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 칼럼]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작년 노동절대회사의 첫 구절로 인용한 문장은 노동절의 유래가 됐던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이끌고 헤이마켓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처형된 미국의 노동운동지도자 ‘스파이스’의 최후진술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목을 가려가라! 너희는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동지로서 함께 교수형 당했던 ‘파슨스’도 유명한 최후진술을 남겼다.
“우리의 침묵이 오늘 우리의 목을 조르는 당신들의 명령보다 강해질 날이 올 것이다.”
 
이들의 최후진술은 노동운동가라면 한 번 쯤 접해봤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나키스트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나키즘은 노동운동과 혁명의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해왔지만, 뜯겨진 페이지로 남아있다. 프랑코 군대에게 짓밟혔던 스페인혁명을 이끈 세력도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3월27일 방영된 <KBS스페셜> “몬드라곤의 기적”도 협동조합기업 ‘몬드라곤그룹’을 소개해 감동을 주었지만, 그 기적이 스페인 몬드라곤 지역의 뿌리 깊은 아나키즘 전통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몬드라곤 그룹은 스페인에서 매출 8위, 고용규모 3위를 차지할 만큼 안정적이고 성공한 기업이다. 유럽을 휩쓴 경제위기에서도 거뜬했으며 지난 50년간 단 한 건의 해고도 없었다. 그룹은 집단으로서의 노동자가 소유했으며, 그들 노동자는 종속관계에 속박된 전통적인 임금노동자가 아닌 협동조합원으로서 평등하게 경영에 참가한다. 이윤은 고르게 분배되며 잉여금의 10% 이상을 지역사회를 위해 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임원들도 반드시 노동에 종사해야 하고, 그룹 내의 최고 임금은 최저임금의 4.5배를 넘지 못한다. 이에 비해보면 한국사회의 모습은 참담하다. 최저임금은 고작 월90여만 원 정도지만 탤런트 윤태영의 부친이자 삼성 윤종용부회장의 월급은 21억1천만 원에 이른다. 무려 2천3백배가 넘는 격차다.
 
아나키스트이자 현존하는 최고 석학인 촘스키는 “아나키즘은 (원칙이 아닌)사상과 행동의 역사적 경향이다. 이 경향은 계속해서 개발하고 발전 중인 수많은 길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역사가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라고 할 만큼 아나키즘은 다양한 생각들과 소통해 왔다. 공산주의와 대립했지만 상당부분 닮았고, 기독교사상과도 통섭했다. 몬드라곤의 창시자 호세마리아 신부도 그러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와 아나키즘을 결합한 신채호가 가장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이며, 수많은 한국 독자를 사로잡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도 아나키즘적 취향을 담은 작품이다. 가수 이상은은 13집 은반 기념공연에 “행복한 아나키즘, Let's Groove”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2007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아나키즘 단체인 흑우회(아나키즘은 검은색을 앞세운다)를 항일 독립운동단체로 인정했다.
 
아나키적인 취향은 우리 일상의 도처에 존재하지만, 가장 깊은 오해를 받는 사상이다. 우선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이 낳는 편견이 적지 않다. 아나키즘에 낭만적이고 파격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폭력과 무질서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나키즘은 국가 등 권력과 조직의 억압적 본성에 대해 고뇌하고 중앙집중식 권력을 극복한 자치권력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고정된 원칙이 없는 일종의 사상적 경향이다.
 
레닌주의의 영향이 강한 한국사회의 진보운동은 중앙집권 이상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진보적 요소의 담지자여야 할 진보단체들의 운영방식도 중앙의 권위에 의존한 경직성과 보수성을 띠고 있다. 진보운동은 지금 스스로의 진보와 혁신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 어떤 새로운 것도 늘 오래된 것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진보의 혁신, 그것은 진보가 무관심했던 아나키적인 상상력, 인류의 사상적 유산, 그 잃어버린 역사의 가능성에 대한 재발견일지도 모른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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