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안, 철회 가능성은 거의 없어

열린우리당이 26일 총파업을 불러들인 비정규 개악법안을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연내처리는 일단 유보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말바꾸기'와 '정략적 처신'이 보수정치권의 등록상표라는 점에서 29일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를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점은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12월2일 총파업'으로 배수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유보방침은 우선은 첨예한 전선에서 한 발 비켜서 '진검승부'를 뒤로 미룬 것으로 풀이된다.[사진1]
이는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지난 22일 이수호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나왔다. 이 의장은 이날 "비정규 입법안은 충분한 대화, 토론, 검토, 심의가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날짜를 박아 강행처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의장은 그러나 "당·정 관계상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국회에 회부된 법안을 일방적으로 철회하는 건 곤란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는 사실상 연내처리를 유보할 수는 있으나 법안을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노동부 주도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과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을 입법발의 하던 당시, 사용자에게 맘놓고 기간제·파견직을 쓸 수 있도록 칼자루를 내맡기면서 '연내처리'를 공언하던 서슬퍼런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정부 여당의 이같은 태도변화의 배경에는 우선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자리 잡고 있다. 26일 총파업을 기점으로 법안을 폐기하지 않을 경우 파업의 깃발을 접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줄곧 비정규 개악법안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김대환 노동부장관도 24일 밤 KBS 뉴스라인에 나와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일단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으니 그 절차를 존중하겠다"고 밝혀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취했다.
현재의 복잡한 정치지형도 비정규 법안 강행처리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정부 여당이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 과거사청산법 등 이른바 개혁입법과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안 등 민감한 현안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처지다. 비정규 법안의 경우 노동계와 진보진영 뿐만 아니라 표면상 재계와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열린우리당에 이어 지난 23일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 이경재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등도 만났다. 한나라당은 이 자리에서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가 반대하는 비정규 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은 반대하며,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특히 29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대체토론을 종결하지 않고 법안심사소위로 넘기기 않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된다.
국회 상임위의 법안처리는 '법안상정-제안설명-대체토론-법안심사소위 회부-법안의결'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이에 비춰 29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심사소위 회부 여부가 이번 회기내 처리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정부 여당이 선선히 개악법안을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듯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 고용 남용방지와 차별해소'라는 애초 취지와 동떨어진 '대다수 노동자의 정규직화'로 정책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개악법안 처리를 둘러싼 노동계와 정권·자본의 일대결전이 잠시 늦춰졌을 뿐이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기획실장은 이와 관련해 "열린우리당이 '강행처리는 안 할 테니 총파업은 철회해달라'며 유보방침을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라며 "29일 국회 환노위 상황을 비롯해 눈을 치켜뜨고 지켜봐야 하고, 법안처리가 설령 내년으로 넘어갈지라도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쟁취를 위해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희ddal @ 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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