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다시 부상…임금 깎고 비정규직으로

한동안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가 유행하더니 이젠 '체온퇴직'이란 신조어가 나타났다. 직장인들의 체감 정년이 사람의 체온 36.5도에 해당하는 36.5세라는 것. 이들 신조어는 조기퇴직, 구조조정 등에 따른 고용불안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6일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 근로자에 소득보전 추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임금피크제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임금피크제에 따른 노동자 급여 손실분의 50% 정도를 정부가 보전해준다는 것인데, 국정홍보처는 다음날인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홍보처는 그러면서도 "정부가 '임금조정지원금제' 도입을 추진하는 건 사실"이라며 아직 논의 중인 상태고 지원수준이나 기간 등 세부방침이 정해진 건 없다고 덧붙여 여지를 남겼다.
이같은 소동은 임금피크제가 우리사회에서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금융권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하나둘 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해진 연령이 되면 임금을 깎는 대신 일정기간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50세 이후 중장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한 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가 새정부 추진과제의 하나로, 노동부도 고령자 고용촉진 방안으로 추진의사를 밝혔다. 노동부는 이어 지난해 3월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정년 후 고용을 보장하거나, 계약직으로 재고용(3월 이내)하는 경우 6개월(중소기업은 12개월) 동안 1인당 월 30만원의 '고령자고용촉진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5월에는 전국 170개 공기업과 정부 산하단체 경영진이 참석한 연찬회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공식 권고하면서 "임금피크제로 감소한 근로자들의 임금소득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예산처도 지난해 8월 '임금피크제에 관한 경영혁신 사례 설명회'를 열고 신용보증기금과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사례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공공기관이 이를 적극 활용토록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이 국내 최초로 '만58세 정년을 유지하되, 55세부터 3년 동안 임금액을 75%, 55%, 35%로 순차적으로 줄여 지급'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뒤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대우조선해양, 대한전선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투자기관으로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지난해 7월부터 선택형 임금피크제를 처음 도입했으며, MBC는 올해부터 근속연수가 높은 고위직급에 대해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산업별로는 금융노사가 지난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전제로 정년연장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올 들어 수출입은행이 시행에 들어갔고 우리은행이 3월, 산업은행은 8월부터 각각 시행할 계획이다.
재계도 임금피크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경총은 지난해 3월 발표한 '2004년 임금조정 기본방향'이라는 지침을 통해 연공서열 점진적 폐지, 성과주의 임금체계 확립 등과 함께 '50세 이상을 대상자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와 자본은 임금피크제를 우리사회의 고령화 대책이라거나, 임금격차 해소·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고령화하면서 늘어나는 임금비용을 이 제도를 통해 절감하자는 것이고, 이는 결국 연공급 체제를 폐지하고 성과주의 임금체계로 가는 과도기적 임금제도라 할 수 있다. IMF 경제위기를 거치며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을 내세워 장년층 조기퇴직과 비정규직 고용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진척시킨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실제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의 경우 일정 연령에 이르면 퇴직 뒤 계약직으로 재입사하거나(신용보증기금,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일반직 반납 뒤 업무지원직 전환 형태의 직군 전환(한국수자원공사), 직무변환(수출입은행) 등 비정규직 전환이 일반적이다.
민주노총 정경은 정책부장은 이에 대해 "비정규직이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넘고, 정규직도 고용불안이 상시화한 현재의 노동시장 조건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고용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밝혔다.
정은희 jspecial@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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