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도취’ 모습을 비추는 거울

패랭이기자의 더듬이수첩
‘자아도취’ 모습을 비추는 거울

지난 19일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오는 25일 예정된 금속노조 파업에 대해 “불법 파업에 원칙대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6월 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이사회가 한국을 노사관계 모니터링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의 노동정책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갔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자평까지 덧붙였다.
지난 12일에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시행령이 시작 40여분 만에 ‘국무회의’에서 전격 의결됐다. 이번 시행령 통과는 예상보다 일주일 앞서 전격 단행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청와대 면담자리에서 “비정규 시행령과 차별시정은 개선 가능한지 검토하고 불법파견을 엄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로부터 단 6일 후 원안대로 전격 통과된 것이다. 그동안 ‘개선 가능한지 검토’한 결과가 이런 것인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이 이석행 위원장을 왜 만났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대목이다.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하는 회의기구다. 국무회의에서 모든 국무위원의 자격이 동등하고 차관회의를 이미 거쳤으며 다수결에 의한 합의의결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나, 주무부처인 노동부장관이 빠진 상태에서 해당주무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의아하다.
이날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파리 OECD 이사회에 가 있었다. 정부가 노동법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는 쪽으로 홍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민주노총을 합법화했고 교원과 공무원의 단결권을 보장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복수노조 허용 문제와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제한 문제 등 ‘선진적’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 그러한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노동부는 노동정책에 대한 판단기준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조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150여만 명)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에 통과시킨 비정규시행령은 800만 명이 넘는 이 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주기는커녕 고착화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1,500만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노조와의 형식적인 관계를 떠나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법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를 보편적으로 개선하는 쪽으로 가야 옳다. 그리고 이 나라 국무회의는 이런 방향으로 심의하는 국가기구가 돼야 한다. 오죽하면 모 정치인이 “국무회의가 조선시대 어전회의(임금 앞에서 중신들이 국사를 논의하던 회의)만도 못하게 전락한 것 같아 심히 개탄스럽다"고까지 할까. 자아도취에 빠진 정부의 모습이 비쳐지는 거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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