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현재는 우크라이나 땅인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핵사고가 일어난다. 체르노빌 사고로 히로시마 원폭의 500배에 달하는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어 인접국으로 확산되었고, 그 결과 최소 20만명이 암을 비롯한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한번쯤 들어보았을 체르노빌 사고의 개요이다. 그럼 체르노빌 사고 이후 우크라이나는 이후 어떤 에너지정책을 취하고 있을까? 이미 알려진 것처럼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핵발전소 폐쇄 정책을 선택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막상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우크라이나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 정책을 고수한다.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4호기 이외에 인접한 1,2,3호기는 이후 모두 가동을 재개한다. 이들 발전소는 4호기와 같은 원자로형이며 이 지역은 엄청난 방사능 오염이 일어났지만, 이미 핵발전 정책에 종속된 우크라이나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기존 에너지정책을 유지한 것이다.
 
심지어 체르노빌 4호기의 폭발사고 이후 1991년에는 체르노빌 2호기에 화재사고가 발생해 더 이상 원자로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는 등 이후에도 체르노빌 발전소로 인한 불안감은 계속 이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폐쇄에 적극적인 것은 인근 서방국가들이다. G7를 중심으로 가동 중인 체르노빌 1, 3호기에 대한 폐쇄 압력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을 택하지 않는다. 1995년 쿠츠마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건설 중이던 다른 핵발전소 2기를 완성시킬 재정을 서방국가들이 지원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영구 폐쇄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결국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가 2억 1,500만달러, EU가 5억8,500만달러를 지원할 것이라는 발표를 받고 난 다음에야 우크라이나는 2000년 마지막 체르노빌 발전소였던 3호기의 가동을 중지한다.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정부의 핵발전 정책 추진은 계속 유지된다. 2006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2030년까지 22기의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1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2배 이상 핵발전소를 증설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운 명목은 ‘에너지 독립’이다.
 
우크라이나는 에너지자급율이 45%에 이르는 나라이다. 석유, 석탄은 물론, 우라늄과 천연가스까지 자국에서 생산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율이 3%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 비해 에너지 자급율이 매우 좋은 나라이다. 더구나 핵발전소 건설과 우라늄 농축을 모두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상황에서 ‘에너지 독립’은 또하나의 모순이다. 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그대로 추진하는 우크라이나를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에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가 사고에도 불구하고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여전히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사고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하는 점이다.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인 탈핵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을 하지 못한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계속되는 불안감에도 핵발전을 껴안고 있다. 한 번의 사고로 정책기조가 바뀌는 일은 보기 드물다. 정책기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요구와 변화를 추진할 원동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체르노빌 사고 이후 우크라이나의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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