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에게는 제발 비정규직의 설움이 없게”

사람과사람_이랜드노조 조합원 양명희(58)
“내 아이들에게는 제발 비정규직 설움 없도록”

“어머니 끝까지 싸우세요” 아들(31) 얘기를 전해주는 이랜드노조 양명희(58세) 조합원. 홈에버 상암점 투쟁과정에서 그는 ‘주방언니', '왕언니'로 통한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주방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들이 와서 보고 그렇게 얘기해 주고 갔다.
파업한 지 열흘이 넘었다. 장기전을 띠는 상황이다. 정작 “바깥세상을 모른다”는 양 씨는 “승리에 대한 믿음은 갖고 있지만... 공권력에 의해 끌려갈 것도 같은데, 빨리 끌려갔으면 하는 심정도 든다”고 말했다.
“이렇게 길게 갈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여자, 엄마, 부인, 며느리 이 4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여성의 절절한 하소연이다. 남자들은 투쟁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정주부들이 열흘 넘게 가정과 격리되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흐트러짐이 없다.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해 보일 정도란다.
입사 4년차인 그는 조합에 가입한 지 2개월 밖에 안 됐다. 그것도 호혜경 동료 조합원 해고사건을 보면서 조합에 가입하게 됐단다. 2달 만에 갑작스레 이렇게 싸움이 커졌다고 그는 전한다. “‘고용안정 보장’만 된다면 상여금 없이 80만원 받고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만큼 이랜드에 인수되기 전 까르푸에서는 고용승계가 문제없을 걸로 봤다. 하지만 “유통을 잘 아는 회사이길 바랬다”는 그의 소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의 집이 용인이라 버스 2번 타고 2시간 반 걸리는 거리이지만 “일하는 것만큼은 너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돈을 떠나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홈에버 오픈 멤버로서 자긍심도 있다며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7월 1일자로 고용보장이 안 된다는 점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불평불만 없이 일해 왔는데 이런 ‘날벼락’은 없다며 얼굴을 붉힌다. 때문에 “끝까지 이겨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여기서 이기지 못하면 ‘그만두자’라고 동료들과 함께 뜻을 모았다고 한다.
그는 홈에버에서 일명 ‘까대기’일을 한다. 농산물을 풀어서 진열하는 작업이다. 까르푸에서 베이커리 부서에 있다가 없어지는 바람에 농산물 부서로 옮겼다. 관절과 어깨에 무리가 가는 그도 캐셔(계산원)들만 보면 딱하다. 수납업무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여성에게 방광문제는 심각하다. 돈과 직결된 업무라서 한시도 자리를 떠날 수 없다. 결국 “방광염, 신우염, 하지정맥류에 다들 걸려 있다”고 그는 여과 없이 지적한다.
“여기서는 가장 아래 직급이다. 이런데도 고용안정이 안 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되묻는다. “기업윤리도 철학도 없는 이랜드 사용자”라고 그는 규정한다. 회장의 11조 헌금 130억 얘기를 들으면서 “내는 것을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돈이 있다는 얘기인데, 직원들한테도 베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대답이다.
이와 관련해 매장 안에 ‘기도실’이 있다고 귀띔한다.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기도 제목이 ‘목표달성’이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이익을 남겨야 하는지, 돈을 벌기 위한 기업 윤리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든다.
“이랜드가 까르푸 인수하면서 상암점 재오픈 할 때 직원들 고생 많았고 그래서 매출 전국 1위 매장이 될 정도로 4년 동안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며 “하지만 인센티브 하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방을 맡고 있는 그에게도 이제 책임이 무거워졌다. “이랜드 일반노조 일만 아닌 것 같다. 비정규직이 6-70%에 달하면서 비정규직이 되면 억울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 문제이다. 내 아이들이 그러지 말라는 법 없다. 내 아이를 위해서 법 자체가 수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도 내심 걱정이 앞선다. “정치적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정부와의 싸움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8일 전국 매장 투쟁 이후 판이 커져버렸다. 과연 정부를 막을 힘이 있을까 걱정도 된다. “자본가가 더 센 것 같다. 있는 사람이 요즘은 더 무섭다. 99개 가진 사람이 1개 가진 사람 것도 빼앗아가지 않는가”라고 현실을 개탄한다. “하지만 이왕 벌어진 일, 더 크게 해서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그는 못 박는다.
'왕언니'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믿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래서 후회 없길 바랄 뿐이다. “우리 손을 넘어갔다”는 양명희 조합원 말이 비장하기만 하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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