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없어 교섭도 못해봐...원청 현대건설 “우리 책임 아니다” 외면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분신한 레미콘 노동자가 결국 사망했다.

13일 낮 12시 경 전북 순창군 유등면 현대건설 현장사무소 앞에서 서 모씨(47세)가 임금체불에 분노해 온 몸에 시너를 뿌리고 항의분신, 전신 80% 이상의 중화상을 입고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15일 새벽 3시 경 심장박동이 멈춰 숨을 거뒀다.

건설노조 전북기계지부 김상태 지부장에 따르면 88고속도로 확장공사 2공구 터널 공사 현장에서 밀린 건설기계 임금을 요구하며 항의 중이었다고 한다. 서 모 씨는 이 현장에서 레미콘 운전기사로 근무했으며 지난 8월부터 8백만원 가량의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88고속도로 확장공사 2공구 터널공사 현장을 발주한 곳은 한국도로공사이며, 원청업체는 굴지의 대형건설사인 현대건설, 해당 하청업체는 정주 이엔씨다. 이 현장에서 현재 총 18억원 규모의 임금이 체불되고 있다.

고인은 임금이 계속 체불되고 원청이나 하청과의 교섭조차 못해본 상황에서 해당 하청업체인 정주이엔씨가 적자를 이유로 원청인 현대건설과 계약을 파절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일한 대가를 못 받게 됐다는 절망감에 분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조 전북건설기계지부 조합원들 역시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당일 정주이엔씨·현대건설과 교섭을 진행했다. 회사는 “다음 주 수요일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고 노동조합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이번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을 경우 노조는 투쟁에 나선다는 각오다.

그러나 노조가 없어 교섭은커녕 항의조차 제대로 못해 본 서 모 씨에게 원청과 하청의 계약파절 소식은 임금을 거의 못 받는 것을 의미했다. 계약이 중도에 파절될 경우 건설기계 장비대금을 비롯한 임금을 제대로 받기 어렵다.

해당 하청업체인 정주이엔씨는 지난 2007년에도 계약을 파절하고 장비대금을 50~60%만 지급한 적이 있는 회사다.

정주이엔씨와 현대건설은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건설노동자들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고인의 주변 동료들에 의하면 서 모 씨가 회사 측에 대해 “OO까지 답을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경고했다는 것. 그러나 건설자본은 체불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 119나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

이번 분신사망에 대해 원청인 현대건설 측은 “직접적인 계약당사자가 아니고 하청업체 측이 부도가 난 상황도 아니어서 사태 해결 책임이 없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전북건설기계지부에 의하면 최근 대부분의 공사현장에서 적자로 인한 계약 파절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최저가 입찰제로 인해 공사대금의 절반 정도로 계약을 하고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지급이 원활할리 없다.

건설현장에서는 일명 쓰메끼리(유보임금)란 이름으로 60일에서 90일이 지난 후에야 임금을 지급받는다. 그 기간 동안 원청이나 하청업체가 부도가 나거나 계약 파절이 돼버리면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을 길이 없다.

건설노조는 강기갑의원실을 통해 국토해양부에 건설현장 임금체불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해결책을 촉구하고 있다. 건설노조 전북본부도 서 모 씨 분신사망 사태를 방관한 건설자본을 규탄하며 기자회견 등을 준비하고 있다.

마흔 일곱의 건설노동자가 건설자본의 탐욕과 관리감독 부실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과 중학생 자녀 2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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