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선 ‘로또 당첨’ 됐데요”

사람과사람_이경순(39) 보건의료노조 한양대병원 정규직화 노동자
“주변에선 ‘로또 당첨’ 됐데요”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이 땅에서 정규직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처음부터 정규직은 무척 힘든 일이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화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 병원에서는 정규직화의 길이 열리고 있다. 산별합의에 따른 성과가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한양대병원 비정규직(정규직화) 노동자 이경순(39)씨. 그도 9월 1일이면 정규직화로 발령난다. 동시에 조합원으로도 자동 가입하게 된다. 환자복, 수술복, 수술시트, 환자용 베개 등 병원 내 모든 직물의류들 수선 일을 해오며 2년 넘게 마음 졸이며 기다려온 결과다.
일은 똑같지만 이제 보름후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지금 105만 원정도 받고 있는 봉급도 정규직이 되면 200만원에 육박하게 된다. 주5일 근무와 시간외수당도 적용받는다. 또 상여금에다 생리휴가, 복리후생, 자녀 학자금까지 그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미 임금이나 기타 혜택도 7월부터 소급받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로또 대박’이란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고용불안’과 ‘소외감’에서 해방된 것이다. “어딘가에 소속돼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고 그는 감격해한다. “가족은 물론 주위 친척에까지 자랑했고 모두 축하해주었다”고 흐뭇해한다. 얼굴에 변화가 거의 없는 제화공 남편도 웃음을 띨 정도라고 귀띔한다.
그동안 병원 내 정규직들을 대하면 높이 보이고 부러움 그 자체였다. 말을 한마디 해도 혹시 실수할까봐 몸을 사리게 되는 것도 비정규직이 갖는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한마디 해도 당당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5년 6월 입사한 그는 10개월 계약직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아는 이의 소개로 식당 영양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이가 어려 식당일에 매이는 것보다 경력을 쌓아온 세탁실(수선) 비정규직을 선택하고 2년을 지내보기로 했다.
“상대편에 기분을 맞추고 자신을 낮춰왔다”고 그는 감히 말한다. 그동안 영양과에서 유혹도 있었다. 입사당시 함께 면접을 봤던 영양과 직원들은 그해 10월 정규직으로 됐기 때문이다. 영양과로 가지 못한 데 대해 후회도 여러 번 했다. “비정규직이라도 불만을 표출하기보다 먼저 인정받기 위해서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산별교섭에서 정규직들이 임금인상을 일부 양보했기 때문에 이뤄진 이번 정규직화 과정에 대해 그는 “정규직들한테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고 털어놓는다. 이 씨에게는 언니인 수선실 동료 정규직 노동자는 “2세들 생각하면 우리가 양보해서라도 정규직으로 된 것이 좋은 일이죠”라며 대뜸 결론짓는다. 역시 이번 지부의 잠정합의안도 정규직 조합원들이 90%나 되는 찬성표를 던져주었다.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것이 자신들의 임금 몇 푼 오르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정규직들이 받아들인 셈이다.
하지만 이 씨의 정규직화도 하마터면 이뤄지지 못할 뻔했다. 작년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불안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작년만 하더라도 그렇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달리 느껴졌다는 것이다. ‘올해도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그에게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정규직화 논의대상에서 빠졌다. 회사에서 명단이 일차적으로 작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에서 검토에 들어갔다. 정규직화의 기준을 정했다. 상시업무는 정규직으로 대체근무자는 비정규직으로 정했다. 이에 노조는 이 씨를 정규직화 명단에 삽입할 수 있었다. 이 씨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며 성실하게 일해 온 것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달 정규직 조합원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는데 이제 같이 똑 같은 티를 입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며 “노조에서 많이 도와줬으니까 나도 노조를 많이 도와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출신에 대해 주눅 들지 말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정규직화의 기회는 꼭 올 것”이라고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한테 희망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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