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민주노총이 세 들어 사는 집주인 경향신문은 진보언론의 대명사다. 세련된 맛은 없고 투박하고 어눌하지만 진중한 걸음으로 10년 넘게 가난한 민중의 삶으로 부족한 지면을 채운다. 8년전 넘치는 애정으로 민주노조운동을 독려하며 숱한 기획기사를 썼던 한 노동담당기자는 부쩍 많아진 흰머리를 이고 가끔씩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인사를 나눈다. 국제부의 중견인 그는 엊그제도 ‘리비아 군사개입이 잘못된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경향 24일 30면) 그의 글은 늘 담백하다.

삼성 광고의 단절 등 재정 위기로 모진 아픔을 겪었던 2년전 많은 유능한 기자들이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경향신문은 10년 넘게 아래로 향한 서툰 글쓰기에 여념 없다. 겉만 화려한 진보장사꾼 필진이 없는 것도 매력이다.
 
어렵고 힘든 길은 10년 이상 버티는 경향신문도 불과 15년 전엔 부실덩어리의 재벌 신문이었다. 재벌 회장 손에서 망가진 경향의 실상을 파헤친 국내 최초의 언론소설이란 부제를 단 <재벌신문>은 95년 경향신문에서 퇴사한 윤덕한씨가 썼다. 윤씨는 이 책에서 “일선 기자가 애써 취재해 온 특종을 사장이 엿 바꿔 먹었다”고 했다. 80년 해직자였던 윤씨가 경향 안에서 자주 평지풍파를 일으켰다지만 그의 책은 재벌 소유였던 경향의 20년 전 속살과 많은 부분 일치할 것이다.
 
천주교재단의 소유로 출발해 이승만 정권 말기 폐간의 고통을 참아왔던 저력 있는 경향신문은 60~70년대 박정희의 정수장학회 소유였다가 재벌그룹의 신문으로 숱한 질곡의 세월을 겪었다. 90년대 중후반 재벌신문 경향은 4대 일간지였지만 수 천억원대의 부채를 안은 부실덩어리였다.
 
김대중 정권 초기 재벌의 언론소유를 금지하면서 경향은 그 재벌과 결별했다. 직원들은 퇴직금을 잡혀 제 신문사 주식을 샀고, 통이 컸던 재벌회장은 신문사의 부채를 상당부분 떠안고 가는 슬기로운 이별을 보여줬다.
 
4년 전 22살의 그 재벌 회장님 둘째 아들은 북창동 술집에서 유흥업소 종업원들에게 얻어맞았다. 회장은 직접 나서 조폭을 동원해 보폭폭행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 재벌 회장의 차남이 지난달 27일 새벽 4시쯤 서울 청담동에서 뺑소니를 사고를 내고 도주했다가 경찰에 자수했다.(국민일보 25일 10면) 경향으로선 참 다행한 일이다.

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노동과세계 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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