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도소에서 유기수 건설연맹 사무처장이 보내 온 편지 전문

[사진1] <b>이석행 민주노총위원장 동지께</b>

취침에 들기 전 스산한 적막감마저 감도는 감옥 안 분위기입니다. 독방생활에 젖어 있다가 혼거방에 생활한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아직 낮에는 집중이 어려워 티브이 방영이 끝난 밤 9시30분 이후에 편지와 독서를 하는 생활입니다.

<b>안녕하십니까. 저는 건설연맹사무처장 유기수입니다.</b>

옥중동지들에게 보낸 편지와 책 잘 받았습니다. 늦게나마 위원장 당선과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며칠 전 같은 사동 독거 방에 있는 대구건설노조 조기현 위원장으로부터 (이석행 위원장께서)대구교도소에 다녀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구속동지들을 만나러 다니시는 모습에 첫 느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연대 정신이 희박해지면서 감옥 안과 밖도 분리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해야 할 역할을 다른 인권단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도 민주노조 깃발이 수많은 역사와 구속동지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휘날릴 수 있다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들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민주노총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열정을 굳게 믿고 함께 하는 길에 구속노동자들도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금속노조와 건설노조에서 구속노동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건설노동자들이 유난히 많았던 한해였지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속노동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조기현 동지 시구에 지금도 수많은 가족들이 울고 있다는 현실적이고 처절한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아파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위상이 추락함에 더 큰 절망감이 쌓이기도 합니다.

현장대장정 출발은 탄압현장, 투쟁현장, 그리고 소외되고 낮은 곳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위원장 동지의 생각대로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동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투쟁이 되었으면 합니다.

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는 분이 “민주노총입니까? 그런데 왜 민주노총 위원장이 면회는 안 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참 난처했습니다. 그들에게 설명을 한다면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입니다. 구속동지들이 감옥에서 자랑스럽게 민주노총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b>제가 이석행 위원장 동지를 투쟁 현장에서 두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b>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98년으로 기억됩니다만 현대중기산업 부당퇴출 저지 450일 투쟁이 노사정위원회 점거 농성하러 들어간 날 아침에 금속 동지들이 농성을 마치고 나가게 돼 만났었습니다. 이목희 현 국회의원이 당시 그곳에 근무했었죠. 금속동지들은 해결이 돼서 나간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3~4시간 후에 전원 경찰에 의해 연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시그네틱스 염창동 투쟁 때였습니다. 연대하러 건설동지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함께 했었지요. 구사대와 공장 기계 반출을 저지하기 위해 ‘빡시게’ 싸우고 공장 안에까지 들어가서 구사대를 한바탕 쓸어버리고 나오기로 했었죠. 당시에 위원장 동지가 현장 투쟁 책임자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정문 앞 구멍가게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아름답다했습니다. 투쟁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항상 함께 했던 동지이기에 많은 분들에게 신뢰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b>민주노조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일들이 민주노총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b>

내부 쇄신부터 해야 합니다. “총파업 한다”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비참함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면서 남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나중에는 남을 속이려다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게 됩니다. 정직해져야 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총파업, 현장투쟁에 얹혀 숫자 불리기에 만연되어 있는 총파업은 이제 중단돼야 합니다. 파업이 안 되면 그냥 투쟁이나 합시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 거짓말 파업이 민주노총을 멍들게 하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요새 과일은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어 못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독한 농약에 겉만 번드르르한 못 먹는 과일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현재 민주노총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조를 갉아먹는 독버섯 같은 모든 것을 과감히 도려내야 합니다. 집행부 교체가 겉모습만 바꾸고 썩은 속은 감추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석행 위원장 동지의 두 어깨에 민주노총 사활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b>이 땅 1500만 노동자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b>

주위 친한 사람 몇몇에 가려서 큰 것을 보지 못하고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직한 노동자들을 믿고 정직한 민주노총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지금은 욕심 부리지 않고 내일을 기약하며 우리 힘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2월21일) 경향신문에 작년 포항건설노조 파업에 대한 검찰 대응 지침에 관한 대외비 문건이 폭로됐습니다. 하중근 열사 문제에 대한 야비한 공작기도도 밝혀졌습니다.

하중근 열사의 혼을 아직도 못 거두고 있습니다. 검찰의 이번 문서 공개는 명백한 정권의 노조탄압이며 정치사찰입니다. 대구교도소에 14명의 동지가 아직도 구속돼 있습니다. 모두 석방돼야 합니다. 하중근 열사 죽음에 사죄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이석행 위원장 동지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부디 현장대장정이 또 하나의 이벤트 행사로 그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졸필과 난필을 용서바라며 투쟁 현장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b>2월 21일(수) 전사들의 휴식처 대구교도소에서 유기수 드림</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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