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안 언론노조위원장의 검찰 고발 및 진정에서 촉발된 검찰의 수사는 2004년 4·15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에 대한 언론노조의 지원에 대해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를 씌우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직 민노당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언론노조의 전 임원 두 명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해 있다. 두 임원이 받고 있는 혐의는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제공 금지조항(정치자금법 제31조와 제45조)을 어겼다는 것이다.

공식기구서 불법정치자금 조성 ‘어불성설’

검찰은 언론노조의 총선투쟁기금 모금 과정 자체에 불법 정치자금 조성이란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한 마디로 터무니없다. 언론노조가 1인당 1만원씩의 총선투쟁기금을 모은 때는 2004년 2월이다. 이 기금은 2003년 하반기부터 중앙집행위원회와 중앙위원회의 결의, 2004년 2월19일 대의원회의 결의를 거쳐 모은 돈이다.

세상에 공식 의결기구의 결의를 거쳐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경우는 없다. 이렇게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모은 노조의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 개악안이 발효한 때는 2004년 3월14일이다. 언론노조의 총선투쟁기금 모금은 시기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것이다.

이를 문제삼을 수 없게 되자, 언론노조 일각에서는 ‘누가 당시에 불법으로 전달하라고 했느냐’는 속보이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50년만의 진보정당 원내진출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노조의 정치자금 제공이 갑자기 금지됐다고 1만2000여 명의 조합원이 1만원씩 모은 총선투쟁기금을 놀려두고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는 것이다.

물론 검찰은 개인이 아닌 노조의 기부가 실정법 위반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직접적인 자금의 제공뿐 아니라 노조라는 단체의 비용이 드는 용역의 제공이나 간접적인 지원 활동도 모두 실정법 위반이다. 언론노조 일각에서 주장하는 ‘자금 제공이 아닌 다른 지원 활동을 했어야 한다’는 논리가 책상물림의 산물임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노조의 정치자금 제공이 허용된 때는 2000년 2월부터다. 그것도 무한정이 아니라 2억5000만원 한도 안에서였다. 이는 1995년 노조의 정치자금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청구가 제기된 뒤 헌법재판소가 4년을 끌다가 1999년 11월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헌재는 노조의 정치자금 제공 금지가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허용된 지 불과 4년 만에 노조의 정치자금 제공은 또 다시 금지됐다. 2003년부터 진행된 2002년 대선자금 수사로 SK그룹이 한나라당에 차떼기 등의 수법을 동원해 100억원을 불법 지원하는 등 기업의 파렴치한 불법 정치자금 제공 실태가 드러났다.

이에 2004년 2월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 정치개혁특위 산하 정치자금 소위원회는 기업의 불법 정치자금 사태에 대해 ‘모든 단체와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를 해법으로 내놨다.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한 정치자금법 개악안은 2004년 3월14일 발효했다.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 금지와 함께 형평성을 맞추는 차원에서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까지 금지시킨 것이다.

한나라당 차떼기 수법 계기 법 ‘개악’

이런 상황에서 당시 언론노조 집행부는 소액공제를 활용해 민노당 의원들에 총선투쟁기금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1인당 1만원씩 모은 돈을 개인 전부가 이동하여 전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함께 전달한 것이다. 이를 ‘편법’이라고 지적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으나, 불법은 전혀 아님을 강조한다.

언론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현행 정치자금법이 노동조합을 포함한 법인이나 단체의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경우 2000년 2월 정치자금에관한법률 개정 이후 기업이 저지른 것과 같은 표현 및 결사의 자유를 남용한 경우가 없었으나, 2004년 3월 표현 및 결사의 자유를 아예 금지당하고 말았다. 이는 지금이라도 개선돼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조합의 표현·결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실질적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기업의 표현 및 결사의 자유 남용을 막기 위해선, 2004년 3월 개악 이전 때처럼 정치자금 제공 때 이사회 의결이나 주주총회 승인을 전제로 일정 한도 안에서 기부하게 하면 될 것이다. 일정 한도 안에서 단체 및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 허용과 개인의 소액공제제도가 병행될 때 편법성 논란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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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언론노조 정책실이 7월4일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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