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철회·희생자추모 한진중공업지회 3차 공동투쟁 동행취재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배를 건조하던 한진중공업 노동자 172명에게 지난 3월15일 해고통보서가 날아들었다. 회사는 2007년 “해외공장이 운영되는 한 조합원 정리해고 등 단체협약상 정년을 보장하지 못할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지회는 지난해 12월부터 전면파업을 시작했고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맞서 세 명의 노동자가 크레인에 올라 저항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오른 지 3월23일 현재 77일째다.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과 문철상 금속노조 부양지부장도 38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진중공업지회가 금속노조 내 정리해고 사업장 세 곳(쌍용차지부, 대우자판지회,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과 함께 지난 8일부터 25일까지 3주 동안 서울에서 공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노동과세계>가 한진중공업지회 3차 상경투쟁 만 하루 일정을 동행취재했다. <기자의 말>

▲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추모 공동투쟁단 3차 투쟁 돌입 선포 결의대회'에 참가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손 펼침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명익기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3차 상경투쟁 일정은 22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시작됐다. 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추모 공동투쟁단 3차 투쟁 돌입을 선포하는 결의대회.

그런데 시작부터 순탄치 않다. 집회장소 인도 한 켠에 세워놓은 방송차를 경찰이 트집 잡고 나선 것. 경찰 관계자들은 집회에 필요한 방송차를 옮기라며 억지를 부리다 급기야 견인차까지 불러왔다.

이 모습을 본 한 조합원이 견인차 밑에 엎드려 눕는다. 나머지 조합원들도 방송차를 둘러싼 채 집회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그러자 전투경찰들이 달려와 조합원들을 에워싼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려고 합니다. 사전에 신고된 집회입니다. 경찰은 집회를 보장하십시오.”
“시민들이 오가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곳에 세운 방송차를 왜 빼라고 합니까? 오히려 도로에 세워진 경찰버스 때문에 차가 막히고 교통이 마비되고 있습니다.”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길가던 시민들도 어이없어 한다. 결국 견인차가 쫓겨나갔고 집회가 시작됐다.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발레오공조코리아, 대우자판 노동자들이 손펼침막을 높이 치켜들었다. “해고는 살인이다!”, “정부가 해결하라!”

한진중공업, 쌍용차, 대우자판,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이 한사람씩 나와 이들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정리해고 사태를 규탄한다.

▲ 22일 결의대회에 앞서 경찰이 신고된 집회 임에도 견인차를 이용 방송차를 견인하려하자 대회에 참가한 한 쌍용자동차 조합원이 차량 바퀴 밑에 누워 견인차량을 막고 있다.이명익기자
“4개지회 공동투쟁에 함께하게 돼 기쁘다. 3주차 상경투쟁을 위해 부산에서 달려왔다. 한진 식구들의 염원을 모아 정리해고 분쇄투쟁을 끝까지 하겠다.”_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천안의 발레오, 부평의 대우자판, 평택의 쌍용차,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가 자행되고 있다. 억울하다. 우리 4개 지회가 이 나라 정부를 향해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모두 힘내서 공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_황인석 쌍용자동차지부장

“대규모 정리해고 속에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이렇게 길거리에 앉아 하소연하는 것조차 경찰이 막는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다. 프랑스대사관 앞에서 지난해 10월부터 노숙농성 하며 혹한의 긴 겨울을 보냈다. 오늘 아침 일어나 처음으로 햇볕을 봤다. 어렵지만 우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_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조합원

“이 정권과 기업이 똘똘 뭉쳐 정리해고 난리굿을 하고 있다. 우리 노동자들도 똘똘 뭉쳐 고용을 지켜내고 정리해고를 막아내자.”_대우자판지회 조합원

정혜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이 무사히 남은 임기를 마치고 싶다면 이 참혹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속히 해결해야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죽어간 동지들을 추모하며 이명박 정권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무한학살의 대가를 돌려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 집회장소 한쪽에 대형 걸개가 나붙었다. 죽은 자들의 영정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무급자, 희망퇴직자, 그리고 그 가족 14명이 정리해고 사태로 인해 죽음을 맞았다. “노사합의 무시와 정리해고로 인한 죽음의 행렬,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집회를 마친 해고노동자들은 서울 곳곳에서 선전전을 벌이기로 했다. 경찰은 대오 주변을 떠나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계속 주시하고 있다. 체포조도 수십 명 보인다.

한진중공업, 쌍용차, 발레오공조코리아, 대우자판 해고 노동자들이 버스를 탔다. 오늘 오후 조합원들은 인왕산에 오르기로 했다.
“서울에 왔으니까 청와대도 쫌 보고, 산에도 올라가보고... 그럼 좋지.”
경찰차가 뒤쫓아온다. “어디까지 따라올라 카는데?”

서울은 상경투쟁 차 몇 차례 왔다갔다 했지만 인왕산에 오르는 것은 모두 처음이다. 무악재역에 내려 육교를 지나 가파른 콘크리트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자 육각정이 있는 공터가 나왔다. 여기서부터 산행길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성공한 겁니다. 이제부터 산에 오를 건데요, 여기가 청와대 주변이고, 김신조가 왔을 때 여기 어디로 왔다고 해요. 그래서 경찰이 곳곳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등산객이니까 그냥 인사하고 지나가시면 됩니다.” 금속노조 조직부장의 설명이다.

지난 3월8일부터 시작된 공동투쟁 과정에서 1차, 2차 상경투쟁단 조합원들도 인왕산 등반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경찰에 막혀 결국 정상까지 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50여 명이 등반에 나선다. 다행히 너무 춥지도 않고, 햇볕이 내리쫴 산행하기 좋은 날씨다. 시작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별 준비 없이 나선 등반인데다 모래가 깔린 미끄러운 길을 지나자 바위도 많다. 벌써 3월 말인데 곳곳에 잔설도 보인다. 보폭이 넓어지니 숨이 가쁘다.

“하~ 되네.”
“힘이 쫌 든다 아이가!”

중간에 서서 숨을 고르는 조합원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마치 산다람쥐 처럼 잘들 올라간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평균나이가 50세. 이번 3차 상경투쟁에 나선 조합원들 대부분은 흰머리가 절반 이상인 고령자들이다.

열심히 산을 오르는 한 조합원에게 말을 붙여봤다. “부산 계시다 서울 오시니 어떻습니까? 부산이 좋지요?”

▲ 22일 결의대회를 마치고 인왕산 등산에 나선 한진중공업 조합원이 인왕산 정상으로 오르고 있다.이명익기자
▲ 22일 결의대회를 마치고 인왕산 정상에 오른 한진중공업 조합원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이명익기자
“하모... 부산이 살기 좋지요. 물가 싸고, 인심 좋고, 바다도 있고...”
고향 자랑이 이어진다. 50대 늙은 노동자는 태어나서 자라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부산 땅에서 그냥 평화롭게 아이들을 키우며 정년을 맞고 싶을 뿐이다. 그런 소박한 바람조차 빼앗긴 노동자가 이렇게 서울까지 와서 청와대 뒷산을 오르고 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듣던 옆의 동료가 한 마디 거든다.
“맞다, 해고만 안했으면 좋았을낀데... 짤라뿌는 바람에 이래 된거 아이가?”
“부산에도 봉래산이라꼬 있거든요. 요즘도 이틀 근무서고 하루 쉴 때는 산에 다녀요. 체력관리를 잘해야 쌈도 잘하잖겠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30분 정도 오르니 벌써 정상이다. 인왕산은 해발 338.2m,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된 서울의 진산 중 하나다.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

“하~ 다 뵈네. 서울이 여기서 다 뵌다 아이가.”
“쩌~기 청와대도 있네.”
“생각보다 밸거 아이네. 파업하고는 산에 못 다녔는데 서울 와서 체력관리 하네.”
“청와대라꼬 테레비서만 보다가 여기 올라와서 보네. 그란데 청와대 뒤쪽 아이가.”

잠시 숨을 돌리고 현수막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여기서 사진 찍으면 안 됩니다”, “현수막도 펼치면 안 됩니다.”
“아니, 산에 와서 사진도 못 찍나?”
“여기 절경이라 우리 기념사진 찍을라카는데...”

“청와대 주변지역이라서 안됩니다.”
“이곳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서 여기서 단체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라카는기 국민이 여기 산에도 맘대로 못 다니게 하는 기가? 정말 이랄래? 이라믄 안 되지.”
“우리 요구가 있어가꼬 한진이랑 쌍용차랑 같이 올라와가 사진쫌 찍으라카는 것도 안 된다이... 내 참... 뭘 할라캐도 경찰이 따라다니매 방해하네.”

▲ 22일 결의대회를 마치고 인왕산 등산에 나선 한진중공업 조합원이 인왕산 정상에서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다.이명익기자
몇몇 조합원들은 기어코 현수막을 펴 사진을 찍었다. 현수막에는 “해고는 살인이다 정부가 해결하라”고 적혔다. 누군가 “여기서 청와대까지 직선으로 1km밖에 안 된다”고 하자 한 조합원은 청와대 쪽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해고는 살인이다!” 그러자 또 경찰이 깜짝 놀라 제지하고 나선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오후 5시 경 하산하기 시작했다. 올라올 때는 깎아지른 바위뿐이라 숨이 턱까지 찼는데 사직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턱이 높은 계단과 보도블록으로 포장돼 있다. 서울성곽을 오른쪽에 끼고 왼쪽으로는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하산길.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조원선 조합원. 먹튀자본의 일방적 공장 청산과 정리해고에 맞서 1년 반을 힘겹게 싸워온 노동자의 얼굴에 피로가 역력하다.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는 서울 프랑스대사관 앞에서 130일 넘게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처음 싸움 시작할 때는 이렇게까지 올 줄 몰랐죠. 기대도 있었구요. 가면 갈수록 답답해요. 하지만 끝을 봐야죠.”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을 길거리에서 보낸 그의 착하게 생긴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다. 어렵지만, 힘들지만 더 힘내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부지게 내보이는 그의 얼굴에 따뜻한 햇살이 비친다. 그는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

내려오다 보니 왼쪽에 서울성곽 안쪽으로 향한 작은 쪽문이 나 있다.
“여는 어데고? 이리로 함 드가 보까?”
“그럼 또 올라가는 거 아이가?”
“이명박이 한 번 만나봐야 할 낀데.”

사직공원에 도착한 조합원들은 다시 광화문으로 향했다. 걸어오는 도중에도 경찰이 인도를 막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왜 돌아가라는 긴데?”
“아, 길도 경찰이 가라는 데로만 가야 되나? 이기 말이 되나?”

40분 정도를 걸어 광화문 네거리 동화면세점 앞에 집결한 노동자들은 지나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저희는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입니다. 해고는 철회되고 저희는 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부가 해결해야 합니다.” 이 모습을 본 한 시민은 꿀차를 한보따리 사다 주며 조합원들을 응원한다. 비닐봉지를 받아든 노동자는 고개를 끄덕하며 감사를 표한다. 오후 6시10분까지 선전전을 진행한 조합원들이 식사 후 저녁 7시 다시 보신각에 모였다.

▲ 22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정리해고 노동자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정부가 해결하라!'가 적힌 손 펼침막과 빨간 풍선을 들고 있다.이명익기자
▲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발레오공조코리아 조합원들이 참가한 정리해고 노동자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촛불문화제.이명익기자
▲ 22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정리해고 노동자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해고자 복직을 염원하는 빨간 풍선을 흔들고 있다.이명익기자
‘문화행동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모인 문화예술인들이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마련했다. 정리해고 노동자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촛불문화제 “소.리.질.러!”

민족춤패 ‘출’의 춤 공연으로 시작된 문화제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부위원장과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이사,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정리해고 사태를 강력히 규탄하고 범시민사회가 연대해 노동자 죽이기 만행을 저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클베리핀, 하이미스터메모리 등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빨간 풍선을 높이 흔들며 환호했다. 허클베리핀 여성보컬은 노래 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편이다, 힘내시라, 파이팅!”을 외쳐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한진중공업지회 한 조합원은 “힘이 난다, 저런 젊은 음악가들도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니 정말 힘이 된다”며 밝게 웃는다. 또 한 조합원은 “우리 아들이나 좋아하지, 난 이런 거 처음 본대이. 그란데 이렇게 보니까 참 좋네, 멋지대이”하며 힘차게 빨간 풍선을 흔든다.

오후 9시가 다 돼서 공연이 모두 끝났다.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숙소로 이동해 전체 모임을 갖고 잠자리에 들었다. 고된 하루 일정이 끝났다.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80명씩 순번을 정해 3주째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주에 올라온 조합원들의 상당수는 지난 3월15일 통보된 172명 정리해고 명단에 들지 않은 비해고자들이 많다. 자신은 해고자가 아니어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내쫓는 못된 자본에 함께 저항하는 이들이다.

상경투쟁 둘째날인 3월23일. 오전 일찍 기상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7시30분 경 곧바로 금속노조 앞에 모여 광화문 네거리로 향한다.

▲15일 아침 선전전에 나선 한진중공업 조합원 33명을 연행한 적이 있었던 경찰이 23일 아침에도 경계를 풀지 않고 선전전에 나서는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함께 광화문 사거리로 이동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23일 오전 아침 선전전에 나선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이명익기자
때마침 찾아온 꽃샘추위에 아침 기온은 영하인데다 바람까지 심하게 분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기 힘들 만큼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막아보려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리지만 온몸을 할퀴고 드는 바람을 피할 순 없다.

“추우시죠? 따뜻한 부산서 오셨으니 더 추우시겠어요. 때마침 꽃샘추위래요.”
“아입니더. 이 정도면 여름이지요. 괜찮습니더.”
“아 부산서도 매일 근무서고 그랬는데... 근무를 하루에 12시간 설 때도 있고, 6시간, 4시간, 3시간 그렇게 섰는데... 계속 그래 해서 뭐 이 정도는 힘 안듭니더.”

오전 7시50분 경부터 선전전이 시작됐다. 푸른색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조합원들은 각자 선전물을 나눠들고 광화문 네거리 주변으로 흩어졌다. 동화면세점, 동아일보, 세종문화회관 쪽, 비각 등 주변에 두셋씩 서서 시민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부산서 온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입니더. 이거 한 번 읽어보이소. 고맙습니더.”

매서운 봄추위에 중무장한 시민들은 주머니에 단단히 손을 찔러넣은 채 발걸음을 재촉하다 선전물을 받아든다. 유심히 읽으며 걸어가는 사람, 그냥 손에 들고 뛰어가는 사람, 주머니에 넣고 가는 사람... 조합원들은 선전물을 받아주는 것만도 고맙다.

“그래도 선전물 잘 받아주네예. 10명 중 3명 정도는 받는 것 같네예.”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시종 웃는 얼굴로 선전물을 나눠주는 조합원. 말을 붙이며 얼굴을 들여다보니 “차라리 죽여라”라고 쓰여진 붉은 색 버프를 했다.

선전전 도중 조합원들은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지하철역 앞에 놓여진 무가지 신문들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거리를 구경하기도 한다.

“이순신 장군이랑 세종대왕이랑 저래 해놨네.”
“여기가 광화문 아이가? 저 뒤가 청와대고.”
“청계천은 어디고?”
“바로 저(기)가 청계천 아이가?”

정보과 형사와 경찰 관계자들, 전투경찰들이 주변에 서서 감시하는 가운데 오전 출근선전전은 계속됐다. 비각 쪽 지하철역 입구에서는 한동안 두 노동조합의 동시선전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최근 하나금융이 론스타 투기자본으로부터 거액을 빌려 외환은행을 인수하려 하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침탈을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자들은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승인절차를 중단하고 2조원 국부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하며 싸우고 있다.

한진중공업지회와 외환은행노조 조합원들은 사이좋게 양쪽에 서서 선전전을 펼쳤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와 외환은행 부당매각 위기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이다.

▲ 23일 아침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선전전에 나선 한진중공업 조합원이 광화문역 출구에서 같은 시간 선전전에 나선 외환은행 조합원(오른쪽)과 함께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이명익기자
아침 선전전을 마친 조합원들을 만나봤다.
“희망퇴직한 사람도 있지요. 자격증을 따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는데... 변변한 일자리가 어데 있습니꺼? 무조건 다 비정규직인데...”
“조선업종은 하던 일이지만 그것도 그렇고... 취직하기 어려워요.”

“그런 사람도 있는데 우린 싸웁니더. 싸울낍니더. 우리가 잘못한 기 아이고, 회사가 저그들이 잘못한 거 아닝교?”
“진숙이 누나랑, 우리 지회장, 지부장 생각해서라도 이 싸움 멈출 수 없는기라예.”
“승리한다는 확신 없이 이래 하겠습니꺼? 이길 겁니더. 꼭 이길 거라예.”

아침 댓바람부터 선전전을 하느라 꽁꽁 얼어붙은 몸을 잠시 녹인 조합원들이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였다. 해고노동자(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대우자판, 발레오공조코리아) 문제 해결을 위해 문화예술인들이 마련한 오전 11시 기자회견. 그런데 회견 참가자들의 복색이 예사롭지 않다. 해골옷을 입은 사람에 가면을 쓴 사람도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이 계속해서 죽음을 맞고 있는 사태, 또 전국 곳곳 노동현장에서 정리해고 사태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문제 관련해 지난 16일 긴급모임을 가졌다. 문화예술계가 직접 나서 정리해고자를 위한 실질적 행동을 시작하자는 제안에 대해 불과 며칠 만에 850여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서명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박재동 만화가,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임동확 작가회의 주간, 최진욱 영화산업노조 위원장 등이 각계 문화예술단위를 대표한 발언을 통해 노동자들 죽음에도 아랑곳없이 정리해고를 일삼는 자본과 그것을 방관하는 이명박정권을 규탄했다.

송경동 시인은 성명서 낭독을 통해 특별대책기구를 설치, 현황을 조사하고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에 복귀할 때까지 적극적 역할을 수행할 것,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점을 파악해 즉각적이고도 실질적 지원을 추진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또 국내 핵심 산업 민영화와 해외 매각을 중단하고 국내외 투기자본이 만동하지 못하도록 즉각적 규제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발레오공조코리아 등 사측에 대해서도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을 즉각 철회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문화예술인들은 “삶의 터전과 공간에서 해고당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려내고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생산물인 공연, 작품, 강연, 글쓰기 등에서 해고노동자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지회와 쌍용차지부 해고조합원들은 ‘더 이상 죽이지 말라’란 주제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쌍용차를 비롯해 정리해고 사태로 인해 죽어간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해골옷을 입고 가면을 쓴 노동자들은 차례로 쓰러지며 죽음의 도미노를 표현했다.

돈만을 위해 노동자를 탄압하고 해고하고 죽이는 자본.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런 부당한 현실의 벽 앞에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자신과 가족의 삶, 그리고 건강한 노동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죽음을 넘어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야 한다. 쓰러졌던, 죽었던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해골복장과 가면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팔뚝질을 시작한다. 외친다. “해고는 살인이다! 정부가 나서라!”

이어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일부는 민주노총으로 이동해 정리해고 대책 정책토론회에 참가하고, 나머지는 광화문과 시청 등지에서 거리 선전전을 펼쳤다.

3차 상경투쟁에 나선 지회는 정리해고 사태 정부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와 선전전, 촛불문화제를 지속적으로 벌이는 한편 투쟁사업장 연대집회에도 참가한다. 한진중공업지회를 비롯한 공동투쟁단은 오는 25일 오후 7시 보신각에서 민주노총, 야6당과 60개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정리해고 철회, 희생자 추모를 위한 범국민 추모대회’를 개최한다.

내 곁을 떠나간 동지들, 가족을 놔두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내 바로 옆에서 일하던 동료들, 극심한 우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애달프게 돌연사로 세상을 등진 내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더 이상은 죽지 않겠다고... 억울해서 더는 죽을 수가 없다고... 국가가 책임질 문제라고... 회사를 잘못경영한 너희들, 경영자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정리해고를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우리는 잠 안자고 밥 못먹어가며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이 땅 해고노동자들의 살고자 하는 살겠다는 절규가... 호소가... 분노가 돼서 서울 도심을 뒤흔든다...  "해고는 살인이다."

▲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해고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정부가 해결하라'가 적힌 손 펼침막을 들고 회견에 참가하고 있다.이명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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