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사태와 정규직노조의 시대적 역할

패랭이기자의 더듬이수첩
이랜드사태와 정규직노조의 시대적 역할

이랜드사태가 폭발적으로 사회적 의제로 대두됐다. 이미 500일이 넘었지만 KTX의 비정규직 투쟁도 함께 병행해 있다. 물론 이랜드투쟁에 다소 가려져 있는 느낌은 든다. KTX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집단단식농성도 24일 종료됐다. 비정규직 문제를 공통 화두로 던지는 이 두 사건은 여전히 ‘정규직노조’의 시대적 역할을 되씹게 한다.
최근 사회적 정서는 정규직노조를 때리는 분위기다. 대부분이 정규직인 민주노총이 비정규투쟁을 하면서 ‘한계’ 논란이 뒤따랐다. 파업 때마다 ‘이기주의’라는 꼬리표도 늘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홀로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KTX여승무원들의 경우가 이를 말해준다.
민세원 KTX지부장은 “비정규 주체로서 할 것은 다해봤다”고 토로했다. 철도노조의 도움 없이는 상황타개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정규직노조의 도움이 절실함을 느낀 셈이다. 그들이 상암동 매장을 방문해서 “이랜드 조합원들이 매장의 유통을 마비시킨 것처럼 철도를 멈출 수 있는 실력행사를 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을 짓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랜드투쟁이 단기간 내에 이슈화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본질은 정규직노조의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감정노동’이라는 동질의식이 각별한 조건에서 동료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이에 정규직 조합원들의 위기감이 팽배하면서 급속하게 일어난 사건이다. 따라서 이랜드사태는 유통산업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문제의 현실적 위기를 먼저 체감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서비스산업 노사관계의 후진성도 이와 연동돼 사태를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통부문은 노동운동의 주류를 이뤄왔던 제조업(생산노동)에 비해 감정노동이라는 시대적 특징을 갖고 있다. 유통산업이 급격히 확대됐지만 이를 토대로 한 노사관계는 달리 훈련돼오지 못했다.
서비스산업 노사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김형근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판매를 중지시킨 유통노동자들의 정상적인 파업을 ‘불법점거’로 모는 노동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아무튼 이번 이랜드사태는 상당히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사회의 총체적이고 시대적인 모순이 응집돼 있는 느낌이다. 냉대적인 사회에 대한 여성노동자들의 저항, 계급(집단화된 유통노동자)의 새로운 부상, 감정노동으로의 사회적 비중 증가, 종교가 개입된 이데올로기화 등이 그것이다.
이번 이랜드투쟁이 ‘아름다운 연대’로 불리는 데는 정규직노조의 무게감이 들어있다. 철도노조의 KTX문제 개입과 뉴코아, 이랜드노조의 제2라운드 투쟁이 주목된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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