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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수께끼 같은 물음

선거는 유권자들이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투표로 결정하는 민주주의제도이다. 유권자의 절대다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인데, 그 가운데서도 노동계급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유권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유권자들이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표현하는 선거에서는 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가 번번이 실종되는 것일까?
모든 정치행위는 정치의식의 결과이며, 모든 정치의식은 사회계급관계를 반영한다. 사회계급관계를 반영하지 않는 정치의식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선거만은 예외가 된다. 선거라는 정치행위는 사회계급관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수탈을 전면적으로 보장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것으로 나오는데,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여 싸우는 유일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10%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50% 유권자들 가운데 40%는 그 협정체결로 치닫고 있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탈당파가 내세우는 대선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노동계급은 왜 선거에서 자기의 정치의식을 굴절시키는 것일까? 선거는 왜 사회계급관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것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 문제를 해명하지 못하는 한, 선거는 여전히 노동계급 정치행위로 될 수 없으며 노동계급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소외된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수수께끼 같은 물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노동계급의 생각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요구가 실종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생각은 매우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온갖 비노동계급적 요인들이 침투하여 노동계급의 생각을 변질시키고 분열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노동계급에 속했으면서도, 텔레비전 연속극에 나오는 도시중산층처럼 생각하고, 도시중산층의 생활양식을 흉내내고, 자신을 도시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개별적 노동자들이 너무도 많다. 사무직 노동자들이 그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산직 노동자들도 그러한 풍조를 따르고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은, 학교교육, 대중언론, 종교활동, 사회여론, 상품문화, 그리고 개별적 대인관계의 경험이나 가족관계 등을 통해서 마구 스며들어온 비노동계급적 요인들이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이 자라지 못하게 생각을 교란하고 변질시키고 분열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 말하자면 너무 일상화되어서 으레 그러려니 하고 느끼는 노동계급의 실제 현실이다.
온갖 비노동계급적 요인들에 휘감겨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버린 노동계급의 생각은 더 이상 노동계급의 고유한 정치의식이 아니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노동계급은 자기의 고유한 정치의식을 갖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계급이 자기의 고유한 정치의식을 갖지 못한 채 의식분열증에 빠져있으므로 그들의 행동통일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조합원들의 총의에 따라 총파업을 결의했어도, 파업지도부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끝장을 볼 때까지 전투적으로 밀고 나가지 못하고 도중에 주저앉는 만성적인 무기력증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 총파업에서조차 그러하므로 선거에서 행동통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17호에 '수수께끼 같은 물음' 계속)
한호석/통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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