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수해복구 “건설자재 지원 절실”
【평양/조선신보】평양신문은 지금도 연일 큰물피해복구상황을 전하고 있다. 성, 중앙기관 일군들과 정무원들, 각 구역 주민들이 모래와 감탕이 쌓인 유원지나 공원에서 일판을 벌리는 장면을 찍은 시진들을 1면에 게재하고 있다.
평양은 8월 11일 낮부터 대동강수위가 높아지고 시안에서 지대가 낮은 보통강구역, 평천구역 등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평양사람들은 이번 큰물을 《1967년 8월의 대홍수》와 대비하군 한다. 40년전에는 수도 전체가 침수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 올해의 집중폭우는 강수량만 보면 당시를 웃돌고있다. 평양에는 1967년 홍수가 일어났을 때보다 52mm 더 많은 비가 내렸다. 침수가 일부구역에 극한될수 있었던것은 1980년대에 건설된 서해갑문과 상류지역에 위치한 갑문들이 큰물의 흐름을 다스렸기때문이다.
내각에 조직된 큰물피해막기대책위원회 중앙상무 조영남책임자는 《기상관측이래 최고의 폭우가 내렸다.》고 말한다. 1990년대 이후 조선은 몇번 큰물피해를 입었고 국제사회에도 그 상황의 일부가 알려졌다. 그런데 전국의 피해상황을 장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중앙행정의 담당자는 올해의 큰물은 과거 10여년간에 겪었던 재해와 차원을 달리하는 《류례없는 타격》이라고 단언한다.
8월 7일부터 14일까지 1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나라의 전반적지역들에서 집중폭우가 내렸다. 서해갑문의 덕을 볼수 있었던 평양과는 달리 지방도시들 가운데는 홍수가 주민들의 살림을 통채로 쓸어버린 곳이 적지 않다. 강원도 이천군인민위원회 신현철위원장은 자기 고장을 삼킨 무시무시한 홍수의 위력에 대하여 《물이 흐르는것이 아니라 서서 내려왔다.》고 증언하였다. 황해북도 곡산군인민위원회 박병호부위원장은 전대미문의 홍수를 설명하는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불보다 물이 훨씬 더 무섭다는것을 눈으로 보았다.》고 말할뿐이였다.
필수물품은 건설자재
지금 평양사람들도 감탕마대를 메고 뛰면서 복구의 구슬땀을 흘리고있지만 큰물피해의 현황이 그들의 생활에 결정적인 지장을 주고있는것은 아니다. 실제로 수도시민들은 자기 집에 있는 식량, 의류 등을 다른 수해지역 주민들에게 보내주고있다. 큰물피해막기대책위원회가 구호물자를 급히 보내주어야 할 대상지역들을 정하고 군중적인 지원을 조직지휘하고있다.
현재 시, 군단위에서 추진되고있는 복구작업은 장기성을 띨것이 예상된다.
수해발생직후 조선적십자회는 긴급구호물자를 전국의 수해지역에 보냈다. 물자의 내역은 부엌세간, 모포, 천막, 물정제약 등이다. 적십자 및 적반월회 국제련맹은 조선에 대한 인도적지원의 확대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있다.
그러나 식량, 의약품이 당면한 생활안정을 위해 필요한것만은 사실이지만 수재민들이 원래의 생활모습을 되찾는데 쓰게 될 필수물자들은 따로 있다. 수해지역의 책임일군들이 일치하게 지적하는것은 《강재》, 《세멘트》, 《연유》 등의 건설자재이다. 일부 지역이 물에 잠긴 수도와 달리 지방도시들에서는 수많은 살림집과 공공건물이 파괴되고 흘러갔다.
전국적범위에서 큰물피해를 입은 조건에서 복구건설의 전망을 세우는 일이 쉽지 않다. 건설자재를 생산하는 공장들과 여기에 전력을 공급하여야 할 발전소들도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발전소들에 석탄을 보내주어야 할 탄광들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김지영, 강이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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