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에 팔촌까지’ 잔인한 수법 언제까지...

장투사업장④ 가정을 파탄 내는 손배가압류
‘사돈에 팔촌까지’ 잔인한 수법 언제까지...

통상 가압류는 어떤 ‘빚’을 청산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말한다. 손해를 입히거나 입게 되면 누구나 보상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노사관계로 넘어오게 되면 변질된다. 손해에 대한 빚 청산 차원이 아니라 사측이 노조를 무력화하는데 악용하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도 가압류는 노동활동 족쇄로 작용한다. 결국 노사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장기투쟁을 구조화 한다.
2001년부터 7년째 손배가압류로 장기 투쟁중인 금속노조 산하 시그네틱스 사업장의 경우 임금 7억원, 주택 8억원, 조합비 3억원 등 가압류 금액만 18억원에 이른다. 특히 당사자를 떠나 신원보증인에게까지 집, 땅 등을 가압류했다. 적용 대상도 임금에서 예금, 자동차, 전세금, 주택 등으로 확대했다. 실제로 한 조합원은 입사 때 신원보증을 해준 친정오빠 주택이 가압류돼 어려움이 이중삼중 가중됐다. 이런 식으로 재산이 가압류되면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진 노조간부라도 해고소송이나 파업을 포기하게 된다. 이럴 경우 ‘묘하게도’ 사용자들은 가압류를 풀어준다.
해고싸움에서 복직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시그네틱스의 경우 2003년 이후 복직이 10여 명 이상 됐으나 가압류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이다. 계속해서 가압류된 임금에서 일정액이 공제되고 있어 생계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손배 본안소송 없이 가압류만 묶어두고 있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시그네틱스 임은옥 사무장은 “사용자들이 어떤 형사처벌이나 법적 구속력 없이 소송에 들어갈 경우 소송에 대한 부담감이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명분에 있어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실제로 손해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가압류를 함으로써 ‘소송’에 의한 어떤 결정보다도 금전적, 정신적 압박을 통해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이 손배가압류때문에 노사관계는 극한 대립과 감정으로 일관돼 장기투쟁을 부추긴다. 이미 3년째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는 64명 조합원에게 54억 손배청구를 한 상태이고, KTX사업장 3억 6천여만원이 넘는 개인손해배상 청구로 경찰, 검찰 조사 등에 시달려왔다. 이외에도 GS칼텍스 29명에 대해 26억1천만원과 조합비 8,500만원, 3년간 장기 투쟁중인 칠곡환경노조의 경우 4명 구속에 2천7백만원으로 묶여있다.
칠곡환경노조의 경우 지난달에 민주노총 노사관계대책위에서 노동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손배가압류에 대한 논의를 했지만 “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결론만 내려진 상태이다.
하지만 ‘압박’에 목적이 있어 신청은 하지만 실제 소송은 하지 않는 일반적인 형태를 넘어서는 악질 사업장도 더러 있다. 금속노조 산하 하이텍알시디코리아 사업장이 이에 해당한다. 2005년 5월 하이텍 자본이 조합원 8명에게 각각 2억 한도 내에서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하며 7억 6천만 원을 손해배상 청구한 손배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이텍알시디코리아 김혜진 지회장은 “최근 사측에서 명분이 없어 소송이 잠시 미뤄지고 있는 상태이지만 이전한 본사 집회를 빌미로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형사사건으로 몰아 소송에 이용하려는 것 같다”며 “재판이 있게 되면 가압류가 아닌 실제 집달관이 집행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아 더더욱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매월 꼬박꼬박 월급으로 사는 노동자들에게 재산 가압류는 엄청난 심리적 부담일 수밖에 없다. “풍족한 재산 일부를 가압류하는 것도 아닌데, 가정과 생활을 파탄시키는 잔인한 수법”이라는 얘기다. 노동계와 노동법학자들은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불법파업을 양산하는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가압류를 해제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여전히 현장에서는 싸움에서 이겨야만 가능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결국 장기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오늘도 확성기와 앰프, 마이크를 들고 현장과 거리로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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