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배제한 낙하산 인사,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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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배제한 낙하산 인사, 절대 안 돼!”

황량한 과천 정부청사 앞 칼바람이 거세다. 도로건너편 FTA반대 천막 불빛이 유독 따뜻하게 새어나온다. 하지만 랜턴 하나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있다. 노숙을 시작한지도 벌써 열흘째다. “암병원 없는 정관 결사반대! 낙하산인사 절대반대!”의 구호가 어둠에 묻혀있다. 랜턴 불빛 하나로 추위와 어둠에 맞섰다. 그 열흘 가운데 5일을 꿋꿋하게 버텨온 보건의료노조산하 한국원자력의학원지부 신동균 수석부지부장(50).
멀쩡하던 한국원자력병원이 최근 뜻 모를 중병 진단을 받았다. 이유인즉 작년 말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해 설립된 원자력의학원 설립으로 인해, 현재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병원의 기능이 축소되거나 분리될 위기감 때문이다. “지금 외부에서 내정된 초대원장이 오게 되면 자율경영은 물 건너갈 것”이라며 “현장에 대해 잘 모르는 인사조치가 임기 3년 동안 빚게 될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노동자들과 전 직원들이 지게 될 문제”라고 그는 심히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노조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한 상태에서 이번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의 알 권리를 쉬쉬하면서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번 행태를 보면 과기부가 암병원을 이번 기회에 죽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하지만 농성 첫날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천막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 농성천막이 미리 있었기도 했지만, 경찰들의 물리적 압력이 교묘했다. 신 부지부장은 “첫날 장애인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얘기가 잘 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장애인들의 태도가 바뀐 것을 보면 경찰들의 압력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결국 “같은 형편에 놓인 장애인들과 싸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노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4년간 현 원자력의학원의 명성과 위상을 세운 것은 바로 원자력병원이었다. 암에 걸린 국민이라면 한 번은 거쳐 갔을 법한 원자력병원이었다. 그래서 병원노동자들은 십 수 년 간 보람을 느끼며 일해 왔다는 것이다. 또한 5년 전까지 1000억 원이나 되는 건설부채도 자체 상환할 만큼 똘똘 뭉쳐 일해 왔다고 그는 당당하게 투쟁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신 부지부장이 하루는 야간 기계 일을 하고, 또 하루는 이곳에서 노숙농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체력과 의지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7년 동안 거의 매주 산행을 해왔던 것이 그랬지만 특히 그에게 힘이 된 것은 ‘조합원’이란다. 지난 99년 구조조정의 위기 속에서 생긴 26명의 복직투쟁 승리과정을 보면서 받았던 감동을 그는 지금도 떠올리고 있었다.
“당시 전조합원이 5만원씩 갹출해서 해고자들 생활비를 댔습니다. 또 활동비도 2만원씩 걷어서 노조에 큰 힘이 됐다”며 큰 이슈가 생기게 되면 분명히 조합원들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그만큼 조합원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각별하다. 그래서 그는 일상 활동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노조에 대해 80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매기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나마 일단 ‘정관’ 부분에서 일방통행을 막아낸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우리 병원은 비록 과기부 산하의 암병원이지만 차별성이 있고 연구목적이 있는 병원”이라며 “과기부는 차별화된 병원육성에 힘써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전국에 딱 1군데뿐인 원자력의학원내 원자력병원이 그래서 소중하다는 것이다.
간이용 깔판으로 얼키설키 만들어놓은 노숙농성장. 그 깔판 은빛 빛깔이 돌아가는 기자의 발걸음을 물들인다. 흐린 어둠이 걷힐 때쯤 내릴 봄비 소식에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신 수석부지부장의 눈빛은 여전히 어둠을 주시하고 있다.

(사진 있음)
강상철 기자 prdeer@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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