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까지 ‘계산’할 수 없는 이유

패랭이기자의 더듬이 수첩
차별까지 ‘계산’할 수 없는 이유

쇼핑은 효용과 만족의 일상이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행어까지 나돈다. “왔노라, 골랐노라, 만족했노라”라며 자기만족을 표현한다. 이쯤 되면 상품은 욕구실현의 수단이자 가치에 대한 기준이다. 모든 것은 상품으로 통한다. 기분이 나쁠 때는 쇼핑으로 기분전환을 한다.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도 쇼핑은 좋은 수단이다.
이제 쇼핑은 가족들의 문화공간으로 점점 넓혀간다. 문화센터, 의료시설, 동물병원, 자동차 정비센터, 안경점, 피부관리실, 여행사와 은행까지 ‘원스톱’ 서비스 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다. 쇼핑카트에 실려진 아이들은 연방 눈을 떼지 못한다.
계산대에 놓이는 저마다의 상품들이 줄을 잇는다. 바코드와 신용카드를 읽는 기계의 소리가 적외선 불빛과 함께 번쩍인다. 저마다 가득 담은 카트의 물건은 곧 자동차로 옮겨간다. 여성들이 사회진출 하면서 남성들은 카트맨이 돼버렸다. 일상과 그 역할까지 대형할인매장으로 유입되고 유통되는 모습이다. 쇼핑은 이제 현대도시문화에서 거스를 수 없는 패턴이 됐다.
이러한 패턴에 일대 변화의 조짐이 술렁인다. 상암동 홈에버 할인매장에 카트가 섰다. 에스컬레이터도 섰다. 홈에버 계산원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카메라 옆에서 사진도 꺼려하던 노동자들이 며칠 새 ‘투사’가 된 셈이다. 계산대 주변이 농성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진열대의 상품들은 꼼짝없이 ‘진열’을 만끽하고 있다.
최근 홈에버는 5월 2,047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지난해 대비 약 40% 증가했다. 까르푸 당시 월 최고 매출 1,790억원(2005년 7월)을 14% 정도 웃도는 금액이다. 지난해 4월 까르푸 인수 이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도 했다. 그런데 홈에버는 7월 1일 비정규직법 시행과 관련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매장 직원 3,100명 중 2년 이상 근무한 약 1,100명을 대상으로 ‘직무급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직무급제는 ‘별도 급여 테이블’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나머지 2년 미만 2천여 명의 비정규직 전원이 해고될 우려감도 팽배한 상황이다.
“우리는 비정규 노동자입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고객님들께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투쟁이 끝나면 정말 친절히 고객님들을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들의 호소문이 예상외로 진지하고 친절하다. 역시 이들은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감정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그 감정도 무한대로 참기만 하는 수동적인 것은 아닐 터. “고객의 접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만족이 곧 고객서비스로 이어지는 유통업의 특성상 이들의 근로여건 개선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주변의 지적은 상당히 타당하다. 고용불안과 차별까지도 ‘계산’할 순 없지 않겠는가. 강상철 기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