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패랭이 기자의 더듬이수첩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6월 25일 저녁8시 장충체육관. 보건의료노조 2007 산별파업전야제. 연두빛깔 감동의 물결이 꿈틀댔다. 그것은 ‘돈’이 아닌 ‘생명’이었다. 생명의 에너지 그것이었다. 2004년 고려대 첫 산별파업이 ‘군사작전’이었다면, 지금은 ‘코드작전’이었다. 너도나도 형형색색의 빛깔에 동화됐다. 부채를 흔들면 파란색과 노란색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곧 모든 이의 ‘바람’으로 됐다. 휴대폰을 흔들면 형광불빛의 신호가 오갔다. 그 신호는 곧 모든 이의 ‘소통’으로 통했다. ‘행진’을 부를 땐 함성이 오갔다. 그 함성은 곧 모든 이의 ‘전진’으로 공유됐다.
구호를 외칠 때마다 장충체육관은 떠나갔다. 꽉 메운 5천석의 의자도 들썩였다. 이것은 인터넷과 같은 ‘가상’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노동현장의 저력은 바로 아날로그의 힘이다. 온라인 네트워크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과 마음이 서로 직접 통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함께 부대끼는 것이다. 이처럼 아날로그적 속성은 인간사회의 근원적인 그 어떤 것이다.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것. 작은 것 하나에도 큰 박수와 웃음이 쏟아지는 집단의 속성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집단적 에너지 분출현장은 많다. 한강변에서도, 각종 체육관에서도 공연은 많이 있다. 즉흥적으로 대학로에서도 있고 스포츠 현장에서도 함성과 구호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보건의료노조의 집단적 에너지 표출의 장은 이들과 사뭇 다르다. 바로 한 목표를 갖고 함께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조직적 움직임은 결코 개인들의 자유에 의한 것이 아니다. 몇몇의 단순한 오락놀이 참여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산별투쟁의 역사적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최근 현장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집회참석 규모도 줄고 있는 분위기다. 현장의 일상 활동은 침체돼 있는 형편이다. 보건의료노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산별파업전야제에서 새롭고 신선한 감동을 몰고 왔다. ‘한다면 한다’는 그들의 기풍이 증명된 셈이다.
장충체육관이라는 장소 상의 실험이 일단 신선하다. 공연에 어울리고 좌석도 편하다. 밀폐된 장소에서의 응집력이 돋보이고 비가 와도 괜찮다. 매년 파업집회 때 우천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의 결과다. 공연문화와 운동을 상관시키는 것 역시 새로운 실험이다. 현장에서 일손을 놓고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산별 조합원들의 경험은 소중하다. 그것은 추억이 되고 삶의 새로운 충격과 경험을 갖게 한다.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활력소를 되찾아주는 자리로도 산별전야제의 몫으로는 충분하다.
꿈과 노래가 있고 열정과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좋았다. 함께 즐기고 웃고 뛰고 떠들고 마음대로 고함지르는 운동이 있어 좋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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