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저지와 의료공공성 합의 등 새로운 가능성 열어

2007 보건의료 산별교섭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보건의료 노사는 7일 한양대의료원에서 열린 11차 산별중앙교섭에서 교섭과 정회를 거듭하는 12시간 마라톤 교섭 끝에 새벽2시경 막판 쟁점이었던 △비정규직 문제 △임금 △산별 5대 협약을 일괄 타결하면서 마침내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산별교섭 4년차인 보건의료 산별교섭의 극적인 타결은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의료운동에 있어 몇 가지 점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우선 이번 보건산별교섭은 비정규 기간제법 시행 기간과 맞물리며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진행했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번 산별합의는 정규직 임금과 비정규직 문제가 연동돼 진행된 측면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 산하 병원 특성별로 4.0~5.3%의 임금인상 폭이 주어졌고, 이중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1.3~1.8%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처우개선에 사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정규직 임금인상 기준으로 볼 때 1.3~1.8%는 보건의료노조 산하 전 병원을 합계할 경우 300억 원 가량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립대병원의 경우 임금인상 총액 1% 재원은 병원별로 대략 10~22억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노조는 산별교섭 타결에 기초해 볼 때 300억 원 이상의 재원을 확보, 이후 현장교섭을 통해 전체 11,800명의 비정규직(직접고용 비정규직 6,714명, 간접고용비정규직 5,151명, 전 직원 대비 20% 수준) 중 직접고용 비정규직에서 5,500명 이상 정규직화와 간접고용비정규직은 고용보장과 복지혜택 확대가 기대된다.

특히 이번 산별합의로 인해 병원에 종사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비정규 악법에 의해 해고되거나 외부 용역화 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화 및 차별시정, 처우개선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이번 산별합의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산별차원에서 ‘비정규직대책 노사특위’를 구성하여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화 대책, 단계적 정규직화 방안 등에 관해공동으로 연구조사하고 그 효과적인 시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또한 이번 보건산별교섭은 우리나라 노동계가 산별교섭시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산별 합의에서 그동안의 노사관행을 넘어 기업을 뛰어넘는 초기업 논의구조를 중층적으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올해 보건산별교섭은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면서 △산별중앙노사운영협의회 △비정규직대책 노사특위 △의료노사정위원회 등의 실질적인 가동에 합의함으로써 초기업적 단위 논의와 산별차원 노사간 대화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금속노조 정치파업을 둘러싼 ‘산별교섭 회의론’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교섭비용 증가’나 ‘강경파업 우려’와 같은 사용자들의 논리보다 일정정도 산별노사관계의 현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척박한 한국의 노사관계 현실에서 한국의 산별운동이 또 한걸음 전진할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산별중앙노사운영협의회를 구성 운영키로 한 합의사항이 이를 말해준다. 이 협의회에서 향후 산별노사관계의 발전방안, 정책과제연구, 보건의료산업의 발전을 통한 고용안정화 대책조사연구와 해결책을 마련하는 등 효율적인 대안을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소위원회를 두게 되는데 ‘산별교섭준비소위원회’는 상견례 3개월 전부터 교섭의제와 안건, 절차와 방법 등 제반사항을 준비할 수 있다. 또 ‘고용안정및교육훈련소위원회’는 △고용안정 및 산별임금체계에 관한 연구와 정책개발 △교육연수제도의 개선과 보건의료산업연수원 건립기금의 국회 청원 △ 고용기금활용을 통한 보건의료산업노동자 고용안정대책 강구 △사학연금제도 개선방안 마련 등을 목적사업으로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번 보건산별교섭은 ‘의료공공성’이라는 의제를 더욱 부각시켰다. 의료법 저지 투쟁에서 보여준 간부들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또 이번 산별협약에는 ‘환자권리장전’을 만들어 선포하고 이를 공동 실천키로 했다. 이에 병실을 법정기준 이상으로 확보하고, 환자 편의와 쾌적한 환경을 위해 적정규모의 병실면적과 시설을 확보하도록 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제공하고 도농교류 차원에서 1지역본부 또는 1병원 1촌 자매결연운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 또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역과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소외계층의 의료수혜를 확대하기 위하여 의료봉사활동을 노사가 함께 추진하고, 의료기관의 혈액부족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헌혈운동에 노사가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 산별교섭은 노사자율교섭을 더욱 촉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노사자율교섭을 가로막으면서 노동탄압의 대명사였던 직권중재 악법이 내년 폐지를 앞두고 중노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회부가 보류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비록 합법 파업의 길이 열렸지만 노조도 무리한 파업보다는 유연한 전술로 환자불편을 최소화했고 명분 있는 투쟁에 전력을 기울였다. 결국 합법 공간에서 노사가 자율타결을 통해 빠르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직권중재가 없는 노사자율교섭의 모범적인 산별교섭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타결 이후 곧바로 산별현장교섭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산별중앙교섭에서 합의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병원에 대해서는 대각선교섭을 통해 집중타격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에 노조는 9~13일을 집중교섭기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 안에 대한적십자사, 한국보훈병원 등 산별중앙교섭 미타결 특성교섭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포함해 각 지부별 산별현장교섭 타결을 위해 집중교섭을 지원하기로 했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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