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타인의 무대가 돼준 적이 있는가. 5년 동안 무대로 활용돼온 민주노총 방송차가 무대 뒤로 사라졌다. 방송차 무대는 민주노총 후반부 역사와 함께 했다. 집회문화의 보증수표였다. 무대는 방송차가 없을 때도 존재했지만 무대차가 등장하면서 현장이 계획적으로 꿈틀댔다. 무대가 간 곳이 200여곳을 넘는다. 조직 노동운동의 산 증인인 셈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무대와 함께 했다. 기쁨과 슬픔이 무대와 함께 했다. 무대는 친구였고, 동료였고, 동지였다. 무대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벙어리였고, 귀머거리였다. 모든 우리의 의식과 행위는 무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무대를 기다렸고, 여지없이 무대는 우리를 맞아줬다.
 
무대차의 시동은 소외와 외로움과 고통의 신호였다. 무대차는 연대와 협력의 모범이었고 전설이었다. 어떤 이도 무대를 앞설 수는 없었다. 정치인도, 대표자도, 지도자도 무대 없이는 설 수 없었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삶의 신호를 배웠고, 의지의 언어를 습득했다. 무대를 통해 투지를 확인했고, 운동의 의미와 소중함을 깨달았다.
 
무대는 조직과 문화가 연결되는 통로였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현실을 분석했고, 무대를 접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무대는 현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연대의 일꾼이었다.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달려간 무대는 그대로 현장의 소리를 전달하는 대변자였다. 무대의 에너지를 통해 조직이 힘을 발휘했고, 조합원들이 용기와 기운을 얻었다. 무대차는 든든한 또 다른 조합원이었고, 카운슬러였다.
 
무대는 이성과 감성이 오가는 공감대의 교차로다. 무대는 우리의 언어였고 제스처였고 기호였다. 무대는 우정의 무대였고, 상징의 공간이었다. 무대는 소외의 대리장이었고, 응어리의 해결장이었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소통했고, 타인의 신호를 받아들였다. 무대는 경쟁의 연기장이 아니라, 진정성을 토해내는 자유와 평등의 시험장이었다.
 
무대는 오프라인의 로그온이고 접속장이었다. 우리의 서사는 접속한 무대를 통해 시작됐다. 무대는 현실의 페이지를 끝없이 펼쳐보였다. 무대가 끝나야 다음 행위를 기약할 수 있었다. 무대가 시작하고 끝나는 타이밍 판단은 항상 우리의 고민이자 보람이었다.
 
무대는 현대문명의 통로이고 자아실현의 장이다. 무대는 시간을 공간으로 접합시키는 매직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대는 늘 당위였고 의무였다. 우리는 늘 함께였지만 무대는 늘 혼자였다. 무대는 늘 외관이었고, 독립된 ‘무엇’이었다. 우리는 무대를 통해 자신을 발견했고, 무대는 우리를 통해 자신을 세웠다. 무대 앞은 늘 역동적이었지만 무대 뒤는 에너지의 소모장이었다. 무대는 봉사와 희생의 대명사였다.
 
무대차는 온갖 사연의 보관소였다. 현장에서 파손은 물론이고 빼앗기는 경험도 있었다. 무대차는 민주노총을 중소영세 사업장과 매개하는 역할도 거뜬히 했다. 무대가 없는, 무대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 대한 지원과 협력의 산물이자 약속이었다. 무대차는 정체와 이동을 수시로 변환시키는 트랜스포머였다. 너와 나를 연결해주고, 서사와 스토리를 제공하는 의식장치인 무대차는 우리의 팔과 다리였고 입이었다.
 
무대는 조직의 내면이 외형화하는 곳이다. 무대는 조직의 의식을 응집의 형태로 묶어주는 곳이다. 신속하고 유연한 시스템 방식으로 집회문화의 조직자인 민주노총 무대차는 든든한 후원자이고 버팀목이었다. 무대는 우리의 용기를 북돋웠고 실수를 감싸 안았다. 대중과 직접 대면하고 호흡하는, 진정 파수꾼이었고 방패막이였다.
 
삶은 무대다. 21세기 우리의 현장은 상징과 기호로 가득한 무대 위에 존재한다. 너와 나는 무대를 통해 드나든다. 우리는 모두가 배우이고 연기자다. 매일 우리는 많은 역할 속에 하루를 보내고 정리한다. 우리는 모두가 조연이고 주연이다. 너는 나의 무대이고, 나는 너의 무대가 돼야 한다. 우리 모두가 현실을 공유하고 참여하는 연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경쟁을 하지만 협력의 소중함도 함께 배운다. 정작 우리가 한시라도 진실의 연기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 연기와 상징이 가득하지만 삶의 진정성을 펼쳐 보이는 무대가 그것이다. 무대가 사라지는 날 음향국장의 아픔이 그제야 무대 위로 올려졌다. 무대는 그에게 기쁨이었고, 신명이었다. 무대의 현수막과 함께 날리는 음향국장의 머리카락이 새삼 그립다. 땀방울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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