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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었지만 국민은 도대체 협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부가 발표한 소위 '결과'는 온통 우리측이 '잘했다'는 것 뿐이다. 그럼 세계 최강의 협상팀이라는 미국 협상단이 바보라서 우리측 요구만 모두 들어주었다는 것인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한미FTA. 협상의 진실과 찬·반을 놓고 앞으로도 길고 긴 '싸움'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정부가 펼치고 있는 한미FTA 최고의 여론전은 다름아닌 협상 결과 '은폐'다.

<b>자동차</b>=특히 정부가 이번 협상의 '최대성과'로 홍보하고 있는 자동차 협상은, 일부 부문의 관세철폐를 3년 앞당기는 대신 비관세 부문에서 '신속분쟁해결절차' 등 우리측에 대단히 불리한 독소조항을 삽입하는 등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3000cc 이하 자동차에 대한 관세 즉시철폐를 얻어내는 대신, 우리측 모든 관세 즉시 철폐, 특별소비세 인하, 세제 변경 등 비관세부분을 완전히 양보했다.

그런데 이 비관세 부분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MFN(최혜국대우) 관세로 환원시키는 Snap back과, 협정을 위반할 경우 특혜관세를 철회하기로 한 이면 합의 등은 협상결과 발표당시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그나마 협상을 통해 기대되는 이익을 단 한번에 모두 되돌려버릴 수 있는 심각한 독소조항을 합의해주었는데도 정부는 이를 감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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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역대표부(USTR)이 3일 발표한 한미FTA자동차부문에 대한 보도자료에는 한국이 배기량 기준 세금부과를 철폐하고 이를 다시 부과할 수 없도록 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비관세 부분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MFN(최혜국대우) 관세로 환원시키는 Snap back과, 협정을 위반할 경우 특혜관세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사진=공동취재단/민중의소리

협상단은 또 일반 분쟁해결 절차보다 두배이상 빠른 '자동차 신속분쟁해결절차'를 도입해 미국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기로 한 것도 숨기려다가, 2일 '한겨레'의 보도로 폭로돼 협상이 타결되기도 전에 망신을 샀다.

<b>쇠고기</b>=협상 타결 직후 미국측 반응이 심상치않은 쇠고기는 한미FTA 협상 자체를 아예 무효로 되돌릴 수 있는 폭발력을 안고 있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인 2일 아침 만면에 미소를 띠고 기자들 앞에 나타난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는 분명히 "미측이 (쇠고기 관련) 우리 입장을 이해했다"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노 대통령의 구두약속'으로 협상이 타결되었음을 시사했다.

그런데 한미FTA 협상 타결 직후 일명 '미스터 쇠고기'인 맥스 보커스 몬태나주 상원의원(민주당)이 성명을 내어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해결하자는 애매한 약속은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수입금지가 완전히 풀리기 전까지는 상원이 한미FTA 비준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격분'한 것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숀 스파이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도 4일 USTR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쇠고기에 대한 명백한 통로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런 바티아 USTR 부대표는 이날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완전히 재개방하기 않으면 의회에서 비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국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2일밤 노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밝힌 쇠고기 수입 구두약속으로 쇠고기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다 받아들인 것이 아닌 것 같다.

민 차관보의 말처럼 '다 이해한' 미국에서 이처럼 계속 뒷말이 나오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한미FTA 시작 조건이었던 쇠고기가 협상이 끝난 다음에도 한미FTA 자체를 무효로 돌릴 폭발력을 여전히 가진 가운데, 혹시 한미간에 쇠고기 관련 공개되지 않은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이처럼 '하루속히 쇠고기를 수입하라'며 성화지만, 우리나라가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하려면 농림부에서 '8단계 검역 평가'를 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년은 있어야 수입재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b>개성공단</b>=관심을 모았던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의 경우는 그야말로 코미디극이 진행중이다.

정부는 타결당시 "원칙적으로 역외가공지역을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협정문에 명시했고 실제 지정은 추후 실행하기로 했다"며 그동안 스스로 밝혀온 '빌트인'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발표했다.

지금 안되는 것을 협상이 다 끝난 다음에 나중에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황당한 논리라는 것은 차치하고, 그 다음날 한덕수 총리의 개성공단 관련 발언은 오로지 '대국민홍보'에만 눈이 멀어 내뱉은 거짓말에 가깝다.

한 총리는 3일 "개성공단에 `빌트인'이 적용됐된 게 아니라, 한국기업이 역외가공지역에서 물건을 생산하면 무관세로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개성공단을 사실상 인정받았다는 뉘앙스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캐런 바티야 USTR 부대표는 협상 직후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에 역외가공지대 문제를 논의하는 위원회를 만들자는 조항이 있을 뿐"이라면서 "북한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미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조항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논란이 커지자 미 경제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까지 4일자 신문에서 "한미간에 개성공단을 놓고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티야 대표는 4일(미국 시각) USTR에서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현재 한미FTA의 적용을 받지 않게 돼 있다"면서 개성공단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한국산으로 원산지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은 준 적이 없다는데, 우리는 국무총리가 나서 '얻었다'고 국민에게 홍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b>투자자-국가소송제</b>=이뿐만이 아니다. 타결이 가까워질 무렵 정부관계자들은 기자들의 문의에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서 부동산 정책이 제외'되었다며 올해초 한미FTA 범국본이 계속 제기해온 ISD의 문제점이 해소된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결과 발표에는 '부동산 가격안정화 정책'만 제외되었음이 확인됐다.

다시말해, 용적률, 그린벨트, 도시계획 등 십 수가지가 넘는 부동산 정책 중 딱 하나, 가격 정책만 제외되었을 뿐인데도, 정부는 '협상결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소송 대상이 되지 않을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것이다.

부동산 가격 정책은 집을 살때 은행 대출을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느냐를 정한 것으로, 엄밀히 말해 ISD 소송대상이 될 수 있는 공공정책이라기보다 은행간의 금융 문제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한가지 경우를 빼고, '외국인이 땅을 사서 공장을 지으려는 지역이 정부의 그린벨트 정책으로 묶였을 경우', '외국인이 땅을 사서 20층짜리 건물을 지으려고 했는데 정부의 용적률 정책때문에 10층밖에 못짓게 될 경우' 등 '나머지 전부'에서는 여전히 외국투자자가 '기대했던 이익이 침해당했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이다.

<b>LMO, 광우병 못지않은 메가톤급 위험성</b>=한편 3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최재천 의원은 한국이 유전자조작생물체(LMO) 수입과 관련한 6개항에도 합의해주었다고 폭로했으며, 이 자리에 출석한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는 "사실이다"고 인정했다.

미국이 요구해 우리측이 들어준 6개항의 내용은 ▲미국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식용,사료용,가공용 LMO 수출시 한국내 위해성 평가 생략 ▲양국간 안전성이 검증된 LMO간 교배로 자란 LMO 수입시 한국내 위해성 평가 생략 ▲한국내 검증되지 않은 LMO 작물 수출시 양자간 협의채널 구축 ▲한번 승인된 LMO의 경우 추후 수입시 별도승인 불필요 ▲미국내 LMO법 발효 전 별도협정 체결 요구 ▲미국내 LMO 표시의 투명성·예측가능성·WTO(세계무역기구) 합치성 요구 등이다.

이밖에 3일 저녁 한 방송의 9시 뉴스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현재유보'로 합의해 아예 다시 되돌릴 수 없도록 못을 박았다는 새로운 사실이 보도되었다.

협상 타결 직후, "협상을 너무 잘해서 할말이 없다"던 정부의 홍보성 멘트는 점점 소리가 작아져가고, 불과 이틀 사이에 정부가 은폐하려 했던 '협상의 진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거짓말의 끝은 어디인가?

<공동취재단=임은경 기자/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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