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누군가 있다" 사측 불법사찰 폭로

금속노조에는 판매 영업직 조합원이 있다. 고객들을 찾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이들의 업무다. 그런데 한창 고객을 만나면서 영업을 해야 할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광주사옥 안 천막농성장 앞에는 ‘인권 유린하는 불법 사찰 규탄, 정의선 부회장과의 면담 요구’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현대차 판매위원회 광주전남지회 이현승 지회장을 만난 13일, 이 지회장은 10일 째 단식농성 중이다.

   
▲ "말도 안되는 상황이죠. 사찰하고 미행하는거 불법입니다. 기본적인 인권도 무시한거죠. 그런데도 업무 중 하나니까 감시하는 게 아무 문제없다고 나오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이현승 지회장의 말이다. 신동준

여성 조합원 미행 사찰이 업무 감사?

얼마 전 현대차 본사에서 현대차 판매 광주전남지회 여성 조합원을 감시, 사찰한 것이 발각됐다. 지난 달 14일 여느 때처럼 아침 조회를 마치고 영업을 나간 조합원은 자꾸만 차가 쫓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가 직진을 해도 차가 쫓아왔다. 그 차는 얼마든지 조합원의 차를 앞지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거리를 둔 채 계속 쫓아왔다. 이상하게 여긴 조합원이 분회 사무실에 들어와 분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분회장 차로 바꿔 타고 나갔지만 역시나 아까부터 뒤를 쫓던 하얀색 소나타 차량이 쫓아왔다. 차에서 내려 걸어 다닐 때도 수상한 사람의 미행이 계속됐다. 미행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계속된 미행 때문에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잡은 미행범의 정체는 현대자동차 본사 업무지도팀 과장이었다. 사원증을 당당히 내놓은 그가 밝힌 미행 이유는 “일을 열심히 안하고 딴 일을 한다는 제보가 있어서 업무감사를 나왔다”는 것이었다. 감사를 위해 본사에서 내려온 차도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라고 알려줬다. 피해 조합원을 부른 경찰은 “현대 같은 곳에서 미행을 하니까 깝깝하겠네요”라고 말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죠. 사찰하고 미행하는거 불법입니다. 기본적인 인권도 무시한거죠. 그런데도 업무 중 하나니까 감시하는 게 아무 문제없다고 나오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지회는 사찰 중단과 재발방지, 현대차 판매담당 최고 책임자인 정의선 부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9월 27일 현대차 광주 사옥 주차장에 천막을 쳤다. 회사는 면담 요청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찰을 당한 조합원을 징계하겠다고 협박 했다. 피해 조합원은 현재 신경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고 있고, 아직도 차를 타면 뒤를 확인하는 등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는 “사실 제보자가 남편”이라는 말까지 퍼뜨리면서 조합원을 괴롭혔다. 결국 이 지회장은 지난 4일부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 현대차판매 광주전남지회는 현대차 판매총괄 책임자인 정의선 부회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신동준

한 달 동안 감시, 증거 수집...  “사직서 써라”

“미행을 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게 아닙니다. 그 조합원이 실적이 안 좋았다는거죠” 이 지회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판매 조합원들에 대한 관리자들의 감시는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건이 터지고 전국 곳곳에서 회사에서 감시를 당했고, 그렇게 찾은 증거로 징계를 당했다는 조합원들의 제보가 전해졌다.

“서울에 있는 조합원 중에 한 명은 이중취업을 했다고 징계를 받았어요. 회사가 증거를 내놨는데 한 달 동안 쫓아다니면서 증거를 모았더라구요. 징계하러 올 때는 본사에서 아예 날짜까지 적힌 서류 가져와서 ‘해고 당할래, 사직할래’라고 했다더라구요”

대부분 징계 사유는 근무 불량, 근무지 이탈, 이중취업 등이다. 증거라는 것들은 조합원을 미행해서 찍은 사진이나 회사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는 통로를 통해서 모아진 것들이다. “일상적으로 조합원들 동향이 보고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죠. 조합원이 정말 잘못을 했고 징계를 하려면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어떻게든 징계를 하려고 미행하고 감시해서 증거를 찾아내는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

이번 사찰 사건이 터지고 지회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는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피해 조합원이 2개월 이상 판매 실적이 나오지 않아 하루 일과를 파악한 것이고, 확인해보니 남편 명의(13일자 아시아경제지에는 ‘부인 명의’라는 거짓 내용으로 나왔다)로 문을 연 떡집에서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보내면서 자동차 영업 보다는 다른 직업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는 것. 이중취업을 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판매 노동자들이 받는 기본급여가 사실상 공짜로 제공되는 용돈과 다름없고, 이런 일이 현대차가 다른 국산차 업체보다 기본급여가 높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의견까지 덧붙였다.

이 지회장은 “판매 노동자의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악의적인 보도”라고 잘라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차를 팔려면 판촉이라는 걸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떡집을 하면 고객들한테 판촉물로 뭘 주겠습니까. 떡집에 들러 떡을 가져갈 수도 있고, 떡 사러 왔던 손님이 차 산다고 하면 남편이 소개시켜 줘서 만나기도 하는거죠. 회사 말대로라면 떡집에 앉아서 고객이랑 얘기하는 사진 한 장 가지고도 이중취업이라고 징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회사에서 판매 노동자들을 미행, 사찰하고 있는 이유다.

   
▲ 이현승 현대차판매 광주전남지회장. 신동준
판매노동자의 삶을 아십니까?

판매 노동자들의 일터는 한 곳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차를 팔기 위해 고객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업무다보니 고객이 부르면 언제든지 어디라도 가야한다. 다양한 고객을 만나 영업을 하기 때문에 범주 또한 넓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고객이 골프를 치면 골프를 배우고 주말에 고객이랑 골프도 치러가야 됩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고객이면 낚시도 하고”

조합원들은 가입해있는 모임도 많다. 종친회, 동창회, 동호회까지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모임에서도 보통 총무를 맡는다. 그래야 다양한 사람들과 통화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란다. 보통 일 끝나고 뭘 하냐고 묻자 “모임에 간다”고 대답한다. 결국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의 연장이다. 그러다 보니 술도 자주 먹을 수밖에 없다. “남들은 술 먹고 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늘 좋아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닙니다. 술 마시면 다음 날 피곤하고 힘들고...” 요즘 조합원 중에는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셔 이제라도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늘 경쟁에 시달린다. 2004년까지는 판매부진자교육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2박3일동안 정신교육을 하면서 차를 적게 판 노동자들에게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를 생각하게 한다. 각 팀마다 판매 목표를 정해서 목표를 채운 팀에는 포상을 주는데, 그때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한 노동자는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정해진 업무시간은 이들에게 무의미하다. 고객이 부르면 저녁에 개인적인 일을 하다가도 나가야 한다. 회사에서는 주말에 쉬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주말에도 각종 모임에 고객을 만나는 행사가 있으면 쉴 수가 없다. 이 지회장은 “우리는 돌아다니다가 쓰러져도 산재처리받기 힘들어요. 산재 처리 받으려면 카달로그라도 손에 쥐고 쓰러져야지”라고 판매 노동자들의 현실을 얘기한다. “회사만 그러는게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한테도 판매직들은 놀고 먹는거 아니냐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오해는 결국 ‘근무지를 이탈했다, 근무 시간에 딴 일을 한다, 놀고 술을 먹는다, 이중취업을 한다’는 회사의 악선전에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회사가 말하는대로라면 판매 노동자가 고객과 업무 시간에 골프치러 가는 것은 근무지 이탈, 근무 불량으로 징계 사유가 된다. 이 지회장은 “말 그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말한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아무데도 나가지 말고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투쟁 전술을 써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차 팔수록 손해, 실적 없으면 찍혀

회사가 판매 노동자들을 감시, 탄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든 징계하겠다고 마음먹고 쫓아다니면서 하나씩 감시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을 겁니다. 결국 그런 식으로 한 명씩 해고하겠다는 거죠” 이 지회장은 지금의 사태가 판매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에 목적을 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직영 판매지점과 대리점 사이에서 무엇이 더 회사에게 이득이냐의 문제가 있다.

현대차를 판매하는 곳은 지점과 대리점이 있다. 지점은 현대차 정규직 판매 조합원들이 일하는 곳이고, 대리점은 대리점 소장이 별도로 모집한 판매직원들이 있는 곳이다. “회사는 판매 조합원들에게 실적을 내라고 강요합니다. 그런데 대리점하고 경쟁해서는 직영 직원들이 도저히 차를 팔래야 팔 수 없는 조건이 만들어져 있어요”

판매 노동자들이 쓰는 말 중에 ‘지른다’라는 표현이 있다. 차를 판매할 때 고객들에게 정가에서 10만원, 20만원씩 할인해주고 이것 저것 서비스를 얹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판매 노동자들이 지른 금액은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차 한 대를 팔 때 20만원 정도 수당이 생긴다고 해도 고객에게 50만원 할인을 해주면 결국 30만원 손해를 본다. 이 돈은 판매 노동자가 받는 월급에서 깎이는 것. 회사는 판매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본급 비율도 높고 수당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차를 팔기 위해 이래 저래 할인을 해주다보면 결국 차를 팔고 받은 수당까지 지르는 데 쓰게 된다. 이렇다보니 이 지회장은 요즘 친구가 차를 산다는 사람을 소개시켜줘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친구가 소개시켜 준 사람이니 더 싸게 잘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차를 팔면 이익은 커녕 손해만 본다. 물론 회사는 정도 판매(정가 판매)를 하라고 하지만 늘 판매 경쟁에 시달리고 실적 압박을 받는 노동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리점 직원들은 기본급이 없고 대신 차를 판 수당을 받습니다. 지점 직원들보다 수당이 높은 편이니까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최대한 차를 많이 파는게 중요한거죠. 그러다보니 직영점 보다는 훨씬 많은 금액을 할인해주고, 고객들도 대리점가면 더 할인해준다는 걸 아니까 굳이 직영 직원한테 차를 살 필요가 없죠” 정가로 판매를 하면 실적이 나지 않아 회사의 눈치를 봐야하고, 실적을 높이기 위해 억지로라도 차를 팔면 임금은 그만큼 줄어든다.

“사실 대리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차 한 대 팔 때마다 대리점 소장한테 돈 주고, 고객들 할인해주다보면 결국 받는 돈은 얼마 안되요. 결국 배부른 사람은 현대차 사장이랑 대리점 소장들인거죠” 대리점 직원은 기본급을 받지 않고 4대보험도 가입하지 않는다. 직영 판매 사원 보다 대리점 사원을 늘리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회사에게 훨씬 이득인 셈. 그 결과 8년 째 현대차는 판매 정규직원을 단 한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 지회는 현대차 광주사옥에 설치한 지회 천막농성장을 임시사무실로 쓰고 있다. 신동준

이 싸움, 판매노동자 목숨 달렸다

“이게 현대차의 운영 방식입니다. 대리점과 지점이 갖고 있는 시스템 문제는 손도 안대면서 직원들 차 못 판다고 해고하는 거죠. 현대차가 어떻게 지금처럼 성장했습니까? 바로 내수 시장이 튼튼해서였습니다. 밤낮없이 고객들 만나고 차 팔았던 노동자들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거죠. 그런데 이제와서 대놓고 나가라고 하는거예요”

계속된 흑자 행진, 현대차 올 해 순이익만 5조원이다. “회사가 이렇게 잘나가니 대놓고 구조조정을 할 수는 없고, 뒤로 어떻게든 자르려고 하는 거죠. 결국 이번 사찰은 한 명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판매 조합원 목숨이 달려있는 겁니다” 이 지회장이 단식까지 하면서 싸우고 있는 이유다.

단식이 10일 째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도 없는 회사, 이 지회장은 “한낱 지역 지회장이 정의선 부회장한테 면담하자고 하니 어디 해주겠습니까”라며 웃는다. 하지만 판매 노동자는 언제든지 잘못을 할 수 있으니 감시 당해도 된다는 생각, 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지금의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매 주 토요일 광주사옥 앞에 조합원들과 지역 연대 단체 사람들이 모여 항의 집회도 진행하고 있다. 날씨도 많이 쌀쌀해졌지만 튼튼하게 쳐진 천막이 잘 버텨줄 것 같다.

노동자도 인권이 있다. 판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권리, 그들의 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전국 노동자들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금속노동자 ilabor 강정주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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