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산별로 가는 희망, ‘함께 가면 길이 된다’

순환산별기고_화학섬유노조①
제조산별로 가는 희망, ‘함께 가면 길이 된다’

섬유산업 구조조정으로 2001년 울산의 태광, 효성노동자 천여명이 현장에서 내몰렸다. 대하합섬, 금강화섬이 문을 닫았고 한국합섬은 1년이 넘도록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800일이 넘는 코오롱 정리해고 노동자 투쟁 또한 섬유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비롯된 일이다.
화학섬유 산별노조 건설은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됐다. 2000년 3만명이 넘던 조합원이 화섬구조조정 과정에서 2만4천명으로 줄었다. 섬유산업에 이어 석유화학산업도 3~4년이면 산업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질 것이란 예측이 심심찮게 나온다. 한미FTA체결이 그 속도를 가속할 것은 뻔하다.
제조업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산업구조조정 과정은 노동을 철저히 배제한 폭압적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고용 불안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조직 존폐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화섬에서 산별노조운동은 일자리가 위협당하는 현실에 맞서는 노동 대응력을 갖추기 위함이다. 또 산업노동정책 대안을 마련해나가기 위해서다 자본의 단기적 이윤 추구만을 잣대로 삼고 있는 비용경쟁력 위주 구조조정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 투쟁전선에 노동자를 튼튼히 묶어세우기 위해 화섬도 산별노조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 3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화섬산별노조의 현실은 아직도 미약하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연맹 내 미전환사업장 산별전환을 다시금 추동해 화섬차원 산별노조운동을 매듭지어야 하는 문제가 걸려있다.
연맹 2만4천명 조합원들 중 화섬노조로 전환된 조합원은 6천여명에 불과하다. 작년 금속 동시산별전환 추진으로 대공장들이 대거 산별노조로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화섬연맹도 미전환사업장 동시 산별전환을 추진했으나 몇몇 사업장의 전환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산별전환 실패 이후 작년 하반기, 연맹은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개별로 간부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그 결과 화섬 산별전환이 실패한 배경에 두 가지 점이 지적됐다. 우선 현재 산별로 조직된 화섬노조가 산별로서 역할과 전망을 가질 수 있느냐하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언제부터인가 현장이나 지역, 또는 중앙 어느 단위에서도 노동조합 일상 활동이 아예 부재하거나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화섬노조는 현재 6천여명으로 조직돼 있는데 미전환사업장 모두가 산별전환을 하더라도 2만4천명밖에 안 된다. 과연 산별로서 교섭과 투쟁 위력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 현장 조합원들 정서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제조산별노조 건설 문제는 화섬노동자에게 산별노조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산업구조조정과 산업공동화때문에 파생된 고용문제는 화섬 업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 전반에 걸친 문제이며 그 내용이나 해결방안 역시 별반 차이점이 없다. 따라서 제조산별노조 건설 문제는 화섬노동자에게만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15만으로 거듭난 지금의 금속노조에게도 조직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다. 더욱 큰 문제는 1천만이 넘는 미조직노동자, 특히 8백만이 넘는 비정규노동자에게 전망을 제시하는 노동조합운동으로 하루빨리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화섬연맹과 화섬노조는 이미 제조산별노조 건설을 산별노조운동 지향점으로 분명히 설정했다. 올해 금속노조와 함께 제조산별노조 건설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간다는 계획이다. 또 연맹 내 미전환사업장 산별전환방침도 화섬노조로의 전환투표가 아닌, 제조산별노조로 전환하는 투표방침을 가져갈 계획이다.
제조산별 건설 시기나 경로에 대해서는 금속과 논의 속에서 구체화돼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화섬 입장에서는 오래 끌고 갈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산별노조 조직운영과 활동력에 편차만 더욱 벌어질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맹 미전환사업장들은 화섬노조를 통해서 금속노조와 제조산별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화섬노조와 미전환사업장들이 동시에 제조산별노조에서 금속노동자와 한 번에 만나자는 것이다. 2001년 화섬이 산별노조 건설사업을 시작하면서 먼저 전환한 금속과 보건으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이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

임영국/화학섬유연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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