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창립 21년만 첫 여성 탄생 “섬세하고 담대하게 '사소한 것, 작은 변화'부터 챙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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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유정희 사무처장. 이명익기자
 
전교조에 첫 여성 사무처장이 탄생하면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화제다. 유정희 사무처장이 주인공이다. 전교조 창립 이래 21년만이다. 그동안 위원장에는 여성들이 두루 거쳐 갔지만 사무처장은 없었다. 궂은 일, 힘든 업무, 밤샘 근무가 여성이 감당하기엔 부담됐기 때문이다.

4일 오전 찾아간 기자에게 유 처장은 대뜸 ‘전교조의 김연아’로 불러달라고 했다. 가녀려 보이지만 세계무대에서 강심장으로 일을 수행했듯이, 전교조가 탄압 받고 있지만 여성 사무처장으로 할 일을 다 하겠다는 이유였다. 섬세하고 담대하게 해나가라는 ‘주문’인 셈이다.

처음에는 그도 걱정을 많이 했었단다. 지금은 오히려 담담한 편이다. 기대와 격려를 해주는 주변 ‘팬’(동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처장은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이 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됐다”면서 “서로 자발적인 힘들이 모여지니까, 무거운 직책을 맡나 했던 우려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유달리 ‘작은 일’을 강조했다. 전교조가 상징적으로는 대국민 이미지를 얘기해 왔지만 조직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싸움’ 위주로 해왔다는 자체 평가 때문이다. “조합원과 소통하고 작은 일에도 귀 기울이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의 얘기는 민주노총도 예외는 아니다. ‘거대담론’에 치우쳐 있는 민주노총이 작은 변화를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그는 주문했다.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챙기다 보면 ‘변화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기운이 싹트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지난 2월20일 민주노동당 탄압규탄 서울역 집회에서 봤던 김 위원장의 모습이 역대 위원장 중 가장 산뜻한 차림이었다고 했다. ‘온건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싸울 수밖에 없다’(김 위원장)는 말이 퍽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유 처장은 “민주노총 투쟁을 강한 자, 변혁을 꿈꾸는 그들만의 리그로 바라보게 하고 구경꾼을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동원되는 조직문화, 다수와 일반 서민들에게 동떨어진 민주노총”을 지적했다.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현장에서도 새롭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스스로 멀리 있는 투사가 아니고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미지인데다 딱딱함과 거리감이 조금 덜하다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동원하고 지나치게 큰 주제나 구호 나열보다는 보다 조합원(대중)에 맞는 목소리로 스스로 낮추면서 좀 더 가까워지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젊고 새로운 것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목소리나 형식의 변화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작은 변화를 느끼게 한다”면서 “조금씩 느낌이 온다. 젊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해서 좋다”고 한껏 기대를 머금었다.

5년 전 수원 수일고(역사교사) 재직이후 군포중 발령을 받으면서 전임을 시작했던 유 처장은 여전히 “교단에 선 교사가 꿈”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전교조 일꾼들이 모자라서 힘들어 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전임의 길로 들어선 그가 20년 전교조 역사를 어떻게 새로 쓰게 될지, 주사위는 뒹굴고 있다.  

◇일문일답

-지난 2월 27일 대의원대회 분위기가 좋았다는 후문이다.

=전교조가 지금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조직을 지키자’는 결의는 다 돼 있는 느낌이다. 연수나 교육이나 어디를 가도 올해는 승리해 보자는 분위기다. 탄압 자체가 두렵지는 않다. 노르웨이의 어부들도 메기와 정어리를 잡으면 메기를 집어넣는다. 이명박식 탄압은 살기 위한 동력이다. 정치탄압의 최첨단에 있고 제2의 해직사태 양산하고 있는데다 노조설립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까지 바닥에서부터 긴장감이 높다. 어떻게 싸울 것이냐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힘을 모아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새벽3시까지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번에 50억 투쟁기금을 모은다는 소식도 들린다.

=차등성과급 때문에 기금을 모았던 사례가 몇 번 있다. 작년의 경우 20억을 모아 소외된 학생들이나 소외계층에게 지급도 했다. 이번에 모금하는 50억 기금은 내부투쟁기금에 주로 활용될 전망이다. MB 탄압 도가 높아 해직자가 작년 27명에서 올해는 더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 작년 시국선언 벌금과 소송비도 5억 이상 들어갔다. 1500명 해직자 시절도 있었다. 해직돼도 조직이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이 국민들을 각인시킬 것이다. 모금은 3월부터 5월 교사대회까지 진행될 것이다. 

3MIL_8080.jpg -사무처장 역할과 사무처 운영에 대한 소신

=성원들의 자발적인 계획과 추진을 강화하겠다. 위에서 사업이 정해지면 기계적으로 따로따로 일만 하면 되는 식은 곤란하다. 문제는 전략을 공유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회의체계도 지시가 아니라 자기 계획 세우기로 가져가는 것이다.

전문성 함양도 문제다. 저항 중심이었다. 교과부에 반사적으로 대응해왔다. 돌아보니 전교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문성이 함양되지 못했다. 주제나 제도에 관해서, 실무영역에 대해서도 프로에 가깝게 역량이 축적된 것이 아니라 소모되고 낭비됐다.

관료와 비슷한 체계를 변화시켜보려 한다. 관료체계가 효율적이지만 소수에 따라가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 문제다. 팀제 구성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자기 책임을 갖고 추진→점검→반성하는 현장 밀착형 활동을 만들겠다. 사무실에서만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아이템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문건만 만들고 밑으로 전달되는 일들이 많다. 문건으로 될 일이 아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고 발굴하고 순환시키는 체계가 절실하다. 지금 체계로는 어렵다. 다른 단체 사례들을 모아서 지속적으로 내부조직 편제나 팀을 유연하게 만들 생각이다.

민주노총도 비슷하지 않나. 회의 하면 거창한 얘기만 많이 한다. 사안을 크게 나열해 놓고 몇 명 동원하냐 이런 식이다. 집회 가보면 그렇게 안 되고 밑으로 전달도 안 돼 있다. 작은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사실 어디서 컨설팅을 받아야 할 지 모르겠다. 밑이 변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에서부터 실천이 돼야 한다.  

-올해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가 됐는데도 교섭소식이 안 들린다

=교섭을 위한 교섭을 하려고 하지만 성의가 없다. 사전교섭이 있었는데 기자들이 촬영하러 왔다고 교과부가 가버렸다. 정부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교섭은 힘의 관계다. 기소 대상자라는 이유만으로 전임을 불허하고 있다. 공정택의 경우 기소됐다 하더라도 교육감을 유지했지 않았나. 교과부는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있다, 여러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부의 노사관계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법률적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 3년차를 맞아 학력평가, 교원평가 등 ‘교육’ 의제가 여전히 화두다.

=모든 학생과 교사들의 순위 매기기가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부패와 비리다. 경쟁을 강화하다 보면 올바른 시스템이 아니라 비리나 부패의 사슬로 작동하게 된다. 공정택 수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나. 경쟁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협력적 관계를 통한 미래의 제시가 문제다. 물론 전교조도 아직까지 대안 제시나 담론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저항만 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곤란하다. 좀 더 노력해서 교육의 상생적인 측면에서 실천활동으로 다가가겠다. 그러잖아도 전교조 내에서는 학교와 수업의 변화를 중요한 주제로 잡고 있다. 학교수업에 대한 새로운 모델 창출을 위해 모임도 만들고 있다.  

강상철기자/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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