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양심 있다면 지금이 떠날 때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애초에 순순히 떠날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건 너무 강심장이다. 귀 막고 눈 가린 형국이랄까. 사퇴한 상임위원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직원들의 비판과 한숨, 시민인권단체들의 사퇴요구에 귀를 막은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정녕 모르는 걸까?

오랜만에 인권위 앞에 모였다. 근 1년여 만이다. 지난해 거리를 달궜던 인권위 축소 저지투쟁이 새삼스럽다. 지역사무소 폐쇄를 막아내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지역의 인권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년 사이 ‘인권위원장 사퇴’로 구호가 바뀌었다. 그들은 왜 거리에 다시 섰을까. 지난 1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통령 입맛 맞는 인권위 만들기 혈안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인권위 축소방침은 시작에 불과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다니.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지난해 7월 취임한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운영절차 무시, 인권위원들 간의 합의 없는 독단적 행동, 게다가 최근에는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상임위원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운영규칙 개정안’을 발의하기까지 했다. 그의 취임 후 독재와 전횡이 횡행하고 위법과 탈법이 일상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후퇴한 인권분야가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이후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권고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반인권성을 보여주는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을 현병철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막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나마도 있었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권고는 “검열위험이 높은 현행 정보통신심의제도에 대한 개정 권고” 등 상임위원회가 했던 것들뿐이다. 심지어 현병철 위원장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 후퇴에 대해 조사하러 온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상임위원 합동면담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인권위는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대통령 직속기구화 시도, 행정안전부의 21% 조직축소,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각하 등 일련의 지속적인 무력화시도로 독립성을 훼손당했다. 인권위는 현재, 좀비 기구, 식물위원회라는 별칭 아닌 별칭을 안고 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권위를 좀비기구와 식물위원회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인권위원장이다. 인권위의 파행은 이명박 정부의 반인권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각계의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친정부 인사를 상임위원으로 임명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권력의 이권’만을 챙기는 국가‘이권’위원회로 만들어버릴 작정이다.

일말의 양심 있다면 지금이 떠날 때

참담하다. 국제사회에서 인권기구의 ‘롤 모델’로 인정받던 한국의 인권위원회가 이제 국제적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풍찬노숙을 하며 힘겹게 만들어낸 인권위가 다시 풍찬노숙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국가인권위는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관이다. 더 낮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보듬어 안아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이 권력의 시녀를 자임하면 사회적 약자는 더 이상 국가에 기댈 곳이 없다. 국가의 권력을 감시하고 공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한 사람을 지켜야할 역할을 해야 하는 기구가 권력의 액세서리 역할을 하기로 했다면 그 기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병철 위원장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지금이 적기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임경연/ 광주인권운동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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