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1일 국회앞에서는 노동기본권 보장, 운임제도 개선을 위한 2단계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 주최로 열리고 있었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투쟁을 잘하는 조직으로 이름난 화물연대, 다른 집회와 달리 힘차고 생기가 넘친다.
국회앞 투쟁 현장에서 박신구 화물연대 전남지부 조직부장을 만났다. 박신구 조합원은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고 올해 43살이다. 그는 2003년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박신구 조합원은 '97년까지 번듯한 직장인이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소박한 삶을 사는 셀러리맨이었다. IMF는 그를 피해가지 않았다. 1997년, 그 역시 IMF를 맞으면서 실직한다. 생존 위기를 느끼며 방황하던 그 당시, 화물노동을 하던 친구 권유로 98년부터 화물핸들을 잡았다. 지금까지 그는 화물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덩치 큰 화물차를 모는 노동자 답지 않게 목소리는 낮고 차분한 박신구 조합원은 화물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을 말하면서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간다.
아침 6시 기상, 7시에 집을 나와 하루종일 일하고 밤 9시가 돼서야 귀가할 수 있다는 화물노동자 박신구. 그는 매일 전남 광양항에서 전남여수가까지 컨테이너를 운송한단다. 직접 차를 몰아야 하는 화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에서 14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일쑤란다.
화물노동자들의 한달 수입지출을 따져보면 차할부값 월 200만원, 도로통행료, 차소모품 및 수리비, 식대, 통신비 등 각종경비가 150만원, 화물알선 수수료 100만원, 경유기름값 400만원, 차보험료와 각종 공과금 100만원 등 지출비용만 해도 총950만원에 이른다.
반면 수입금은 한달에 1000만원 정도. 정부가 지원하는 건 유류지원비 100만원이 전부다. 이래저래 경비를 빼고나면 한달 순수입은 고작 100만원 안팎이라는 게 박신구 조합원의 설명이다.
예상과는 달리 장시간 중노동에 비해 빠듯한 삶을 사는 화물노동자들은 결국 가족이 와해되는 고통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박신구 조합원이 조직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화물연대 전남지부의 경우 1천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일년에 5가구 정도가 생활고때문에 이혼하는 등 가족이 흩어지고 있단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홀로 자녀 양육을 도맡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녀를 맡기는 편부 가정이 많단다.
설상가상으로 조합원 혼자 자녀를 양육하거나 팔순노모를 부양하다가 구속된 조합원들도 숱한 상태. 구속된 조합원들을 면회할 때 ‘밖에 있는 동지들을 믿고 버텨낼수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는 게 박 조합원의 말이다.
지난해 6월, 박 조합원은 충북 청원에서 전남지부 30여 명과 함께 연대투쟁을 벌였다. 28일간 진행된 파업투쟁기간동안 거의 씻지도 못하고, 먹거리조차 해결할 수 없었던 상태. 그는 조합원들과 함께 직접 산나물을 채취해 현장에서 반찬을 만들어 먹기도 했단다.
파업투쟁이 28일째에 접어들던 날, 경찰이 농성장을 침탈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짓는 조합원들을 강제연행했고 그들은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어려운 투쟁 끝에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사용자는 계속 약속을 지키지 않는단다. 그러나 노동기본권이 없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호소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기막힌 현실이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들, 박신구 조합원은 결코 절망하지 않겠다며 주먹을 쥔다. "구속된 동지들과 연대투쟁으로 지원해주는 동지들을 믿고 투쟁을 계속하겠다"며 단호한 어투로 표정짓는 박신구 조합원, 그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마지막 심정을 표현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정규직노동자들도 비정규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길 부탁드린다"라고.

두현진 du03@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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