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박선옥, 49세, 울산시 중구 서동 거주)는 2000년 4월17일부터 울산과학대 교내 미화원 일을 하고 있는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 조합원입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을 시작해 적은 월급봉투에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입사시 45만원으로 시작해 올해 2월에는 70만2천원의 임금을 받았습니다. 대왕정보사 소속으로 입사해서 5년간 일했고 2006년 3월 청소용역업체가 (주)한영으로 바뀌면서 전원 고용승계 됐습니다.
그런데 일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게 됐습니다. 똑같이 일해도 월급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 때 정규직은 학교식당으로 향하지만 저희들은 건물 지하 탈의실에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토·일요일에도 당직이라는 명목으로 일했습니다. 나중에 당직수당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원들은 3~4만원의 당직비가 나옵니다. 생리휴가·연월차 휴가가 있는지도, 학교 행사 때 늦게까지 일하면 잔업수당을 받아야 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또 저희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2006년 7월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변했습니다. 학교 직원들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항의했고 권리도 주장했습니다. 2006년 10월부터는 한 달에 3~4회 있던 무보수 당직과 명절당직도 안서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학교쪽과 (주)한영이 계약을 해지해 2월23일자로 해고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학교 책임자들을 만나기 위해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복도에 앉아 학장을 기다렸지만 직원들이 학장을 에워싸고 빠져나갔습니다.
졸업식 선전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자 직원과 학생들이 본관 지하에서 1층으로 향하는 복도와 계단, 엘리베이터까지 통제했습니다. “왜 막느냐?”고 항의했지만 1시간이나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민주노총 등 지역단체 도움으로 겨우 풀려나 졸업식장 주변에서 선전전을 진행했습니다.
해고날짜로 통보된 2월23일이 지나고 2월25일. 죽어도 여기서 죽자는 각오로 지하 탈의실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이 각 단체는 물론이고 언론사에 퍼져나가자 지역 동지들이 연대하고 나섰습니다. 3월7일, 직원들이 우리를 끌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남성동지들이 먼저 끌려 나갔습니다. 알몸이면 끌어내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에 거의 알몸으로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한명씩 끌려 나갔습니다. 한 조합원은 엘리베이터에 갇힌 채 머리채를 뜯겨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총학생회 간부라는 학생 20여명이 몰려와 “공부에 방해되니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내 자식이 저렇게 가진 자들 편에서 없는 사람들을 탄압하지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물러설 수 없어 현관 앞에서 농성을 계속했습니다.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지역 동지들 덕분에 찬 바닥에 비닐 한 올이라도 깔 수 있었고 밤바람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나이 쉰에 노조 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우리 미화원 8명은 직원들의 횡포와 총학생회의 책동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일을 계기로 비정규직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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