 7개 대산별노조로 재편하여 강력한 총파업체계 구축, 산별시대 민주노총 각종 체계 재정립과 민주노총 정책연구 기능 강화, 현장을 다시 세울 10만 간부 양병=총연맹 지도부의 일상적인 현장순회체계와 총력태세 구축(하방제도 의무화), 총연맹-산별노조-단위사업장 교육시스템 전면 강화, 10만 간부 양성을 위한 교육원 건립, 현장문예운동 활성화와 온라인?오프라인 선전역량 강화와 일상적 체계 구축, 1노조 1농민회 자매결연(민주노총 단위노조와 전농 110개 시군 농민회), 『300만표-30석 전략』으로 대선, 총선 승리, 전조합원이 참여하는 100만 민중참여경선제 실시, 노동분야의 대중투쟁 의제 개발과 진보적 의제 개발, 일상적인 정치실천단 체계 조기 구축과 당원 재교육, 전조합원이 참여하는 2007년 상반기《민중참여경선제》로 대선후보 선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의 산별노조 가입운동과 민중참여경선제 결합, 2008년 4월 국회의원선거 30석 당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교섭단체 구성, 조합원을 민주노총의 주인으로=임원-대의원 직선제 동시실시, 조합원을 민주노총의 주인으로! 임원-파견대의원 직선제 동시선거 실시, 재정구조 혁신과 집행력 강화, 비정규 할당제 실시, 산별시대 민주노총 대의체계 재편과 회의규정 개정, 간부 재교육과 규율위원회 강화를 통한 간부비리 엄단, 통합과 대안을 지향하는 노동운동혁신위원회 설치, 노동운동의 통합과 대안 마련을 위한 노동운동혁신위원회 신설, 노동운동의 사회변혁적 집권전략 연구 개발, 중장기적 연구과제 설정 및 의견수렴 구조 확립, 민주노총 정책연구원과 연계한 연구사업 추진, 노동자-농민연대 강화와 진보진영 총단결체 건설=1노조 1농민회 자매결연 (전농 110개 시군구 농민회와 노조별 자매결연), 진보진영의 총단결체 본조직 2007년내 건설, 진보세력의 주도권 강화 (정책개발, 공동투쟁, 대중투쟁-의회투쟁 결합), 시민사회진영과의 폭넓은 연대 강화, 산업별 지역별 남북 자주교류 대폭 확대, 세계노총 등 국제노동운동과의 연대교류 확대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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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2번 이석행 위원장 후보=저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14살에 광산노동자로서 삶을 시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광산에서 금강석 가리는 일을 했다. 일년 돈벌어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고등학교 졸업 후 갔던 곳이 바로 김제에 있는 대동중공업이었다. 당시 대동공업이었다. 방위산업체라고 해서 갔는데 155미리포, 105미리포 등 미사일을 개발하는 파트에 배치됐다. 근무하다보니까, 노조를 알지도 못했고 다만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세상과 현실이 너무 차이가 있어서, 80년도에 노조를 만들었다. 병역특례를 받으면서 노조를 만들었고 처음 교선부장을 맡았다. 82년도 전두환 정권 들어 노조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노조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두 차례에 걸쳐 해고됐다. 조합원들이 저를 지켜주셨고 그 때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살겠다”는 약속 때문에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이후 김창근 동지가 85년도 해고되었을 때, 기억 하실지 모르겠지만, 대동중공업 위원장으로서 김창근 동지 해고 투쟁할 때 직접 창원에 가서 현수막을 들었고, 김창근 동지 쪽방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 속에서 87-8년도 준비를 하면서 전노협 건설을 함께 했다. 전노협 사무차장과 중앙위원을 지냈고 더 나아가서 민주노총 건설과정 속에서 "제조업이 민주노총에 참여해야 한다"는 명제아래, 그 당시 금속을 주도했던 동지들은 "민주노총은 아직 시기가 아니다"라는 논쟁 속에서 (저는)절실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민주노총에 제조업이 참여해야 한다"는 판단을 갖고 자동차연맹을 만들고 위원장을 맡았다. 자동차연맹과 금속연맹, 현총련을 통합할 때 공동위원장을 맡아 통합을 일궈냈다. 이후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고 그 때부터 어렵고 작은 투쟁사업장을 찾아 다녔다. 금속연맹 부위원장으로서 총파업을 조직하라는 명을 받아서 부산, 경남, 인천 등을 다니며 총파업을 조직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추억이 있는데 시그네틱스 투쟁이 6년만에 대법원 일부 승소 판정을 받았다.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투쟁이 끝나는 날까지는 투쟁에 결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또 하나는 제조업만 한 것이 아니고 2003년 감옥에서 나와 일년 동안 업종 동지들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면서 사무전문직 동지들에 대한 부분도 공부하고 교육했다. 사무총장하면서 그런 훈련들이 강점을 발휘했다. 민주노총 사무총장 되고 나서 뭔가를 제대로 만들려고 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도중하차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민주노총 사무총장 경험을 토대로 하여 총장으로서 느꼈던 한계를 극복하고, 그 당시 우리가 주장했던 세상을 바꾸는 투쟁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투쟁을 만들어서 "힘차게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재창립하는 심정으로 새롭게 만들어가야 된다.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이라는 것은 현장 활동가가 되는 것이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에 일년 6개월 중에서 일년 동안 친구 공장에서 일을 했고, 육 개월 동안 동지들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했다. 특히 사무전문직 분야에 갔을 때 동지들이 하는 말이 "민주노총 벽이 너무 높다"라고 한다. 그러나 사무총장을 그만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와서 함께 해주는 것에 대한 동지들의 배려와 적극성을 보면서 "현장에 답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됐다. 사무직이건 제조업이건 현장 동지들이 있는 곳이 바로 민주노총이고, 그것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부지런하고 열심히 뛰었고 그동안 살아온 삶을 보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한다. 부지런히 뛰고 열심히 하며, 철학을 말하기 전에 살아온 삶을 통하여 전망을 제대로 세워내는 쪽에 자신 있어서 출마했다.

▲기호2번 이용식 사무총장 후보=87년 노동자대투쟁 흐름 속에서 노조를 처음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제가 속한 노조가 삼환기업노조인데 최초의 건설업계 사무직 노조다. 그 당시 노조활동 할 때 기획실 과장이었다. 당시 기획실에는 조합원 자격도 없었고 과장이라면 조합원 활동을 할 수 없는 탄압국면이었지만 동지들과 함께 사회민주화, 기업민주화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고 노동활동을 시작했다. 그런 관계 속에서 88년 서울지역노조 초대 부위원장을 맡아 지역연대 활동을 열심히 했다. 전노협 결성이후 숱한 탄압 속에서 전노협에 가입한 유일한 사무직 노동조합이 삼환기업노조였다. 89년은 공안탄압이 시작된 해이다. 그동안 87년 이후 힘차게 싸웠던 많은 노조들이 탄압에 어려움을 겪었던 때였다. 지하철파업뿐만 아니라 한양대병원파업, 현대중공업투쟁 등 탄압 때문에 많이 무너졌는데 삼환기업은 건설사무직 최초로 82일간의 총파업 투쟁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초기에 사무직이지만, 노조 기풍 자체가 연대와 투쟁, 그리고 함께 하는 분위기 속에서 초기운동을 해왔다. 활동결과 건설분야 노조 결성이 확대됐고 현재 건설연맹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에서 운동 의미를 지녔다. 99년도에 숱한 정리해고 싸움이 많았지만 단위노조는 194명에 대한 정리해고에 맞서 100일 동안 총파업투쟁을 하면서 194명 전원을 복직시키는 투쟁 결과를 이뤄냈다. 사실 건설노동자가 많지 않아서 건설노동자 투쟁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없다. 건설업은 전국이 60-100개 현장으로 분화되어 있고 철저히 소장체제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엮어내서 투쟁한다는 것은 철저한 노동자의식을 갖고 자본과 권력의 철저한 탄압을 이겨내는 자세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언제나 조합원 자세를 본받고 감사한다. 그 이후 삼환기업노조에서 두 차례 부위원장, 두 번의 단위노조위원장, 두 번의 연맹위원장을 맡았다. 조직의 철저한 평가 속에 연맹위원장을 맡아 대과없이 활동했다. 최근, 건설노동자들의 역동적인 투쟁들이 전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레미콘 운송노조 노동자들이 2001년 여의도에서 도끼만행을 당하면서까지 특수고용직 문제에 항거했고, 2002년에는 타워노동자들이 건설현장을 채우는 영웅적인 투쟁도 건설현장 지각을 변동시켰다. 2004년 여수에서 5백명으로 시작한 플랜트 건설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할 때 5천명으로 조직 확대를 이뤄내는, 정말 해방구를 이루는 투쟁들을 해냈다. 이후 울산동지들의 플랜트 투쟁뿐만 아니라 최근 포항노동자들의 투쟁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안탄압으로 현장 조직가들이 갈취범으로 몰리면서까지 정부탄압을 받고 있는 이유도 2백만 건설노동자를 조직하겠다는,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겠다는 건설노동자들의 의지 때문이다. 특히 건설산업연맹은 국내 최초로 소위 관리직인 사무직 노조와 현장 일용직 노조 조직이 통합을 이루는, 오늘날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건설사업연맹의 2000년 출범이다. 제가 통합연맹의 초대위원장이었다. 우리 연맹 안에도 현재 안고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가 제현장보다는 철저히 현장감독과 노동하는 관계 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런 어려움을 동지들과 함께 극복하면서, 최근에 "노예가 아니다, 차라리 죽여라"라고 외치며 투쟁을 이루는 쪽에 일조했다. 이번 선거에서 많은 쟁점을 갖고 있다. 일주일 정도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공약에도 나와 있지만,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면서, 비정규직과 함께, 민중과 함께 80만 조합원과 함께 산별시대를 여는 민주노총 재창립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적절한 구호인지를 알게 됐고 통합을 이루려는 자세가 현장 동지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입장과 일치함을 확인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번 사무총장 출마후보로서 단순한 건설노동자들의 자세와 역동적 투쟁이라는 뚝심을 몸소 현장 동지들과 함께 겪고 문제를 푸는 데 적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통합과 비정규직 문제, 조직과 투쟁을 민주노총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여긴다면 연맹위원장 경험을 통하여 정규직, 비정규직 통합을 5년 동안 일궈왔고, 비정규직을 현장에서 가장 최초로 조직가를 양성하고 현장을 엮어내는 본인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화력과 포용력이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87세대라고 하면 선배일 수 있는데 오늘날 동지들 격려 속에서 벽돌 하나라도 같이 쌓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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