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추모 범국민대회 “해고는 살인이다”

▲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 참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25일 범국민 추모제에 참가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합장을 한 채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태휴, 명진, 법고스님들의 해고노동자 희생영령들 천도의식을 함께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정리해고 사태로 희생돼 죽어간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정권과 자본을 심판하자는 노동자민중의 목소리가 서울 도심에서 울려퍼졌다.

정리해고철회 및 정리해고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25일 오후 7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를 개최했다.

이날 추모제 참가자들은 쌍용차 해고자, 무급자, 희망퇴직자들과 그 가족들의 억울하고도 참담한 죽음을 기리며, 지금도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대우자동차판매, 발레오공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해고는 노동자 생존을 위협하는 살인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개회선언을 통해 “청와대에서 일본 대지진 희생자에 대한 추모묵념은 있어도 대한민국에서 해고돼 죽어간 노동자에 대한 추모는 없다”고 일갈하고 “이제 우리는 그들에 대한 추모를 넘어 그 희생 원인을 규명해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일자리와 고용안정을 확대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의식을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일자리와 고용안정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넘어 우리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통의 요구”라면서 “오늘 의식이 사회적 보편적 복지를 향해 봄을, 희망을 만드는 의식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리해고 사태로 인해 희생된 조합원들의 넋을 위로하는 불교계와 기독교계의 기도의식이 진행됐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태휴, 명진, 법고스님들은 천도의식을 통해 이 국가, 우리 모두가 죽음으로 내몬 해고노동자 희생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을 봉행했다.

이어 영등포산업선교회 손은정 목사는 “내 일터, 내 일에 골몰하느라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을 돌아보지 못한 우리,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를 보며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마지막 생명의 끈을 놓을 때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한 하루아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버지를 어머니를 본 아이들의 충격과 참담한 상처를 외면한 이기적 삶을 용서하시라”고 토로했다.

손 목사는 “누군가 목숨 걸지 않으면 죽지 않으면 돌아볼 여유 없는 무감각한 우리들 마음과 양심의 죽음, 이 어둠의 시대,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상식을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경영자들, 땅 파는 데는 혈세를 수십조씩 쏟아붓고,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동안 제 나라 국민이 죽는 것을 보지 못하는 권력자들을 정리해고시켜 달라”면서 “정직한 노동으로 하루 세 끼 밥을 버는 노동자 14분의 핏값이 헛되지 않게, 노동자에게 일한 대가가 돌아가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빈다, 14분의 영혼에 편안한 안식을, 그 유가족들에게 밝은 빛을 주시라, 우리와 지역사회가 그 아이들을 함께 돌보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라”고 기도했다.

▲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태휴, 명진, 법고스님들의 해고노동자 희생영령들을 천도의식을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해고는 살인이라던 노동자의 외침이 믿기 싫었지만, 1등만 기억하는 무한경쟁이 우리 사회 원동력이 아니라 함께 살자는 협력의 길이 옳았다”면서 “자본가들, 고환율과 온갖 특혜 속에서 상상도 못할 이익을 남기고도 경제점수가 낙제를 겨우 면했다는 이건희는 틀렸다”고 일갈했다.

이어 “온갖 탈법 불법을 일삼은 자를 몇 달 만에 사면시켜줬더니 초과이익공유제를 듣도보도 못했다면, 우리는 편법승계를 듣도보도 못했으며, 노동자는 한 명도 사면복권하지 않고 자본가에 복종하는 권력이 틀렸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자가 잔고 마이너스를 보며 연탄불을 피워 죽어갈 때 권력자 3/4이 수조, 수십조 소득을 올랐다”면서 “우리는 14분이 돌아가신 후에야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외치며 더 이상 죽인다면 너희들 죽음이 가까워오리란 외침을 다시 확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경동시인의 추모시(아래 표) 낭독에 이어 4개 사업장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황인석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지난해 4월 부인이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후 지난 3월26일 임무창동지가 또다시 아직 부모의 손이 필요한 두 아이를 놓고 우리 곁을 떠났는데 노제를 치르자마자 그날 오후 부산 녹산공원에서 조 동지가 본인 차에서 연탄불을 피워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황 지부장은 “수십 년 노동하며 가족과 행복하게 살던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 기술유출 회계조작 책임을 노동자에게 넘긴 자는 누구냐”고 반문하고 “오늘 추모는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타살만이 아닌 이 땅 모든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돼야 하며, 모든 국민과 함께 정리해고를 박살내는 그날까지 투쟁하자”고 다짐했다.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은 “지금 우리 사업장에서는 세 분의 지도자가 크레인에 올라 100일째 농성 중”이라고 전하고 “한진 자본은 2005년 말부터 정리해고를 일삼아 당시 400명이 희망퇴직했고, 지난해 말 또다시 400명을 정리해고한다며 230명을 내쫓고도 17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우리 조합원들은 이렇게 국민을 해고하는 먹튀자본을 규탄하며 이 나라의 잘못된 정리해고를 박살내고 민주노조를 사수할 것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대우자판지회 부지회장은 “집단살인 정리해고 맞서 본사 점거 61일차”라면서 “지난 22일 지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돼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다”고 전하고 “우리를 해고한 이유는 무엇이며, 정리해고와 탄압으로 고통받는 우리 잘못이 뭐냐”고 반문했다.

▲ 황인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 참가 발언을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부지회장은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 그 회사에 입사해 처자식과 함께 먹고살려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말하고 “그 대가가 해고라는 살인으로 돌아왔다”면서 “자본의 미친개가 노동자인 인간을 물어죽이는 이 세상에서 개에게 물려죽지 말고 노동자인 인간이 미친개를 물어죽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조합원은 “충남 천안의 산골짜리에 있는 작은 중소기업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한가족이라고 하던 자본이 돈 맛을 알더니 거기에 취해 우리를 내쫓았다”고 말하고 “자본은 노동자를 가족이 아닌 돈 버는 기계로 취급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민주사회와 평등을 말하지만 살인적 정리해고에 저항해야 하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살려면 모든 노동자가 가족이 돼서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춤패 ‘출’이 억압과 착취를 뚫고 노동자 해방세상을 여는 추모공연을 펼친 데 이어 최영희 민주당 의원과 우위영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각각 당 대표 연대사를 대독했다. 김은주 진보신당 부대표, 안효상 사회당 대표도 연대사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에 대한 살인적 정리해고를 강력히 규탄하고 전 사회적 연대투쟁을 호소했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투쟁발언에서 대한민국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적 정리해고 사태를 규탄하고, 노동자들 총력투쟁을 다짐했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해고는 살인이다 정부가 해결하라!”고 구호를 외치며 사용자들 경영실책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정리해고를 규탄했다.

오늘 추모제 장소 한편에는 ‘정리해고 희생자 시민분향소’가 마련됐다. 집회 참가자들과 지나는 시민들은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 영정에 헌화분향하며 그들의 넋을 기렸다.

오늘 추모제에 앞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정당, 문화예술계 등 각계각층 2,244명이 정리해고희생자 추모위원으로 참여했다. 추모위는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 희생을 추모하는 추모주간을 정하고 지난 8일부터 오늘까지 매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추모촛불집회를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정리해고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여론과 공감대를 모으고 현재 진행 중인 한진중공업, 대우자동차판매, 발레오공조코리아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 한 켠에 마련된 정리해고 희생자 시민분향소.이명익기자
▲ "너희를 묻지 않고 우린 이 열 네분의 참혹한 시신을 묻을 수 없다. 너희들을 단죄하지 않고 우린 어미 아비를 잃은 이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쳐다볼 수 없다."(송경동 시인 추모시'너희 참 좋겠구나'中) 25일 추모제 가 열리는 버스 차창으로 '해고는 살인이다, 정부가 해결하라'문구가 반사되고 있다.이명익기자

 

 

▲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 '너희는 참 좋겠구나'를 낭송하고 있다.이명익기자
너희는 참 좋겠구나
- 쌍용차 희생자 열 네분과 신자유주의 정리해고의 쓰나미에 휩쓸려 희생당한 모든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송경동(시인)

좋겠구나
이젠 5.18 광주에서처럼
총으로 곤봉으로 대검으로 때려죽이고 찔러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어가니

좋겠구나
이젠 한진중공업 박창수처럼 YH무역 김경숙처럼
굳이 끌고 가 떠밀어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죽어가니

너희는 참 좋겠구나
이젠 용산에처럼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망루에 가둬두고
짓밟고 태워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피 말라 죽어가니

너희는 정말 정말 좋겠구나
이런 만고강산 이런 태평천하
이런 누워서 떡먹기 이런 부라보
이런 룰루랄라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
시간만 가면 돈이 벌리는 이런 희안한 세상이
배 터지게 입 찢어지게
환장하게 좋겠구나

노동자들만 눈물바다구나
평생을 뼈빠지게 일하며 눈물바다
평생을 생존권에 쫓겨다니며 눈물바다
평생을 길거리에서 싸워가며 눈물바다
급기야 저절로 목숨까지 반납하며 눈물바다
짜디짠 눈물 바다 뿐인
노동자 세상이 참 좋겠구나

이 더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이 서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더 이상 물량과 생산성에 쫓기지 않고
더 이상 구사대 경찰에게 쫓기지 않고
더 이상 실업과 생활고에 쫓기지 않고
먼저 가서 자네는 좋겠네 라고 얘기해야 하나
차라리 먼저 가서 자네는 행복하겠네 라고 말해야 하나

무한 경쟁 무한 생산 무한 소비로
벼랑에 도달한 것은 자본인데
왜 등 떠밀려 묻혀야 하는 것은 착한 우리들만인가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민중들이 살처분당해야
너희의 위기는 해소되는가

돌려 말하지 마라
이것은 계획된 살인
이것은 준비된 학살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를 향한 자본의 테러
우리는 더 이상 묻힐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야 하는 것은 너희다
이 참혹한 땅에 매몰되야 하는 것은 이 열 네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고노동자들과 비정규직들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가장 악독한 산재이며 구제역인
자본과 권력 너희다

너희를 묻지 않고
우린 이 열 네분의 참혹한 시신을 묻을 수 없다
너희들을 단죄하지 않고
우린 어미 아비를 잃은 이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쳐다볼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아픈 추모시를 쓸 수 없으며
더 이상 이런 뼈아픈 추도사를 읊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 일어서자
더 이상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엄마, 아빠 제발
죽지 말고 일어서자
함께 부둥켜 안고 일어서자 일어서자
죽지말고 우리 함께
일어서자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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