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의 경영학 진실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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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쟁기 민간인학살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죽이는 이야기’다.

대선 주자들의 권력 다툼과 아프간 탈레반의 인질 사태에 묻혀 그 존재조차도 희미해져가는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직 대량해고 이야기다.

희한하게도 이 모든 일들이 내게는 한 그림으로 보인다. 정통성 없는 정권의 권력기반 정지작업으로서의 대규모 민간인학살, 정당성 빈약한 대선 주자들의 권력 지향적 죽이기 싸움, 미국의 패권 추구적 전쟁에 기꺼이 이용당하는 한국 정부와 기독교 봉사단, 기독교도의 헌신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비정한 대량해고,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람 냄새 대신 권력과 돈 냄새만 물씬물씬 풍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순박한 민초들만 거푸 죽어난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가 깊숙이 개입돼 있는 ‘인질 사태’와 ‘이랜드 해고 사태’에서는 순박한 민초들의 종교적 헌신과 열정과 환상이 어떻게 권력과 돈에 이용당하는지 또렷이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가스, 패권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경제학이 작동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인질 사태’는 지면상 생략하고, 여기서는 ‘이랜드 사태’만 보자.

내가 이랜드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헌트’와 ‘언더우드’라는 중저가 브랜드 의류를 통해서였다. 결코 명랑할 수 없었던 시대에 나는 ‘명랑해’ 보이는 그 비싸지 않은 옷들을 입고서 가슴 속의 침울함을 속였던 것 같다. 이랜드는 기독교 기업이라 했고, 직원들도 기독교인만 뽑아 모두가 내 사업처럼 일한다는 소리도 그때 들었다.

직원들의 헌신을 기반으로 이랜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1997년 ‘공황기’도 비교적 무리없이 견뎌내고 더 큰 규모로 비약했다. 근년에 와서는 까르푸와 뉴코아, 킴스클럽까지 공격적으로 합병하며 일약 유수의 유통패션기업으로 떠올랐다.

나는 이랜드 초창기의 그 헌신적인 직원들이 이제 얼마만큼이나 보상을 받으며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이랜드 그룹은 그 경영이념에서 ‘이익 창출과 그 사회적 환원’을 표방하며 고용증대와 사회사업, 선교사업을 강조하니, ‘나눔과 섬김’을 중시하는 기독교 윤리에 따라 가족 같은 따뜻한 사내 문화도 형성하고 사회사업, 선교사업도 활발히 펼치는 나름대로는 바람직한 기업상을 가꾸어가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심각한 착각이었다. 이번 비정규직법의 통과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정규 직원들을 마구잡이로 해고하고 그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계기로 그간의 온갖 비윤리적 경영 실태가 적나라하게 터져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내 눈에 비친 이랜드는 민초들의 헌신을 자양분삼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 추악한 자본일 뿐이었다. 그것도 사회사업이니 선교사업이니 하는 그럴 듯한 말로 자신들의 이윤욕을 포장하며 민초 기독교도들의 헌신을 악용하고 또 다른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독 흡혈자본’의 모습이었다.

그들에게서 자본의 독소가 어느 만큼은 가신 거룩한 ‘사회적 기업’의 상을 찾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이 자기 입으로 떠벌리는 거창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하는 말을 거론할 생각도 없다. 한마디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80만원에서 100만원 받는 비정규 계산원들이 봉급 조금 올려달라고 할까봐 겁나 그들을 해고하고 그들의 일을 하청 주려는 기업은 아예 기업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의 독초 같은 존재로서 머지않아 사회의 그나마 나은 부분들까지도 시꺼멓게 물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이랜드 사태의 추이를 보아가며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 모를 다른 기업들, 자본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확장시켜주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부 기관에 내가 연전에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책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오늘날의 경영 ‘고전’ 이 되다시피 한 <Good to Great>라는 책에서, 저자는 크는 기업과 못 크는 기업의 차이 중 하나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똑같은 조건에서) 도약에 실패한 기업들은 도약에 성공한 기업들에 비해 5배나 자주 해고를 단행했다. 일부 기업은 해고와 구조조정에 만성 중독이 되다시피 했다. 큰 기업으로의 도약에 발동을 거는 방법이 열심히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두르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오, 실로 비극적인 착오라 할 것이다. 끝없는 구조조정과 마구잡이 난도질은 큰 기업으로 도약한 사례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앞의 권력과 돈만 바라보고 사람을 중시하지 않는, 특히 내가 머무는 곳의 궂은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기업과 조직과 사회와 나라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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