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당해졌어요”

▲ 박금자 전남학교비정규직노조 위원장. 이명익기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반면 쉽지 않은 길임을 알기에 두렵기도 해요. 현장에서 함께 부대끼며 저 혼자가 아닌 15만 학비와 함께 조직을 이끌겠습니다.”

15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국 단일노조를 건설하고 박금자 전남학교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을 초대위원장을 추대했다. 그동안 학교현장에서 유령처럼 살아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일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노조설립 과정이 순탄치 않다. 노동부는 언론매체 기사 등을 들이대며 트집을 잡았다. 노조 신고필증을 안내주려는 속셈이다. “우리는 단체행동으로 해서라도 설립필증을 사수할 겁니다. 이는 정당한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기도 해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박 위원장은 전남 학교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했다고 전했다. “다른 업종은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면 고용이 안정됐다고 보잖아요. 학교는 안 그래요. 감원바람이 불면 비정규직을 자르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어요.”

올해 초 전남지역 학교들에서는 전에 없던 놀라운 일들이 속속 발생했다. 학생 수 감소, 학교 통폐합 등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 사태를 노조가 나서서 여러 차례 막아낸 것이다. 근거리 학교들 중 신규채용하거나 인원충원을 하는 곳을 수소문해 구제했다. “설마...그게 되겠어?”하던 조합원들은 노조의 힘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리고 당당해졌다.

“고용문제와 근로조건 등에서 문제가 생기면 편안히 마음먹고 노동조합으로 연락 주세요. 노조가 나서서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박금자 위원장 역시 학교에서 비정규직 조리사로 16년 간 일했기에 해마다 엄습하는 고용불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정규직이 오면 물러나겠다’는 단서가 적힌 계약서에 매년 서명해야 했다.

“고용이 유지돼서 3월 새학기를 시작하면서도 벌써 1년 뒤를 걱정해야 돼요. 불안하게 1년을 보내는 거지요. 내년에 학생 수가 줄어든다더라, 급식실 인원을 감원한다더라 하는 소문이 계속 돌거든요. 인건비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정말 비참해요.”

박금자 위원장은 그 어떤 곳보다 중요한 학교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온갖 불안을 겪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잘하려고 애를 써도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밝은 얼굴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4대보험을 제외하고 월 80만원밖에 안 되는 저임금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 노예취급을 받으며 산다는 겁니다. 휴게공간은 물론이고 옷 갈아입을 곳도 없는 곳이 태반이죠. 저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곤 했어요.”

학생 수 기준으로 급식실 인원을 정하다 보니 일선 작은 학교는 정말 힘들다. 학생 수가 적어도 음식 양만 적을 뿐이지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다. 급식실에서 산재사고가 빈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남지역 한 학교에서는 병설유치원 교사와 원생들을 학생 수에 포함시키지 않아 문제가 됐다. 도교육청은 노조가 제기한 이 문제를 시정해 일선 학교에 지침으로 전달했다.

“노조를 건설한 후 우리 조합원들이 당당해졌어요. 고용불안도 조금 나아졌구요. 그동안 학교현장에서 유령처럼 살아오다 우리도 사람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존감을 찾기 시작한 겁니다. 이제 진짜노동자로 우뚝 서기 위한 통로를 열 거에요.”

전남학교비정규직노조는 오는 3월 도교육청과의 교섭을 앞두고 있다. “16년 간 노동자로 살아왔지만 교섭이란 걸 처음 해봐요. 선례가 없는 일이죠. 교섭을 준비하다보니 모든 법이 힘없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돼 있더라구요. 정당한 법규를 만드는 일도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박금자 위원장은 전남지역을 조직하면서 조합원이 있는 지역 곳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전남은 섬이 많고 한 지역에 비정규직이 1명씩 2명씩 흩어져 있는 곳이 숱하다. “지역을 조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어요. 요즘은 인터넷망이 다 있잖아요. 혼자 계신 분들은 오히려 단결력이 더 좋아요.”

박 위원장에게 학교비정규직노조의 꿈이 뭔지 물어봤다. 그는 “학교현장에 가면 길이 있고 답도 있다”면서 올해 7만을 조직하고, 명절휴가비 100만원을 쟁취하고, 임용권 변경으로 고용안정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비정규직 모든 직종의 처우를 개선하고, 근무일수를 늘리고 근속가산금을 조정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2011년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2012년 우리는 공무원화를 쟁취할 겁니다.”

박금자 위원장은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단결을 호소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국민에게도 열렬한 응원과 격려를 주문했다. “저희 학교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철폐에 앞장설테니 민주노총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서도 저희를 믿고 힘을 실어주십시오.”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두렵고 힘들지만 그만큼 벅차고 영광스러운 그 길을 박금자 위원장은 전국 15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뚜벅뚜벅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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