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열사 정경식동지 장례식, 경남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 안장

▲ 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열린 정경식 열사 전국민주노동자장에서 열사의 어머니 김을선 여사가 장례식을 지켜보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명익기자
▲ 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열린 정경식 열사 전국민주노동자장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열사의 유가족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이명익기자
노동해방을 위해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다 의문사한 정경식열사가 죽음을 맞은 지 23년 만에 우리 가슴 속에 묻혔다.

노동해방열사 정경식동지 장례가 8일 서울과 열사의 고향인 경남 창원·양산 등지에서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노동해방열사 정경식동지 전국민주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마석 납골당에 안치됐던 열사의 운구를 장례식 전날인 7일 마석에서 모셔와 분향소를 차렸다. 8일 오전 발인에 이어 민주노총 앞에서 영결식을 갖고 경남으로 이동, 창원 진동면 진동리 열사 고향집과 열사가 일하던 두산DST(구 대우중공업)를 거쳐 경남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 유골을 안장했다.

아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23년 간 전국을 누비며 진상규명을 호소하던 정경식열사 어머니 김을선 여사는 장례가 치러지는 내내 오열했다. 운구 뒤를 따르는 열사의 여동생 정경연 씨도 “오빠, 오빠”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장례식에는 민주노총·금속노조 본조와 경남·부산지역본부, 경남지역 단위사업장노조,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 열사의 고향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참석해 숙연한 마음으로 열사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동안 열사의 어머니는 “진상을 밝힐 때까지 장례는 없다”며 아들의 장례를 거부했다. 주변에서 “진상규명은 좋은 세상이 오면 훗날에 맡기고 장례라도 치르자”고 권유했지만 그 요청을 뿌리쳤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창원 중앙체육공원 영결식과 노제 조사를 통해 “정경식 당신이 살았던 87년 6월 암울한 시대를 뚫고 민주노조를 세우겠다며 타오르던 당신의 열정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된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묻고 “산자도 권력도 죽어간 당신도 20여 년 말이 없지만 우리는 누가 살인자인지 알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주인인 당신이 죽어 살려낸 민주노조운동을 반드시 산자들의 손으로 지켜낼 것”이라면서 “고단한 노동, 죽어서도 끝내지 못한 투쟁, 그 한스런 짐 내려놓으시고 이제 편히 가시라”며 열사의 명복을 빌었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도 “2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선배열사를 구천에 떠돌게 만들었던 밝혀지지 않은 불행한 과거를 가슴에 새긴다”고 말하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노동현실은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고, 우리는 노동해방이라는 최종 목표를 잊은 채 타협과 이기심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반성한다”고 다짐했다.

박 위원장은 “진상규명 등을 포함한 남은 과제, 정 열사가 머물렀던 사업장 현장민주화는 산자들의 몫”이라면서 “특히 40년 전 산화한 전태일 열사 이후의 수많은 선배열사들의 바람을 실현시켜야 함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오늘 정경식열사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드린다”고 결의했다.

▲ 8일 오후 서울을 떠난 정경식 열사의 운구 행렬이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열사의 고향 집으로 들어서고 있다.이명익기자
▲ 창원 중앙체육공원에서 열린 노제에서 앞서 정경식 열사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무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명익기자
열사의 어머니 김을선 여사는 창원 중앙체육공원에서 열린 노제에서 유족 인사를 통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장례를 준비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정경식의 죽음을 의문사로 놔두지 말고 밝혀 달라”고 주문했다.

어머니는 또 “나는 23년 간 하루도 아들을 잊지 못했고 내 아들 죽음을 밝히기 위해 삭발하고 감옥소에도 갔다”면서 “민주노조 꽃이 활짝 피게 하고 민주노조를 활성화해 달라”고 산 자들을 향해 당부했다.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 영결식에 이어 경남지역으로 이동한 운구 행렬은 열사의 고향인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에 도착했다. 열사의 어머니 등 유가족들 오열 속에 열사의 영정이 고향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아이구, 아이구, 우리 경식아, 내 아들 경식아” 하며 몸을 가누지 못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고향집을 떠난 운구는 노제를 지내기 위해 창원 중앙체육공원으로 향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와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8일 확대간부 파업을 벌이고 창원 중앙체육공원에서 결의대회를 가진 후 ‘노동해방열사 정경식동지 전국민주노동자장 노제’에 참가했다.

이어 열사의 영정과 운구, 민주노총 깃발을 선두로 대형 부활도와 조합원들이 따르는 가운데 거리행진으로 열사가 일하던 두산DST까지 이동했다.

“노동해방 앞당기자”, “노동해방의 꽃으로 부활하소서”, “의문사 진상규명 열사정신 계승”, “열사의 염원이다 민주노조 사수하자”, “노동자가 주인된 세상에서 부활하소서”라고 적힌 수십 개 만장이 열사의 운구행렬을 뒤따랐다.

열사가 일하던 당시 대우중공업은 현재 두산DST로 바뀌었다. 두산DST노조는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두산DST는 문을 걸어잠근 채 정문 앞에 경비회사 용역을 배치하고 심지어 대형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정경식열사의 어머니는 “여기서 일하던 내 아들이 죽어서 이 공장 앞으로 한 바퀴 돌고 가려는데 이거(바리케이트) 왜 해놨노? 이거 밀어주소”라며 바리케이트를 직접 밀어 치워버렸다.

열사는 자신이 일하던 공장 앞을 떠나 경남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 안장됐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버린 늦은 시각 묘역에 도착, 하관식이 진행됐다.

어머니는 “가거라, 좋은데 가거라, 미안하다, 편히 쉬라, 노동자의 밑거름이 되거라, 경찰이 우리 집을 하루에 두 번씩 왔다. 내가 안 뺏길라고 창고에 열쇠 채워놓고 다녔다. 내가 장사나갔을 때 빼내가면 어쩌나 싶어서. 장사 갔다와서 창고 열어 촛불 켜주고 과일 놔주고 그랬다. 내가 니 지켰다. 내 아들 야무지고 야무져 이리 될 줄 몰랐다. 경식아 노동자의 밑거름이 되거라”며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노동자의 새로운 해방의 길로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 8일 저녁 정경식 열사의 하관식이 열린 경남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서 열사의 운구가 하관되어지고 있다. 이명익기자
열사의 관이 땅 속에 자리해 흙으로 덮이기 시작하자 열사의 여동생 정경연 씨가 또다시 오열했다. “오빠, 불쌍한 우리 오빠, 엄마 걱정 말고 편안한 세상 가서 잘 살아라, 좋은 데 가서 살아라, 불쌍하게 태어나지 말고... 공부하고 싶어서 선생님 되고 싶어했는데, 고생만 하다가 간다, 늦게 보내줘서 미안하다.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편안히 가라.”

솥발산 열사묘역 정경식 열사 하관식에 참석한 조합원들은 “열사정신 계승하여 민주노조 사수하자!”, “열사의 염원이다 이명박정권 타도하자!”고 구호를 외치며 열사정신 계승을 결의했다. 참석자 모두가 현장으로 돌아가 노조탄압을 일삼는 이명박정권에 맞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노동해방열사 정경식동지 전국민주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오는 10일 다시 열사묘역을 찾아 삼우제를 지낸다. 또 오는 10월24일에는 정경식열사 49제를 올릴 계획이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지난 8월23일 정경식열사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키로 한 후 민주노총은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노동해방열사 정경식동지 전국민주노동자장 장례위원회’를 구성, 이번 장례를 마련했다.

정경식열사의 아버지는 의문사한 아들이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는 것조차 보지 못한 채 분노와 한을 안고 지난 2008년 1월 세상을 떠났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제라도 우리 경식이를 해친 사람이 양심선언을 한다면 죽은 경식이가 살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경식이의 영혼도 위로해주고, 편안하게 장례도 치러줬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경식이를 해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저는 그 사람을 처벌하기 보다는 이제는 그 사람하고도 화해하고 싶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고 싶습니다. 저의 바람은 하루속히 모든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서 경식이가 편안하게 눈을 감고 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식이를 사랑하는 이 어미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2000. 6. 8.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어머니 말씀)

▲ 8일 저녁 정경식 열사의 하관식이 열린 경남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서 민주노총 깃발이 흩날리고 있다. 이명익기자


정경식동지 약력·의문사 관련 진상규명 활동

■ 정경식동지 약력
1959년 12월15일 경남 마산시 진동 출생
1982년 8월6일 육군 병장 만기 제대
1984년 5월9일 대웅중공업(현 두산 DST) 2공장 특수생산부 근무
1986년 5월14일 산재사고로 창원병원 입원, 현장활동가를 만나 노조활동 시작
1987년 2월26일 대우중공업 최초의 집단행동 ‘중식거부투쟁’ 참여
1987년 2~3월 민주노조 건설 위한 활동가 모임 참가, 대의원·지부장선거 준비
1987년 5월26일 노동조합 대의원·지부장 선거(회사측 당선)
1987년 5월28일 회사 선거개입 확인 위해 회사측 대의원 만나는 과정서 폭행사건 발생
1987년 6월8일 회사근무 중 외출 나간 뒤 실종
1988년 3월2일 불모산에서 유골로 발견

■ 정경식동지 의문사 관련 진상규명 노력
1987년 6월 정경식 실종 직후 어머니와 동네주민들 회사 항의방문, 대통령·내부장관·검
                  찰총장·치안본부장·도경국장·창원경찰서장 등에 진정, 탄원서 접수
1988년 2월5일 민통련, 정경식 행불사건 관련 기자회견
1988년 2월7일 평민당, 정경식 사건관련 조사위원회 구성 발표
1988년 2월14일 ‘대우중공업 정경식실종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구성, 진상규명 활동
1988년 3월16일 정경식진상규명대책위 기자회견 “자살 아니다”
1988년 3월19일 정경식진상규명대책위, 은폐조작 폭로대회 개최
1988년 5월15일 MBC TV 인간시대 “내 아들아 경식아” 전국 방영
1989년 4월26일 MBC TV ‘의문사, 자살인가 타살인가’ 전국 방영
1989년 7월26일 어머니, 회사측 고소로 구속, 마산교도소 수감
1999~2000년 어머니, 의무사법 제정 위해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
2000년 12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정 접수
2006년 3월14일 진실화해위원회 신청 접수
2010년 7월19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관련자분과위 전원 ‘인정’ 의결
2010년 8월23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결정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