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성격·역사적 맥락 몰이해…'항거' 소극적 해석 탓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위원회(위원장 변정수)가 노동사건에 대해 잇따라 불인정 판정을 내림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부정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는 명예회복·보상신청 가운데 가장 많을 수를 차지하는 노동사건을 맡은 심사위원들이 사건의 성격이나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위원회는 최근 지난 1993, 95년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에 맞서 항거했던 신일금속공업, 현대정공 투쟁에 대해 관련자분과위의 인정 의견을 뒤집고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임금가이드라인은 일종의 행정지도적 성질을 가지는 것이거나 권고안으로 강제성이 있었던 게 아니므로 권위주의적 통치가 될 수 없다'는 게 불인정의 이유.
위원회는 또한 1987~8년 현대중공업의 노조민주화·임금인상투쟁에 대해서도 "어용노조 퇴진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쟁의가 왜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항거냐"며 재심사 대상에 올렸다.
나아가 전노협 소속 사업장에 대한 노동부의 '업무조사'에 관련자료 제출을 거부했던 한국야구르트유업노조 사건(1990년)에 대해서도 '자료제출 요구는 정당한 업무집행이고 이를 거절한 것은 위법부당하다'는 이유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불인정했다. 이밖에 1987년 통일중공업, 88년 철도, 89년 풍산금속, 95년 한국통신 주요 노동사건 대부분이 1차 심사기관인 관련자분과위에선 민주화 관련성을 인정받아 본위원회에 올랐지만 심의보류 또는 재심사 대상으로 분류돼 계류 중이다. 분신의 경우 '항거'를 인정하면서도 '과격한 투쟁방식'이라는 이유로 관련성을 20~90% 축소하기도 했다.
현행 민주화보상법과 시행령은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항거'를 인정요건으로 규정하는 한편 '항거란 직접 국가권력에 항거한 경우뿐 아니라 국가권력이…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나 기타의 자에 의하여 행하여진 폭력 등에 항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의 통치에 항거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민주노총 권영국 법률원장은 "노동사건 대부분이 노조민주화, 임금인상 등을 매개로 병영적 노무관리와 정부의 노동통제 정책 등을 깨기 위해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 권리를 선언한 것임에도 위원회는 관련법의 '항거' 개념을 지나치게 형식적·소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민주화투쟁의 핵심을 이뤘던 노동사건을 '항거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해 기각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박승희 ddal@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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