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세력 단결로 2012년 승리를 경험하자”

민주노총, 노동법 전면재개정 운동·진보정당 통합 주력해야
‘노동있는 복지’ 통한 노동존중사회 실현, 한국사회 최대과제

조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말 ‘진보집권플랜’을 펴내며 시민사회 관심을 모았다. 조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 각 영역과 부문에서 진보가 추구해야 할 가치들을 제시했다. <노동과세계>가 조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를 만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개혁진영을 바라보는 시각과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민주노총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복지담론에 노동을 포함시켜 ‘노동있는 복지’를 화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조직된 노동자들이 진보정당 통합을 비롯한 현실정치와 시민운동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이명익기자
△‘진보집권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하다’ 발간에 즈음해 대중을 만나면서 느낀 변화와 올해 계획에 대해=지난해 말과 방학 때 책을 냈고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강연을 하고 있다. 올해는 2012년 4월을 12월을 앞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진보를 자처하는 학자로서 올해 제 역할이 뭘까 생각했다. 출마하라는 주문도 있지만 제 역할은 나침반과 접착제라고 생각한다.

저는 어떤 정당이나 단체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상대적으로 진보개혁진영 누구나 제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어느 한 정당을 선택하면 제 목소리는 곧 그 정당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미완의 정당들이 구조조정을 하기 전에는 가입하지 않고 밖에서 돕겠다고 했다. 접착제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조직을 분리시킨 노선의 차이, 사감, 경쟁의식을 극복하도록 해서 다시 붙이겠다는 것이다.

저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도가니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도가니가 몇 개로 나뉘어 각자 국을 끓이니 금방 식을 수밖에 없었다. 정당이던 사회운동단체던 조직을 재편해 도가니를 바꾸고 아래로부터 불을 떼자. 상층연합이나 논의로는 국이 끓지 못한다. 제가 지방을 도는 것은 상층이 아닌 밑에서부터 격발을 시켜보자는 것이다.

박근혜가 있어서 2012년에는 안 될 것이라고 단정짓는 이들이 있다. 6.2선거 전에는 더 심했고 그 뒤에도 일종의 패배주의와 비관이 있다.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 이번에 전교조 서울지부장에 당선된 제 친구가 “진보진영 전체에 부흥회가 필요하고, 예수가 오기 전에 전도사가 있어야 하는데 ‘기도발’이 먹힐 때 많이 이야기하라”고 제게 말했다.

저는 진보운동의 선봉에 서 있지 못하지만 제 쓰임이 있을 거라고 보고, 필요한 곳에 있으려고 한다. 진보정치 중심에 선 정당 활동가들, 지도자들에 맞춰져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제게 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부흥회라도 해서 우리 모두 확신을 가져야 할 때다.

‘진보집권플랜’이 겨냥한 독자는 활동가나 직업 정치인이 아닌 촛불시위에 심정적 호감을 가진 이들이다. 책을 낸 후 이메일 등을 통해 전해진 직간접적 반응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패배주의를 극복하며 해볼만 하다고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진보정당 통합에 대해=2012년을 앞두고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정치적 무능의 문제는 물론이고 모든 진보대중에 대한 모욕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활동가와 대중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고, 특히 선거시기가 되면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곤혹감과 혼돈을 안겨준다.

양당의 의석수와 지지율을 합해도 과거 민주노동당의 세를 회복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내년 4월 시점까지 회복하지 못하면 진보정치 활동가들의 무능이며 과오이고 후퇴를 반복하는 것이다.

역량을 모두 쏟아도 어려운데 조직구성원들과 지도부가 갈등만 겪고 있다. 안타깝다. 강력한 방식으로 압박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당연히 대지주로서 책임이 크다. 민주노총 조직된 노동자들이 밑에서부터 전국 시당을 압박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강력한 개입 없이는 안 된다. 당비 안내기 운동, 1분기 정도 납부유예 같은 극단적 실력행사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치사하고 서글프지만 돈줄을 막는 방식의 충격요법도 불사해야 한다.

고대철학에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유혹과 힘,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유혹은 곧 설득인데 안 들으면 강제할 수밖에 없다. 두 정당끼리만은 통합이 쉽지 않다. 당 내부에서 통합을 말하는 이들이 힘을 가지려면 민주노총이 양당을 공평하게 대우하면서 통합운동에 나서야 하며,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도 요구해야 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양대 정당 선대본부장을 맡는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을 맞아선 안 된다. 마이크 잡고 설득하고 글로 비판하고 그런 거 민주노총이 이미 다 해보지 않았나. 정당 밖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할 이야기 다했다. 양쪽이 말하는 논지와 불만, 왜 반대하는지도 다 안다. 통합을 새롭게 논의할 단계는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다.

올해 내 뭔가 결판을 내서 연말에는 통합전당대회를 해야 한다. 21세기형 통합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쇼크가 필요하다. 양당이 통합한다면 분당 전 민주노동당 세를 기본으로 플러스알파를 기대할 수 있지만, 통합하지 않으면 절대 회복 못 한다.

▲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이명익기자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개혁세력이 집권하려면?=2012년에 진보진영이 이기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합법화를 넘어 원내진출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장관, 도지사가 되는 것은 또 다르다.

2012년에 진보진영에서 적어도 노동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진보진영이 배출한 장관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재정부와 싸워 예산을 따내며 국정을 운영하는 집권경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과거 적은 역량을 갖고도 민주노동당이 국회 10석을 달성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희망을 봤다. 지난해 6.2선거에서도 지방의회에 많이 진출했다. 정당영역에 진보정치가 진출하면서 전체적 흐름도 확산됐다.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활동영역이 달라질 것이며, 민주노총 노동운동도 달라질 것이다. 노동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을 진보가 하게 되면 또 달라질 것이다. 노동운동도 이기는 경험을 맛보며 행정부와 의회를 경험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와 복지담론에 대해=비정규직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얼핏 보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철폐’ 구호에 그치는 것 같다. 저는 2012년 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노동법 개정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이 존재해도 지금처럼 반토막 임금을 받는 노예상황과는 달라질 것이다. 그들의 정치의식과 참여도 높아질 것이다.

민주노총은 2012년을 앞두고 우리 사회 시대정신을 고민해야 한다. 최근 ‘복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저는 노동없는 복지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정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3무1반, 즉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은 전형적 복지정책인데 여기에 노동이 빠져 있다. 민주노총이 이 논쟁에 노동의제를 포함시켜야 한다.

노조활동이 무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없는 복지는 보수층의 것으로 귀결돼 빈곤층을 돕는 차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노동있는 복지를 주창해 노동법 전면 재개정으로 비정규직법을 바꿔야 한다. 파견시간과 범위를 제한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도입해야 한다.

올해는 2012년을 앞두고 모든 주체가 위밍업하며 힘을 다지는 시기다. 노동법 전면재개정을 이뤄내는 승리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올해 진보정당 통합을 설득하며 노동법 전면재개정 운동을 벌이는 두 축의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지난 선거를 돌이켜볼 때 앞으로도 3무1반 등 복지 관련 슬로건들이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3무1반에 노동법개정을 포함시켜 내년 4월 야5당 공동강령으로 삼고, 국회의원 후보들 공동공약에 노동법 전면재개정이 들어가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진영이 다수파가 될 경우 법 개정 약속을 유권자를 대표해서 받아내야 한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부터 시작해 진보정치가 제 역할을 하려면 민주노총이 주요한 고리를 쥐고 행사해야 한다. 통합을 견인하고 압박하며 진보정치가 내년 4월 이후 과제로 노동법 전면재개정을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갖도록 해야 한다.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민주노총이 노동있는 복지를 내세워 2012년 시대적 화두가 되도록 해야 한다. ‘복지’ 논쟁이 활발해지면서 패러다임이 한 번 바뀌었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힘을 합해 패러다임을 한 번 더 바꿔 노동의제를 부각시켜야 한다.

△진보개혁진영-민주당 간 연대 논란에 대해=민주당에서 최근 보편적 복지, 부유세 등을 말하며 전체적 흐름에서 좌클릭을 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한국사회에서 민주당은 정치적 지분을 갖고 있다. 호남+친노+알파의 조직적 세를 가진 국회 제1야당이며, 현실정치에서 민주당을 완전히 뺄 수는 없다.

법률을 개정하려면 민주당을 빼고는 불가능하며, 현실적으로 냉정히 생각할 때 민주당을 제끼고 진보정당이 2012년에 집권하기 어려우니 연정은 불가피하다. 민주당이 신자유주의세력이란 지적은 한편 맞는 말이지만 조심해야 할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동유연화 정책을 뉘우쳤다. 민주당도 신자유주의에서 이탈하는 것 같다. 진보정당이 통합해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고 민주당과 선거, 정책, 법률개정 등 사안별 연대를 해야 한다고 본다.

자극적으로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하며 딱지를 붙이기는 쉽다. 현실에서 작은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면서 비판만 해서 뭐하는가? 저는 이견 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과제에 합의해서 공동작업을 설정하고 구체적 성과를 도출해내는 이들이 진정한 능력가라고 본다.

▲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이명익기자
△민주노총이 말하는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려면?=시민이 곧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적 개념으로 시민만 부각, 조명돼 왔다. 우리 사회 다수가 시민이며 노동자이지만 노동존중사회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노동존중사회를 사회적 화두로 던진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화적 정서적 노동존중만이 아니라 법 제도적으로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 최대 과제다. 노동이 중시되는 옳고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려면 노동자가 주인이 돼서 세상을 바꿀 수밖에 없다. 제도와 법을 바꿔 자신이 존중받는 사회를 이뤄내야 한다.

한국은 대학진학률이 95%인데도 취업이 안 된다. 유럽은 50% 이상이 대학을 안가도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우리보다 자존감을 갖고 산다. 외국사례를 조사해 우리와 국민총생산 등 경제규모가 비슷한 주요 나라들 노동자의 연봉, 부의 규모, 삶의 모습, 해고 위험 등을 비교해보자. 민주노총이 노동존중사회 모습을 담은 만화책을 하나 내면 좋겠다.

조합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 한국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길이 있음을 간명하고 쉽게 알려줘야 한다. 그걸 통해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무엇을 선택할지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자 시민을 각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울 때 박재완 노동부장관이 현대차 비정규직 임금이 공무원 사무관보다 높다면서 파업이 옳지 않다고 했다. 블루칼라는 돈을 많이 벌면 안 된다는 생각, 노동자는 어렵고 힘들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데올로기, 그것이 귀족노조 운운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모든 노동자시민이 품위있는 삶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자던 자본가던 모든 인간이 존중 받으며 누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노동존중사회로 가기 위해 제도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민주노총 역할이 크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조합원들에게=한국사회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운동이 나서는 것은 필연적이다. 어느 집단보다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노자문제는 노동의 영역이다. 자본의 모순과 바로 현장에서 부딪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문제제기가 그만큼 소중하며 민주노총 행보는 큰 의미를 갖는다.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힘과 조직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문제 해결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모든 시민이 곧 노동자이므로 전 시민적 영역으로 진출해야 한다.

노동의제 외에 환경, 성차별, 지역문제 등 시민적 영역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노동운동의 역사와 자부심을 인정하지만, 다른 문제를 외면하거나 덜 중요한 것으로 미룬다면 고립될 것이다. 모든 시민이 노동자라는 중심성을 잃어서도 안 된다. 민주노총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면 좋겠다.

당면해서는 지도부와 조합원들 모두 진보정치 통합과 강화, 노동법전면재개정운동 등 두 가지를 중심축에 놓고 올 한 해를 매진하시라.

글=홍미리기자
사진=이명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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