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행복한 노동자다"

△노동운동 계기와 그동안 활동에 대해=노조 ‘노’자도 모르고 30대 중반까지 인생을 소비하고 있었는데, 89년 서울에서 학생운동하던 후배들이 노조를 만든다기에 사람들 모아주고 자원 규찰대장 하다가 지금까지 하게 됐다. 어영부영 스타일에 나서는 성격도 아니어서 노조활동할 생각도 능력도 없었는데 주변 권유로 조금만조금만 하다가 지금까지 해 왔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에 모든 것을 걸고 운동해 온 동지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다. 또 중요한 역할들을 맡아 왔는데 제대로 해 왔는지 자신이 안 선다. 약 19년 동안 활동하면서 힘들 때도 있었고 잃은 것도 있지만 노동운동하면서 얻은 보람이나 깨우친 게 많아 치열하게 운동한 동지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수지맞는 장사를 했다고 생각한다.

△부산 지역적 특성과 노조활동, 지역본부 설립과정과 사업에 대해=부산은 근대 이후 외국과 교류가 많은 항구도시다. 시민들 성향은 대체로 개방적이며, 부마항쟁과 6월항쟁 등 현대사 민주화과정에서 앞장서 저항해 온 만큼 민주화 성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보수적 도시로 변모했다.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배신감에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이 허상도 깨질 것으로 본다. 어느 지역보다 진보진영 바람이 가장 빨리 불 것으로 기대한다. 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문화 불모지라고 한다. 시민운동진영은 역사도 있고 폭도 넓고 규모도 크고 시민사회적 영향력도 있는 편인데, 정치적 민주화 이후 시민진영과 진보진영으로 분화되고 있다. 경제적 측면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인구가 타지역으로 전출해서 감소하는 것이 말해주듯 경쟁력 있는 특정산업이 없다. 갈수록 소비도시화해 실업률 등 경제적 수치로 볼 때 전국에서 가장 어려운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제2도시다 보니 규모는 적을 망정 서울 모든 업종, 산업 지역조직이 다 있고 운송하역, 항만, 선원, 유통서비스 종사자가 타 도시에 비해 많다. 대공장이 없어서 조합원은 약 4만명 정도다.
제가 올해 4년째 본부장을 맡고 있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펙투쟁, 2006년 비정규, FTA투쟁에 이어 올해 이랜드투쟁이 진행 중이다. 현장 동력이 예전 같지 않아 어렵다. 민주노총 사업에 현장 대중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기세 있게 참여하도록 만드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90년대 말, 2000년 초까지만 해도 지역 주력대오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대우정밀, 사회보험도 예전 같지 않다. 민주노총 주력대오였던 노조 조합원들이 평균 40대로 들어서며 현장동력 탄력성이 많이 떨어졌다. 한진중은 2003년 김주익,곽재규열사 투쟁이후 동력이 살아났지만 언제까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 한편 부산은 타지역에 비해 정파간 또는 입장차이에 대해 날카롭지 않은 것이 약점이자 장점이다. 좋은 전통으로 간주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전통도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 또 부산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여론동향이 민감한 지역이다. 민주노총 사업과 투쟁이 지역사회와 전국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용의주도하고 치밀하게 활동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다.

△부산지역본부 당면사업과제에 대해=지금은 이랜드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 비정규문제는 민주노조운동 핵심의제다. 처지가 어려운 이랜드동지들이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비정규투쟁을 상징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은 중요한 투쟁에서 연속적으로 패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반격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 했으면 좋겠다. 부산본부는 후반기 조합원대중 참여를 확대하고 집행력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싶다.

△현장대장정에 대해=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모든 사업에 양면성이 있듯이 현장대장정에 대해서도 모두 우려 반 기대 반이었을 것이다. 저도 위원장 중앙활동 공백 때문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다행이다. 저는 올해 본부장 4년차로 연임 마지막 해다. 그래서 연 초부터 최대한 현장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실천하지 못했다. 현장방문은 예고 없이 방문하기보다 사전논의 후 방문해야 하는데 계획에 없던 각종 일정들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현장대장정에서 새벽이든 밤늦은 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조합원동지들에게 달려가는 위원장을 보면서, 또 함께 하면서 제가 현장을 찾지 못한 건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반성했다. 현장대장정 이후 저도 현장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분발할 것이다. 애초 현장대장정 상 자체가 그랬지만 여전히 현장을 스쳐지나가는 식에 아쉬움이 있다. 이석행위원장 동지 도전정신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민주노총을 다시 세우기 위해 누구나 할 것 없이 지혜를 모으고 가능한 모든 방안에 대한 시도와 도전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산별시대 부산지역본부 강화방안은=물론 지역본부 위상과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실제 지역본부가 산하조직에 대해 지도집행력을 발휘하고, 지역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는 문제에 대한 모색과 실천이 필요하다. 부산본부는 먼저 산하조직과의 계통적 의사결정체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데 공을 들였고 정착단계에 있다. 지역산하조직과의 일상적 논의구조가 확립돼 있으므로 조직내 사각지대 없이 소통하고 지도집행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총연맹 사업을 놓치지 않고 실천하며 지역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업에 대한 조직정도가 높지 않아 분발해야 할 과제다. 지역본부 위상은 조직이 크다고 저절로 높아지지 않는다. 연대사업을 많이 해야 하는데 부족하다. 앞으로 노력해야 할 대목이다. 현재는 그나마 민중연대가 최선을 다해 활동하고 있어 체면치레는 하고 있다. 산별노조에 대해서는 큰 방향은 맞지만 준비를 잘해야 한다.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식 또는 정파간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식으로 가다가는 도리어 현장으로부터 산별회의론이 회자돼 산별운동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음을 유념하면 좋겠다.

△<노동과세계>에 바라는 점은=우리 지역본부에서는 조직력을 강화하는데 무엇보다 현장동지들 의식이 관건이라고 보고 교육·교양사업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정기기관지를 발행하고 있다. 내용은 소식보다 교양위주다. 특히 현장에 각종 소식지가 넘쳐나 묻혀 버릴 수 있을 수 있으므로 비용이 들더라도 가정에 우편발송하고 있다. 가족들 역시 각종 이데올로기에 노출돼 있고, 가족들 의식변화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론전쟁 시대다. 물리적 탄압 위주 권위주의 시대보다 논리적 이데올로기로 지배하려는 지금 상황이 더 어렵다. 조합원들이 노동자 의식으로 깨어있도록 하기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80만 민주노총 조합원과 대중에게=전태일열사 어머니 이소선여사께서 말씀하셨다. “민주노총은 바보다, 80만이 하루만 동시에 파업해도 정부와 자본을 이길 수 있는데, 그것도 못하나?”라고. 그렇다. 단위사업장에선 늘 투쟁하지만 사실 단위노조 투쟁은 ‘손오공이 아무리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고 하듯 근본적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동지들, 전태일열사 어머님 말씀처럼 정말 우리가 바보가 아니라면 하루 한날 한시에 투쟁 한번 해보자. 여러분은 잘못된 세상과 맞서 함께 투쟁할 동지가 있고 노조가 있는 노동자다. 여러분은 행복한 노동자다.
홍미리 기자 gommiri@naver.com

<최용국 부산지역본부장 약력>
89년2월 대우차노조 판매본부 결성 공동대표/92년7월 대우차 판매노조 위원장/93년 대우그룹노조협의회 사무총장/94년 민주노총(준) 운영위원/97년 전국자동차산업연맹 사무처장/98년 전금금속산업연맹 부산,양산 본부장/98년 민주노총 총파업 구속/04년 민주노총 부산본부 본부장(현)/06년 부산민중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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