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기간 평균 32일...건설노조, 건설현장 유보임금 실태폭로

▲ 우리나라 건설현장 어디서나 속칭 '쓰메끼리'라 불리는 유보임금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일한 뒤 2~3개월 후에도 임금을 받는다. 사진=노동과세계

# 충남 KTX 역사 펜타포트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 이 씨는 60일이 지나서야 첫 일당을 받았다
# 서울 우면2지구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는 이 씨는 8월20일 일당을 40일이 지나서야 받았다
# 경기도 시흥 아파트 현장에서 할석일을 하는 이 씨, 견출공 박 씨는 첫 일당을 40일이 지나서야 받았다
# 대전 지역 철근공 박 씨는 7월5일 일당을 50일이 지나서야 받았다
# 부산에서 경량벽체 일을 하는 김 씨는 11월 일당을 해를 넘겨 다음에 1월에 받았다
# 광주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는 정 씨는 6월1일 일당을 7월29일에야 받았다. 이곳 현장은 유보기간이 30일이다
# 대구 달서구에서 형틀목수 일을 하는 이 씨는 1월3일 일당을 3월30일에 받았다. 이 현장 유보기간은 60일이다

전국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적게는 10일, 길게는 60일이 지나 일당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노조가 지난 7월20일 전국에 유보임금 신고센터를 개설해 9월 초까지 유보임금 실태를 접수 받은 결과다.

건설노조는 전국 104개 건설사업장 유보임금 실태를 파악했다. 유보기간은 대전·충청 32일, 대구·경북 43일, 부산·울산·경남 33일, 광주·전남 30일, 수도권 30일 등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편차가 있지만 평균 유보기간은 32일이다.

공공·민간공사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200만 건설노동자들 모두 ‘유보임금’이라는 관행 때문에 임금을 한 두 달 이상 씩 밀려 받고 있는 것이다.

건설현장 체불임금은 유보임금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임금이 유보되면 다음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연쇄적으로 밀리게 된다. 한 두 달짜리 현장에서 유보기간이 30일 이상이라면 공사가 끝난 후에 임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공사가 끝난 후 임금을 받지 못하면 건설노동자들은 결국 노동부를 찾는다. 하지만 이미 소용이 없다. 임금을 지급해야 할 당사자가 도망가거나, 연락이 두절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 "건설현장 체불의 근원 유보임금 해결하라!" 추석명절이 다가오지만 건설노동자들은 9월 일당을 12월에, 심지어 내년에나 받을 수 있다. 건설노조는 유보임금 근절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선다. 사진=노동과세계

건설노조가 14일 오전 10시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건설현장 유보임금 실태를 폭로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건설노동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국격’을 높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제 때 임금을 지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발주처↔원청↔하청으로 연이어지는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줄여야 한다면서 모든 건설현장에 존재하는 유보임금 실태를 고발하고 제도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

유보임금을 근절하려면 발주처는 기성 중 임금 부분을 따로 떼 노동자들이 제때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건설노조 주장이다.

김금철 건설노조 위원장은 회견 여는 말을 통해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몇 달 전 일한 임금도 받지 못한 채로 추석을 보내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처지를 토로하고 “유보임금으로 인해 악덕업자들이 돈을 갖고 도망가는 사태 등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유보임금을 없애기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이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한 건설노동자는 현장 발언을 통해 유보임금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는 건설노조 조합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나는 7월부터 수원 교회현장에서 일해 왔지만 교회가 2층까지 완공해야 돈을 준다고 해서 아직 임금을 못 받았다”면서 “추석 전에 공사를 끝내야 돈을 받아 추석명절을 쇨 수 있어 오늘도 일해야 하지만 하도 답답해 이렇게 나왔다”고 토로했다.

목수노동자는 또 “건설노동자들은 대규모 현장에서 일하면 2달 뒤에나 임금이 나와 지금 일한 임금을 11월에나 받기 때문에 하루 일해 당일 돈을 받는 일용직을 전전한다”며 건설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전했다.

이어 “제 아는 형님 한 분은 세종시 LH현장에서 일하는데 전문하청업체 사장이 수십 억을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5월에 일한 임금을 아직 못 받았다”고 말하고 “목수, 철근, 콘크리트 일을 하던 300명 넘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떼일 지경”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 조합원은 “성남의 한 현장에서는 사장이 돈을 갖고 도망가서 건설노동자들로부터 임금을 달라고 독촉받던 한 반장이 시달리던 끝에 자살한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장석철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60일 밀려서 임금을 받으면 건설노동자는 굶어죽는다”며 “임금 좀 제 날짜에 받아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건설현장 유보임금 관행은 위법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건설노동자들 임금지급일을 평균 한 달 이상 유보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건설사들의 파렴치함에 있으며, 이를 수수방관하며 처벌하지 않는 정부의 안일함이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장 위원장은 “정부는 임금을 유보하는 건설사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설현장에서 유보임금이 근절될 수 있는 제도를 철저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전국건설노조는 가정 파탄 주범이며 체불의 원인인 유보임금을 근절하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이날 회견에서 ‘전국 건설현장 유보임금(속칭 ’쓰메끼리‘) 실태조사 현황’ 자료를 배포했다.

건설노조 본조의 정부종합청사 앞 기자회견이 열린 시각,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내용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동자들의 회견이 전국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수도권지역본부는 경인지방노동청, 대전충청강원지역본부는 천안지청, 광주전남지역본부는 정부광주지방합동청사, 대구경북지역본부는 대구지방노동청,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는 부산지방노동청 앞에서 각각 건설현장 유보임금을 강력히 규탄했다.

건설노조는 접수된 자료를 바탕으로 9월 말 노동부와 LH공사 면담을 추진한다. 또 정기 국정감사 등을 통해 건설현장 유보임금 해결방안과 제도개선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노조는 이번 국정감사 기간 내내 1인 시위 등을 펼칠 예정이다.

■ 유보임금(속칭 쓰메끼리)이란?

임금은 노동을 제공한 달에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건설현장은 노동을 제공한 달이 아닌 그 다음 달이나 그 이후에 임금을 받는다. 즉 첫 달 치 임금을 두 세 달 지나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설현장에서 보통 ‘쓰메끼리’로 불린다.

유보기간은 발주처↔원청↔하청 간 문서교류 기간이다. 하청업체가 한 달 치 작업물량에 대한 정산을 해서 원청에 올리고, 원청은 이를 다시 발주처에 제출한다. 이후 발주처는 원청업체에 1개월 단위로 진척된 작업물량을 기준으로 임금이 포함된 기성(공사대금)을 지급한다.

원청업체는 이 기성금을 받아 5~10일 정도 지나서야 하청 협력업체에 각 해당 작업물량에 대한 공사대금을 지급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한 달이나 두 달 이상의 임금이 연쇄적으로 체불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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