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이석행 위원장 인터뷰 전문

앞으로 3년간 국내 최대 노동조직 민주노총을 끌고갈 이석행 위원장“준산별화해 작전권을 위임받을 것… 연대 강화해 대신 싸워주겠다”

노동운동이 수월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재계의 탄압, 자본의 이해만을 충실히 대변해온 일부 언론들의 비난은 원래부터 그랬다고 치더라도, 현재의 위기는 그 성격이 다르다. 국민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노동운동에 우호적인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적 지식인들의 비판에도 날이 서 있다.

국내 최대 노동운동 조직인 민주노총의 이석행(49) 위원장을 2월2일 만났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월26일 임원 선거에서 3년 임기의 위원장으로 선출돼 집무에 들어갔다. 이 위원장은 여러 차례 절박감과 초심, 연대를 강조했다.

부끄러운 38점짜리 비정규직 투쟁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았다.

=차라리 어려운 시기에 맡아 잘하는 게 낫다. 내가 근무했던 대동중공업은 대포를 만들던 방위산업체였다. 파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전두환 정권 때 그 엄혹한 상황에서도 7년 동안 11차례 파업을 이끈 적이 있다.

이 위원장도 선거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위기를 언급했다. 20년 만의 최대 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내부적 요인이 큰가, 아니면 외부적 요인이 큰가.

=내적 문제가 더 강하다고 본다. 민주노총이 단결해 있고 힘이 있으면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힘이 있으면 정부가 정책을 마련하는 초기 단계부터 개입해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광풍에 민중들이 쓰러지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로 고통받고 있고 최저임금,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으로 사는 이들이 많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 민주노총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개혁 투쟁, 정치투쟁을 벌여야 한다.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왜 싸늘해졌다고 보는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문제 등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투쟁했지만 솔직히 절박성이 부족했다. 우스갯소리로 비정규직 투쟁은 38점짜리라고 얘기한다. 비정규직 투쟁 기금으로 50억원을 모으기로 했는데 15억원(38%)밖에 모으지 못했다. 부끄러운 수준이다. 자신의 문제로 절박하게 느끼고 싸우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러니 밥그릇을 위해 싸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솔직히 반성할 측면이 있다. 그런데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소외된 이들을 위해 투쟁을 벌이면 언론이 정치투쟁이라고 격하한다. 임금투쟁을 하면, 또 공무원 노조가 연금 문제를, 전교조가 교원평가 문제를 얘기하면 철밥통 싸움을 한다고 비난한다. 제도개혁을 위해 싸우면 정치파업이라 하고 단위노조가 임금투쟁을 하면 귀족 노동자라 하고…. 우리보고 두 손, 두 발 들고 백기투항하라는 것인가.

일반 국민들외에 시민사회진영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에는 수긍하나.

=그분들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투쟁을 벌인 점은 인정할 것이다. 노동운동이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문제라는 절박감을 가지고 투쟁했다면 관철시킬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노동운동에 대한 무조건 반대, 무조건 비판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현대자동차 ‘성과급 파업’은 어떻게 보나. 회사 쪽 처지만을 대변하는 일부 언론들의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불이 타고 있는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임금 문제로 파업을 했다고 뭐라고 하는데 현대자동차는 2006년 3조5천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그 돈을 비정규직을 위해, 하청업체 노동자를 위해 썼나. 현대자동차는 원가를 절감한다면서 하청업체에 납품원가를 10% 낮추도록 했다. 왜 그런 문제에는 침묵하나. 현대자동차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에도 적극 대응했다. 전체 파업 횟수로 치면 임금 문제보다 비정규직 문제가 더 많았다. ‘귀족 노동자들의 만행’으로 몰아가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의 한 축에는 지난해 집중적으로 불거졌던 취업 비리, 민주노총 간부의 수뢰 문제 등도 있다.

=단호하게 하겠다. 규율위원회를 꾸리겠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덕성은 생명이다. 주요 임원뿐만 아니라 단위조합장에 출마하려면 재산 규모와 형성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도 고려 중이다.

대화는 누구와도 가능, 교섭도 투쟁


현재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 초반이지만, 전체 노동자를 1500만 명으로 보면 민주노총 조합원(75만명)은 6% 안팎이 될 것 같다.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노총이 단결하고 힘을 갖고 있다면 75만 명도 대단하다. 대한민국에 이 정도 규모가 되는 곳이 군대 말고 어디 있나. 프랑스도 조직률 7%에 불과하지만 비정규직 법안 투쟁 때 300만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학생들도 투쟁에 참여했고 국민 70% 이상이 파업을 지지했다. 억지로 조직 확대 사업을 벌일 문제는 아니다. 밥통 싸움이 아니라 비정규직, 최저임금 생활자를 위해 민주노총이 싸운다면 조직의 규모가 늘어가는 건 시간 문제다. 또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되면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지난해 말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이 국회에서 통과된 시기를 즈음해 정부·사용자와의 대화가 단절됐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사회적 교섭’을 주장했다가 이를 반대하는 조합원들과 충돌을 빚은 적도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이수호 위원장과 거의 같다. 대화는 어떤 자리의 누구와도 가능하다. 대화 상대를 가리지 않겠다. 대통령, 노동부 장관은 물론 법무부 장관도 찾아가 만날 생각이다. 메아리가 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민주노총의 생각을 직접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화는 교섭이나 공조와는 다르다. 이수호 위원장 시절에는 대화가 곧 교섭이고, 교섭을 공조와 동일시하는 분위기였다. 교섭도 투쟁이다. 쟁점화를 위한 수단이다. 파업은 무언가 따내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노정, 노사, 노사정 등 중층적 교섭 틀을 만들겠다. 노사정위원회에는 복귀하지 않는다.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새로운 교섭 틀을 제안한 적이 있다. 당사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말 비정규직 법안과 로드맵 대응를 둘러싸고 한국노총이 야합했다고 비판해왔는데, 한국노총과의 관계는?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전략전술을 갖고 있다. 그걸 미리 말해버리면 제대로 할 수 있겠나. 한국노총과 대화는 하겠다. 비정규직 법안, 노사 로드맵 과정에서 양쪽이 서로 동의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한국노총이 비정규직 법안이나 로드맵 처리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고 재개정 투쟁에 나선다는 전제가 있지 않는 한 공조는 쉽지 않다. 한국노총이 합의해준 로드맵 중에는 부당해고 때 사용자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는 조항이 있다. 노동자의 단결권을 훼손한, 오히려 정리해고보다 더 무서운 조항이다. 어떻게 그걸 합의해줄 수 있는가.



△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1월29일 취임 기자회견을 열어 “제5기 신임 집행부는 3월 초부터 6개월 동안 현장 대장정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취합해 80만 조합원이 주인인 민노총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민주노동당이 지난해 말 사회적 연대 방안의 하나로 비정규직·영세 자영업자·빈곤층의 연금보험료를 정규직 노동자가 한시적으로 납부해주고, 노동자가 스스로 소득세를 더 내겠다고 결의하는 ‘사회연대전략’을 내놓았다. 노동 진영의 신뢰를 강화하면서 국가와 자본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보는가?

=오히려 대단히 우려한다. 양극화 책임이 정규직 노동자에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고통 분담으로 고통이 옮겨갈 우려가 있다. 노동자들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제도개혁을 통해 정부가 돌파구를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가 내놓으면 얼마나 내놓을 수 있겠나. 마치 노동조합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민노당 ‘사회연대전략’에 반대하는 이유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설정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 제도 개선을 위해 9석의 의석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실망은 과도한 기대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민주노동당도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대선후보 선출 방식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민중경선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노동자, 농민, 조직된 청년학생, 빈민 등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경선에서 대선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그래야 대선에서 그 이상 얻을 수 있다. 민중들의 요구를 담은 후보가 300만 표 이상 득표한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300만 표의 요구가 그대로 살아 있다. 지난 대선에서 노동계 일부 세력이 ‘노동연대’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캠프에 들어갔고 활발히 활동했다지만 뭐가 남았나.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했나. 우리 요구가 담긴 300만~400만 표를 갖고 있으면 그게 힘이다. 그러면 집권도 가능하지 않겠나.

2007년 노사관계에서는 산별 금속노조 출범이 상징하듯 산별교섭이 가장 이슈다.

=노조가 힘이 있어야 사회개혁의 제도화가 가능하다. 정부에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산별교섭을 하지 않으면 정규직,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노동운동에는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모두 있다. 오르막길 때는 그냥 가도 크게 상관없지만 내리막길이 문제다. 최악을 대비한 운동을 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75만명이라고는 하지만 주요 국가의 산별 1개도 안 되는 규모다. 민주노총을 준산별화해야 한다. 그래서 총력전, 총파업을 벌일 때는 각 산별연맹으로부터 작전권을 위임받을 것이다. 총파업 선언만 하는 위원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연대를 살려가겠다. 즉 공무원 연금 문제가 터지면 ‘공무원은 비껴 있어라, 우리가 하겠다’며 다른 연맹이 이 문제를 갖고 싸워주고, 사학연금 문제가 터지면 공무원노조가 싸워주는 식이다.

사용자 쪽은 산별교섭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예컨대 금속 사용자들이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지도 않고 또 교섭 테이블에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파업을 할 것인가.

=총연맹이 적극 나서서 교섭 테이블에 나오도록 만들겠다. 물론 나는 함부로 파업 얘기를 하지 않는다. 파업은 마지막에 하는 거다. 국민들이 파업 얘기만 하면 싫어하지 않나.(웃음)


이수호 전 위원장도 “총파업을 남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막상 사안이 터지면 총파업을 선언하곤 하지 않았나.

=남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잘 봐라. 내가 사무총장 시절이어서 정확히 기억한다. 1년8개월 동안 총파업을 두 번 했다. 비정규직 법안 통과 때 23만 명이 파업을 했다. 이듬해에도 비정규직 관련 파업이었다. 두 번 모두 결국 정부가 교섭에 나서면서 파업을 중단했다. 무조건 날짜 박고 하는 식의 파업을 하지는 않았다.

이젠 FTA투쟁에 화이트칼라가 나설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현 정부가 졸속으로 계속 추진한다면 결국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제조업 노동자와 농민은 이미 나섰다. 이젠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FTA 협상이 막판으로 가고 있으므로 당장 2월 중에 사무금융 쪽 노동조합들을 두루 방문해 저항을 조직화할 것이다. 금융·언론 등 FTA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곳이 없다. 넥타이 맨 노동자들을 광범위하게 조직화해 저항 전선을 구축하는 사업을 강력하게 배치할 것이다.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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