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평양방문기

15일 아침 05:30, 대동강 건너편 평원에서 번져나는 밝은 햇살에 부스스 잠이 깨다. 아직 안개에 싸인 평양 시가지, 안개를 물리치기 시작한 대동강변에 아침이 평화롭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호텔주변의 강변 산책에 나섰다가 북편 강변에 자리하다.
건너편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영감님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아래 편 다리 위로는 자전거 출근 행렬이 분주하다. 새들은 수양버들 위를 떼 지어 날며 노래하고, 강 가운데에는 모래자갈을 퍼 올리는 바지선이 떠있다. 분주한 서울에서 벗어나 이곳 대동강변에 앉아 있자니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지상최대의 휴식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유를 즐길 수 없는 긴박한 정세의 한가운데에 나는 서있다. 요동치는 정세의 변화무쌍함이 대동강에서 조차 생각을 낚아 올리게 한다. 어제 인천공항을 떠나올 때 경찰에 둘러싸인 채 평양 방문을 성토하던 메카폰 소리가 맘에 걸린다. 어제 밤 환영만찬장의 냉랭한 기운과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느껴진 14일 오후 개막식도 개운치 않다. “최근 쌀 차관제공을 연기해 버린 남측 당국의 조치에 대해 북측의 서운함이 있는 것일까? 자주를 옹골차게 지켜가지 못하는 남측에 대해 그리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와 통일을 훼방 놓는 미국에 대해 북측에 맺혀있는 서운함과 분노가 불쑥 커진 아닐까? ” 하는 불안감이 언뜻 뇌리를 스친다.
이런 불안감이 적중한 것일까? 15일 오전 이번 평양방문의 본 대회인 민족단합대회는 순조롭지 못했다.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면서 우여곡절 끝에 17일 폐막식과 함께 치러지면서 많은 아쉬움과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단합대회 협의과정에서 하루 반을 허비하는 통에 참관일정과 공연관람 일정이 절반 정도 날아가 버렸다.
그나마 방문 첫날 오후 인민문화궁전에서 관람한 만수대공연단의 공연, 특히 항일무장투쟁사를 무용극으로 표현한 “눈이 내리네” 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또한 공항이동 길과 참관행사 이동 길에 느낀 평양 시가지의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은 시골 출신인 나에게 고향 같은 편안함과 친숙함을 주었다. 대평원에 자리한 채 살아있는 생태환경을 가진 대동강과 곳곳에 자리한 연못과 숲이 한데 어우러진 평양은 대체적으로 프랑스 파리를 연상케 하였고, 단조로운 회색계통의 건물과 거리의 조형물 그리고 가로간판만 허용된 절제된 간판문화는 회색도시 로마를 넘어섰다. 아쉬움과 함께 깊은 울림을 간직하게 된 3박4일의 평양일정을 마친 후 나는 조경을 배우고 수목원에서 일하고 있는 딸 에게 “우리 아씨가 평양을 보면 좋아하게 될 것이다. 기회를 잡아 도시조경 공부를 평양 여행으로 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권했다

민점기/민주노총 통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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