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장사하던 한 노점상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져 동료들과 경찰이 찾고 있다.

선릉역 7번출구 앞에서 토스트 장사를 해온 현OO 씨(40세)가 17일 오전 자신의 포장마차에 유서를 두고 사라졌다.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그를 빌미로 해서 최근 서울시와 경찰이 노점상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했으며, 강남지역에서 장사를 해 온 현 씨도 과도한 단속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정오 경 주변 노점상들이 발견한 유서에는 최근 지구대에서 매일 두 세 차례씩 나와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것 때문에 겪은 괴로운 심경과 함께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죽어서 원혼이 되어서라도 꼭 밝히고 말겠다”고 적혀 있다.

김재섭 노점노동연대 강남지역장을 비롯한 주변 노점상들은 즉시 현 씨를 찾아 나섰다.

노점상인들은 현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동시에 단속하던 해당 역삼지구대를 방문해 이같은 상황을 전하고 항의했다. 또 폭력단속으로 인해 노점상인들이 겪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민원’의 출처를 밝히라고 다그쳤다.

경찰은 “공중전화로 민원이 들어왔고, 시경과 경찰수사국에서 하달받은 명령을 집행하는 것일뿐”이라면서 변명으로 일관했다.

노점상인들이 “현 씨를 찾아야 하니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달라”고 요구하자, 경찰은 “가족이 소방서를 통해 요청해야 가능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응해 상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주변 노점상인들은 혹시라도 현 씨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가족을 수소문하는 한편 현 씨가 거처하던 곳을 찾고 있다.

잠적한 현 씨는 약 1년 여 전부터 선릉역 앞에서 토스트장사를 해왔다. 노점을 열기 전에는 배도 타고, 유서에 밝혔듯이 인테리어 건설노동도 했지만 늘 생계의 어려움을 겪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6월 들어서 경찰 지구대에서 하루에도 세 번 씩 나와 장사를 하지 말라며 노점을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노점상을 포기할 수 없었던 현 씨로서는 큰 고통과 울분을 느껴왔다고 주변 지인들은 전했다.

현 씨는 단속반이 뜰 때마다 가슴 졸이며 장사를 해야 했고 벌금도 내야 했다. 또 1주일 전에는 즉결처분으로 검찰에 넘어가 재판까지 받았다.

현 씨는 1971년 생이며 초등학생 어린 자녀 둘을 두고 있다.

다음은 현 씨가 남긴 유서 전문이다.

“토스트 장사를 하면서 큰 돈벌이는 되지 않지마는 하루하루 벌어 작은 돈이나마 모아 아이들을 위해서 쓸 수 있는 걸 보람으로 살았습니다. 전에 했던 인테리어 작부일 보다는 벌지 못하지만 장사를 배워 나중에 조그만한 가게 하나 장만할 희망을 품고 새벽에 나와 토스트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6월부터 지구대로 신고 들어온다고 하루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에서 네 번씩 지구대에서 나와 장사를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루 나와 장사를 준비하다가도 언제 지구대에서 또 나올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졸입니다. 정말 이렇게는 살 수가 없습니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꼭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제가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꼭 밝히고야 말 것입니다. 지역장님, 지역장님이 힘써 주어 이 악성신고를 하는 사람을 꼭 밝혀 주십시오. 지역장님만 믿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가해 차기 회의를 서울에서 유치했다며 온갖 생색을 내더니 그를 빌미삼아 서울지역 노점상 단속을 강화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살인단속 행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피츠버그에서 만난 각국 정상들은 “경제위기를 핑계로 국제노동기준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노동탄압은 갈수록 더하다. 오히려 이제는 G20정상회의를 치른다며 노동자 서민의 삶의 터전을 짓밟고 있다.

새벽 출근 길 서민들에게 토스트를 구워 팔며 가난과 싸우면서 삶의 희망을 가꿔가던 40대 가장이 계속되는 단속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

<홍미리기자/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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