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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대장정 르포] 철의 노동자가 전하는 말들

1700도가 넘는 용광로 속은 뜨거운 소리들로 가득하다.
그 소리와 소리가 만나는 순간 소리들은 다른 모습으로 잉태된다. 불에 마주친 소리들이 되돌아 올 때마다 작업복 속 노동자 몸도 달아오른다. 시커먼 쇳가루 먼지가 풀풀 날리는 뜨거운 작업장은 매일 쉬지 않고 굉음을 토해낸다. 무수한 소리들은 쇠먼지에 흡착된 채 일꾼의 몸을 찔러댄다.
현대제철. 박정희의 성장독재와 현대그룹 정씨의 자본독재가 만나 민중의 바다 36만평을 메웠다. 그건 어느 특정인들 사이의 끊임없는 독재적 탐욕이었고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권력유착이기도 하다. 그곳에 살과 뼈를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살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쇠보다 강한 목숨 하나로 평생을 버틴 이들이 있다.
3월27일, 현장대장정단이 인천 중구 송현동 1번지에 위치한 현대제철을 찾았다. 화공약품과 분진, 펄펄 끓는 쇳물에 노출된 채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10시10분 현대제철노조 조택상 위원장 등이 일행을 맞는다. "위원장으로서 현장 노동자를 직접 보고 일을 체험하기 위해 왔습니다." 펄펄 끓는 쇳물이 흐르며 만든 고랑같은 주름이 인상적인 이석행 위원장이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현장대장정을 소리친다.
일행은 현대제철노조 성원들과 함께 작업현장을 방문한다. 소형공장과 90톤전기로 현장, 60톤전기로 현장과 주강공장, 40톤공장과 STS(스테인레스 판제작)공장 등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로 옆 사람과 큰소리로 말을 나눠도 들리지 않는다. 굉음은 온종일 공장을 채운다. 앞을 식별하기도 쉽지 않다. 쇳덩어리를 옮기거나 녹일 때마다 화산재처럼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와 연기, 먼지가 길을 막는다.
바닥은 시커멓다. 공장 구석구석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인 먼지들이 피부에 달라붙는다. 하얀 목장갑과 기자수첩은 금새 새까맣게 변했다. 연신 침이라도 뱉지 않으면 폐조차 잿빛으로 경화될 것 같다. 공장 안에는 고철덩어리들이 검은 산처럼 쌓여 있다. 광산 막장과 다름없다. 노동자들이 평생 이런 곳에서 일한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는 이들을 향해 '귀족노동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분진이 심합니다. 분진부터 잡아주십시오." 24년 동안 철근제강부에서 일하는 51세의 노동자가 하는 말이다. "가스가 심하죠. 호흡기 질환이나 난청정도는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갖고 있어요. 화상, 골절도 다반사죠." 28년을 일한 54세 노동자가 전하는 말이다.
머리에는 하얀 안전모를 쓰고 정강이에는 푸른색 각반을 찬 이석행 위원장이 분진이 잔뜩 묻은 얼굴을 한 노동자에게 답했다. "어렸을 때 광산에서도 일해 진폐증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단순히 시설개보수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철근제강부에서 24년째 일하고 있다는 51세의 노동자가 이석행 위원장에게 말을 건넨다. "노동자 편에 서서 힘을 쓰십시오. 현장요구가 무엇인지 그 입장에 서서 보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힘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오. 평소 민주노총을 생각하셨다니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건강 잘 챙기셔야 합니다." 분진 때문에 연신 눈을 닦던 이석행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힘껏 노동자를 포옹한다.

<현장대장정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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