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운/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

“민주노총은 전체 민중을 위한 삶을 사는 이들의 조직, 전체를 위해 투쟁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민주노조를 만들려다 숱한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그 핏값이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 역사의 시작이었구요.”

20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및 6월 총궐기투쟁 결의대회를 사흘 앞두고 <노동과세계>가 김명운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을 만났다. 김명운 의장은 구로동 동일제강에서 동료로 함께 일하다 분신항거한 박영진열사추모사업회에서 25년 간 활동했고,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를 거쳐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서울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김명운 의장에게 진정한 열사정신은 어떤 것인지, 전태일열사를 계승한다는 민주노총이 견지해야 할 열사정신은 뭔지 들어봤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민주노조를 만들려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열사들의 전체를 위한 삶을,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야 할 산자들의 몫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전체를 위한 삶을 살다가 투쟁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열사인 만큼 열사들은 투쟁하는 이들 가슴 속에 늘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전체 민중진영, 투쟁하는 이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있어요.”

김 의장은 올해 범국민추모제 행사를 민중총궐기를 결의하는 자리로 만들자고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에 제안했다. 이에 올해 열린 20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범국민추모제는 6월 총궐기투쟁 결의대회를 겸해 마련됐다. 전체 민중의 하나된 마음과 단결투쟁을 간절히 바라는 그의 염원은 사람들 마음이 모여 가능했고, 이제 더 광범위한 민중의 단결과 투쟁을 필요로 하고 있다.

김명운 의장은 많은 이들이 열사 하면 죽음을 떠올리지만 자신은 새로운 사회를, 해방을, 새로운 인간세상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을 버리고 자신의 소중한 생명까지 내던져 전체 민중의 해방된 삶을 만들려 한 그들이 가던 길을 산자들이 대신 가야 하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해 죽어간 열사들이 원한 것이고, 열사정신이 죽지 않는 이유이며, 우리가 열사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때 추모제 자체를 못하게 탄압하던 시절이 있었다. 도심에서 하지 말고 무덤에서만 하라고도 했다.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이념이나 차이를 떠나 누구나 숙연한 마음과 예절을 갖추는 우리나라 전통적 정서가 있었고 추모제 역사는 이어졌다.

김명운 의장은 노동조합운동이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기주의에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70~80년대 민주노조란 말도 들어도 가슴 떨리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이종대열사 이야기를 꺼냈다.

1989년 기아차에 학생출신 노동자가 위장취업해 민주노조를 만들려다가 해고위기에 놓이자 이종대열사는 ‘민주노조를 만들 희망이 사라지는구나’ 하는 절박함으로 그들을 변호하다 결국 분신한다. 결국 그 죽음이 노동자들을 지켜냈고 민주노조를 만들 조건을 만들어낸다.

“박영진도 마찬가지구요. 당시 그들은 목숨보다 민주노조를 더 귀중하게 여겼어요. 민주노조를 만들면 이 징그러운 노동을 바꿔내고 해방터를 만들 수 있겠구나, 인간해방이 시작되겠구나 그랬던 거죠.” 민주노조를 갖기 위해 투쟁하다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전체를 위해 살다 간 그들의 삶을 가슴에 새겨 복원해내라는 것, 김 의장이 민주노총에 던지는 메시지다.

“전태일은 조직이 없었죠. 그는 스스로 300만 근로자의 대표라고 말했어요. 그가 조직적 영웅심에서 그랬겠습니까? 300만 근로자의 요구를 대변해야 한다고 자각해 해방세상을 목표로 그렇게 한 겁니다.”

김 의장은 전태일이 원한 전체를 위한 삶, 전체를 위한 조직은 바로 해방터였다고, 민주노조가 그 죽음과 피와 희생 속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 기대를 기준으로 해서 현재 민주노총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같이 가고 있는지 보이지 않겠습니까?”

민주노총 간부들과 정파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김명운 의장은 민주노총은 간부들만의 조직도, 한 정파조직도 아니라고 말한다. “저는 그 이전에 노동조합운동과 투쟁을 통해 전체를 위한 삶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결단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조합원을 만들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봐요.”

우리는 “투쟁을 통해서”란 말을 자주 한다. 싸우고 싶어 싸우는 노동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투쟁을 강요한다. 싸우지 않으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바로 한국사회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현실이다. “전태일이 말했듯이 구조조정 당하면 사회에 끼지 못하는 부스러기가 돼 버립니다.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투쟁에 나서면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단결을 강요합니다.”

김명운 의장은 노동자들에게 단결은 품성이며 그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말한다. 또 그것을 가슴에 받아들여 새로운 노동자의 본능으로 살다가 투쟁 속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열사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 민주노총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중심의 노조입니다. 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삶을 책임지지 않고 노동귀족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면 조직은 껍데기가 될 수밖에 없어요. 노동시간을 줄이고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지 고민하고 투쟁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김명운 의장은 전태일의 삶과 투쟁을 빗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향해 전체를 위한 삶과 노동을 주문한다. “전태일은 청계에서 쫓겨나 오늘 하루는 생활을 구하고 내일 하루는 세상을 바꾸는 고민을 하겠다고 했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21살짜리 노동자가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 노예 같은 삶은 살아선 안 된다고 자각했던 거에요.”

노동자들이 왜 단결하지 못하고 투쟁하지 않을까? 김 의장은 착취당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신의 존재와 삶을 증오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자신의 현재 삶을 증오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노동운동을 하고 세상을 바꾸겠습니까?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는 대안을 만들지 못해요. 투쟁과정에서 이 사회 모순과 본질을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지 않는 노동자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지 못합니다. 노동계급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상은 암울합니다.”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을 보아온 추모연대 의장이 민주노총을 향해, 투쟁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을 향해 던지는 이 질책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그는 열사정신을 계승하는 추모사업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추모제, 추모사업은 단순히 그 죽음을 기억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됩니다. 그분들 삶을 산자들이 복원해내야 하는 거죠.” 열사정신의 핵심은 주인정신이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돼서 이기적 삶이 아닌 사회적 삶으로 바꿔나가고, 투쟁이 끝나면 더 열심히 활동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열사정신이라고 했다.

“민중의 역사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적대사회에서 사람을 해방시키는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합니다. 목숨을 던져 만들어온 역사, 그 흐름에 몸을 담그면 행복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집단이 이 사회 주인이 될 겁니다.”

김명운 의장은 추모제가 바로 그 역사를 확인하는 자리라고 규정했다. 우리 투쟁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체 속에서 확인하고 돌아보는, 1년에 한 번 우리가 해방의 길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거와 미래와의 대화의 시간, 결국 세상을 해방시키는 그런 자리라고 말한다.

김 의장은 추모제가 너무 많고,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를 강요해서 더 중요한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노동과세계> 인터뷰를 빌어 모든 조직과 개인에게 당부했다.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 속에 열사들의 해방정신을 담는다면 일상에서 열사추모사업을 할 수 있고 그 사업이 오히려 더 풍부해질 겁니다. 열사정신을 제대로 이해하면 삶으로 미래로 희망으로 또 내용의 풍부함으로 인간의 진정한 인간다움과 자질을 키워낼 수 있어요. 열사와 함께 역사의 해방을 맞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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