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소금꽃 찾아 평택→부산 희망의 폭풍질주 1일 동행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지난 1일 오전 평택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총 400km, 1천리가 넘는 길이다. 지난 2009년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며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77일 점거파업을 전개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이룬 8.6 노사대타협. 그러나 전 사회적 관심 속에 이뤄진 이 약속은 단 한 가지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동안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부산까지 가는 대장정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처절한 투쟁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정리해고 철폐투쟁에 연대하는 것을 넘어 한국사회 민주노조운동을 노동자들 힘과 연대로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노동과세계>가 쌍용차지부 조합원들, 그리고 소금꽃 찾아가는 천리길 장정에 함께 하는 이들의 하루 일정을 동행했다. 행진단은 7일 하루 동안 15시간 넘게 54km를 걸었다. <기자의말>

▲ 평택을 떠나 7일째 부산에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소금꽃 찾아 천리길'도보순례를 떠난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7일 오전 경북 경산시 남천면에 위치한 한 휴게소로 손을 흔들며 들어오고 있다.이명익기자

쌍용차지부가 평택공장에서 부산 한진중공업까지 가는 아흐레 동안의 여정 중 일곱째날인 7일 오전 11시 경 <노동과세계>가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경산역에 내려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경산시지부 이재욱 사무국장 차를 타고 시 외곽도로를 달렸다. 불과 몇 분을 갔을까. 저 앞에 빗속을 걸어가는 30여 명의 행렬이 보인다. 마침 휴식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공사 중인 국도 휴게소에 먼저 내려 조합원들을 기다렸다.

반가운 얼굴들. 우비 위에 “소금꽃 찾아 천리길”,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2차 희망버스”라고 적힌 몸자보를 두르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자를 쓴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웃는 얼굴로 먼저 손을 내민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잘 오셨습니다!”, “왔으니 끝까지 같이 가야지!”

이들은 어젯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에서 취침하고 오늘 새벽 5시30분 출발해 6시간 째 걷는 중이다. 경북지역본부 김용식 사무처장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경산시 남천면 28번 산업국도 중간쯤이란다. 그런데 휴식장소라고 찾아 들어온 이곳은 비를 피할 만한 데가 없다. 휴게소라지만 공사 중이라 건물 앞 지붕도 휭 뚫렸다.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서맹섭 지회장이 어젯밤 대구에 도착해 오늘부터 일정에 결합했다. “우리가 한진으로 달려가는 이유요? 쌍용차도 그런 아픔을 겪었잖아요? 쌍용자동차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안되죠. 우리가 갈 때까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 동지들이 꿋꿋이 버텨줬으면 좋겠습니다. 평택에서도 희망버스 3대가 갈 겁니다.”

20여 분을 쉬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6시간 째 걷고 있는 이들은 걷는다기보다 차라리 뛴다는 느낌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전진한다. 보폭을 크게 해서 성큼성큼 빨리 걸어야 속도를 맞출 수 있다. 그래, 맞다. 이 사람들 출발에 앞서 발표한 보도자료 제목이 ‘희망의 폭풍질주’다. 쌍용에서 한진까지 말로만 아닌 진짜 폭풍질주를 하고 있다.

두 줄로 걷다가 얼핏 곁눈질해 보니 우비에서 떨어지는 비 때문에 안경이 흐릿한데도 옆에 선 사람이 눈에 익다. 아, 쌍용차지부 77일 점거파업 때 지부 조직실장을 맡아 조합원들 투쟁을 선봉에서 이끈 김득중 동지. 그는 지난달 22일 쌍용차지부 황인석 지부장이 사퇴한 후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때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8.6노사대타협 당시 구속돼 꼬박 1년을 감옥에서 살다 2010년 8월9일 출소한 그가 다시 투쟁을 이끌고 있다.

김득중 비대위원장은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 서울이나 평택을 오가며 조직을 추스르면서도 최대한 도보일정에 함께 하고 있다. 쌍용차지부 8명 비대위원들은 이번 2차 희망의버스 일정을 마친 후 7월 중순 4기 지도부 선거에 돌입한다.

“오랜 기간 어렵고 힘든 투쟁을 이어왔고, 모두의 문제이기도 한 생계와 가족 문제 때문에 갈수록 힘들죠.” 쌍용차 노동자들이 살인적 정리해고에 맞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투쟁에 연대하는 것, 이렇게 힘든 도보행진을 통해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사실 우리 모두 2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가려고 했어요. 쌍용차지부는 매주 월요일 회의를 하는데 지난주 월요일 그러니까 6월27일 한진중공업지회가 사측과 말도 안되는 합의를 했잖아요. 쌍용차도 고립이 뭔지 절실히 경험했어요. 우리는 숫자가 많아도 너무 힘들었는데 한진은 몇 안되는 분들이 크레인 위에서 얼마나 고립감이 심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동지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긴급하게 논의해 이 도보행진을 결정하게 된 겁니다.”

▲ 400Km 넘는 천리길의 강행군이기에 쉬는 시간마다 젖은 양말을 짜내고 물집 잡힌 발을 치료하는라 도보순례단은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이명익기자
빗속을 뚫고 걷는 길이라 체력소모가 크다. 인도가 따로 없는 편도 1차선 국도를 주로 다니기 때문에 뒤에서 질주해오는 차량을 조심해야 한다. 이창근 기획실장이 형광신호등을 들고 대오 앞뒤를 뛰어다니며 차량이 천천히 오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연신 촬영도 하다가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도 한다. 아~ 그가 실시간 트위터 방송을 하고 있다.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누가 함께 걷는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기록해 알리는 것이다.

“이창근 실장이 저렇게 하는 게요, 오전이란 오후랑 목소리가 달라요. 오후에는 지치니까 목소리도 달라져요.” 이창근 실장을 지긋이 바라보던 김득중 비대위원장의 귀뜸이다.

40분을 걸어 다시 휴식시간. 먼저 간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고가차도 밑 비를 피할 장소를 찾아 깔개를 깔아놨다. 지친 조합원들이 비틀비틀 걸어가 누워버린다. 소모된 체력을 보충할 간식거리를 나누고 한쪽에서는 서로에게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준다.

앳된 소녀 같은 한 여성에게 말을 걸어봤다. “어느 단위에서 오셨어요?” “아, 저요, 저는 사회진보연대 회원이에요.” 조연민 사회진보연대 회원(23세)은 자신을 대학교 5학년 생이라고 소개했다. 07학번이고 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지만 학부 총학생회 일을 돕고 있어 아직도 후배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한다.

“2차 희망버스를 타려고 했었는데 이창근 실장님 트위터를 계속 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오늘부터 같이 걷고 있어요.”

“발 많이 아프죠? 물집 안 생겼어요?”, “아, 저는 사실 어젯밤에 대구에 도착해서 오늘부터 걷는데 걷기시작하자마자 물집이 생겼어요.” 민망해하는 착한 얼굴. 이미 젖어버린 운동화를 물집 잡힌 발로 신고 걷자니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들까. “7일째 걷는 분들도 계시는데...” 아픈 내색을 차마 못한다.

행진단 저마다 물집 잡한 발들에는 실이 매져 있다. 근육이 땡땡 뭉쳐버린 다리와 허벅지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근육을 풀어주는 약을 바르고, 마사지를 하고, 압박붕대를 동여매고... 다시 출발을 준비한다.

휴식 후 이창근 실장이 출발에 앞서 전할 말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3km 정도는 아주 위험한 구간입니다. 1차선 도로이고 구부러진 길이 많아 차가 천천히 가는 것도 위험해요. 빨리 가야 하니까 힘드신 분들 차에 타세요.”

▲ 2차 희망의 버스가 올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어서 도보순례단에 함께 하게 되었다는 23살의 조연민 사회진보연대 회원. 걷기 시작 하자마자 물집이 잡혔다면서도 아픈 내색 하나없이 잘 걷고 있다.이명익기자
“네!” 대답하고 출발하는데 차에 타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7일째 걷고 있는 사람은 부산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일념으로, 또 일부 일정에 결합한 사람은 이거라도 걸어야지 하는 마음에 그냥 내처 걷는다.

칼라TV 활동가 2명이 지난 4일부터 일정에 결합해 도보순례를 촬영해 UCC에 올리고 있다. 행진단이 걷고 쉬고 먹고 이야기하는 모든 모습을 이들은 사방에서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대오가 걸을 때 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대오가 쉴 때는 쉬는 모습을 찍는다.

행진단 마지막 성원들이 남성현 고개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갑자기 이창근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119 불러! 119 불러!” 이재욱 민주노총 경북본부 경산시지부 사무국장이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넘어졌는데 다리가 부러졌단다. 쓰러진 그는 왼쪽 다리를 부여잡고 어쩔줄을 모른다. 구급차가 도착해 부목을 대고 응급처치를 한 후 삼성 경산병원으로 실려갔다.

"빨리 나으세요!", "힘내세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제서야 행진단이 점심식사를 시작한다. 경산지역 대표적 투쟁사업장인 삼성 경산병원(구 경상병원) 해고 조합원들이 주먹밥과 김치를 마련해 보내줬다. 거기에 푸짐한 닭튀김까지. 경산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커다란 수박을 3통 사왔다. 이슬비를 맞으며 고개 정상에서 먹는 밥. 뜨거운 동지애와 정성이 가득 담긴 밥을 옹기종기 앉아 맛있게 먹는다.

박하순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소장. 그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민주노총에서 정책부장과 대협국장을 지냈다. 박 소장은 6일부터 이틀째 행진하고 있다. “2차 희망버스가 성공적으로 성사되게 하는데 일조한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행진이죠. 김진숙 동지의 처절한 투쟁과 한진의 안타까운 사정을 봐서도 꼭 승리해야 할 투쟁이지만 이 투쟁은 비단 김진숙 동지와 한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노조운동이 패배와 후퇴를 거듭하고, 자신감을 상실해 조직력까지 취약해진 지금 상황을 극복하고, 민주노조운동을 소생시키기 위한 차원이기도 합니다.”

박하순 소장은 사회운동단체 성원으로서 민주노조운동 발전에 복무하기 위해 이번 대장정에 참여하게 됐다고 전했다. “쌍용차와 발레오공조코리아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너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한진의 어려움을 알리고 연대하는 것은 정말 큰 모범입니다. 저도 쌍용차 조합원들의 연대와 모범을 따라 같이 하고 싶어요.”

자신은 별로 말이 없는데 누가 우스갯소리를 할 때마다 너그러운 얼굴로 빙그레 웃어주는 정감이 가는 한 여성동지가 있다. 박문진 영남대의료원지부 조합원이다. 영남대의료원지부는 병원 측의 노조말살로 인해 950명이던 조합원을 모두 잃고 80명이 남았다. 민주노조를 살려내려는 남은 조합원들의 투쟁은 너무나 완강하다. 벌써 수년 째 그들은 재단의 실질적 우두머리인 박근혜를 상대로 국회 상경투쟁과 지역 내 의원 사무실 앞 시위 등을 벌여오고 있다.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은 “박근혜의 복지는 영남대의료원 노조간부 복직으로 시작해야 한다”며 해고자 복직투쟁 중이다.

“10명이 해고됐고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해 7명은 복직을 했어요. 남은 3명도 복직해야죠. 내년이 되면 박근혜가 전국을 돌텐데 우리는 박근혜 집 앞까지도 갈겁니다. 물론 서울 국회상경투쟁도 함께 할 거구요. 박근혜 그림자투쟁을 본격화할 계획이에요.”

점심식사를 마친 행진단이 모여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발목을 돌리고 무릎과 어깨도 풀어준다. 다리를 풀어주기 위해 시키는대로 하다 보니 어느새 모두가 닭싸움 포즈를 하고 있다. “와~~~” 하며 서로에게 몰려든다. 깔깔깔~~

이곳이 고개 정상이니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이명위 부산철도지방본부 부산차량지부장과 함께 걸으며 김진숙 지도위원과의 오래된 인연에 대해 들었다. “87년 대투쟁 이후 부산에 결성된 부산노동자연합이 전노협 부산노련과 사무실을 같이 썼어요. 그때 김진숙 동지가 부산노동자연합에 있었죠.”

▲ 도보순례단을 돕기 위해 나선 이재욱 민주노총 경북본부 경산시지부 사무국장이 점심을 가지고 휴게소로 들어와 준비하던 중 미끄러운 매트 위에서 넘어지며 발목 쪽을 크게 다쳐 119 구급대에 실려가고 있다.이명익기자
김진숙 지도위원과 20여 년 넘게 오랜 지인이기도 한 그는 당시 부산노동자연합에서 펴내던 주간 소식지를 50여 권 모아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거기 보면 김진숙 지도위원이 진짜 젋었을 적 모습들이 생생히 담겨 있어요. 그걸 보면 진짜...” 김진숙 지도위원의 젊었을 적 모습과 지금 85호 크레인에 올라 처절하게 투쟁하는 모습이 교차하는 듯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 부산차량지부장은 나중에 그 주간소식지를 ‘노동자역사 한내’에 기증할 계획이다.

부산 철도노동자인 그는 지난 2009년 멀리서 쌍용차 투쟁을 안타깝게 지켜봤고, 이제 자신의 지역인 부산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선 싸움에 늘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은 공장 앞에 경찰이랑 용역이 너무 많아요. 경찰버스로 담을 빙 둘러 막았구요. 2차 희망버스가 온다고 하니까 요즘에는 새벽에도 순찰을 돌아요. 85호 크레인에서 바라다보이는 신도브레뉴 아파트 앞에 저녁마다 동지들이 모이는데 주민들이 나와서 항의하고 그러면 야속하죠.”

이명위 지부장은 한진중공업지회가 조합원들이 투쟁하는 이유인 정리해고 관련해 어떤 진전도 없이 합의해 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진은 요즘 아주 많이 긴장해 있는 것 같아요. 조업을 재개한다는 둥 언론플레이도 해요. 정리해고를 철회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받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건강하게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최근 이어지고 있는 KTX 열차 사고에 대해서도 그는 언급했다. 이명위 지부장은 외주화와 인력감원이 열차 사고 원인이라고 했다. 허준영 사장이 들어와서 5115명 인원을 감축했고 2000여 명을 더 줄이려고 한다고 했다. 1년에 정년퇴직하는 인원이 750여 명 되는데 그때마다 충원도 안한다. 지난해 인턴 500명을 고용해 5개월 단기계약으로 쓰고 100명만 채용하더니 올해도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다.

“신규사업을 자꾸 늘리면서 신규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외주화를 해요. 철도공사에서 작업하는 것과 외주업체가 작업하는 것이 서로 소통이 잘 안되니 당연히 사고가 빈발하죠. 심지어 열차를 덜 고친 채 그냥 나가기도 해요. 사고가 안나겠습니까? 제가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를 검수하는데 기존 검수제도를 없애고 반복검수와 기본검수란 걸 도입해 검수항목을 대폭 줄였어요. 화물차 사고는 더 많아요. 뉴스에 안 나서 사람들이 모르는 거지...”

▲ 점심식사를 마친 후 오후 휴식에 들어간 도보순례단원들이 다리 밑에 자리를 마련하고 낮잠에 들었다.이명익기자
40여 분을 걷고 취침시간이 주어졌다. 오늘 하루 54km를 걸어야 하는데 오전 시간 강행군으로 이미 30km를 왔으니 넉넉히 쉬고 가잔다. 공사 중인 차도 밑 깔개에 앉거나 누워 지친 몸을 이완시켜본다. 벌써부터 코를 고는 사람도 있고, 맨소래담과 스프레이파스로 다리와 발의 고통을 잠시 잊어보려는 사람도 있다. 소형 컴퓨터와 스마트폰를 켜 올라온 소식을 보거나 트위터로 행진단 모습을 전송하기도 한다.

사회진보연대 회원이라던 조연민 씨. 검은색 긴 천을 발에 칭칭 동여매고 있다. “이게 뭐에요? 압박붕대는 아닌 것 같은데.”, “아~ 제가 권투를 하는데요,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는데 이렇게 쓰네요.” 물집 잡힌 발로 젖은 운동화를 신고 걷기가 얼마나 곤욕스러웠을까. 복싱용 붕대를 발에 감더니 그 위에 스타킹을 신더니 활짝 웃어 보인다.

1시간 쉬고 다시 출발. 오전에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오후 들어서는 다행히 비가 그쳤다. 게다가 바람도 꽤 불어서 오늘은 걷기에 좋은 날씨다. 간혹 차량들이 오가는 국도 변에는 삼신1리 주민들이 가꾸는 작물들이 민가들 앞에서 자란다. 콩, 깨, 옥수수 등 농부들의 소박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작물들이 쑥쑥 커가는 모습이 눈이 들어온다. 얼마 전 몰아닥친 태풍에도 불구하고 부쩍 큰 벼들이 꿋꿋이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다.

씩씩한 발걸음이 유난히 돋보이는 한 여성 옆에 섰다. 진보신당 당원이고 인테리어회사에서 경리회계일을 보고 있다는 박희경 씨(44세). 그는 하루 월차휴가를 내고 새벽차를 타고 내려와 경산병원에서부터 행진단에 결합했다.

기륭, 동희오토, 현대차 비정규직, 발레오공조코리아 등 투쟁사업장마다 찾아다니며 연대한다는 그는 이미 경향신문과 레디앙에서 인터뷰도 한 유명인사다. “제 한 걸음 한 걸음에 모든 투쟁사업장 동지들의 승리의 염원을 담아 걷고 있어요.”

경찰차가 지나가자 행진단은 환호하며 손을 흔들어준다. 지나는 차량에서 손을 밖으로 내밀어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이창근 실장이 짓궃은 주문을 한다. “루시아 동지가 노래 한 곡 해주면 힘이 날 것 같네요.” 그런데 웬걸 진짜 한다. “아이스크림 주세요, 사랑을 전해주는, 두 개만 주세요~” 웃음이 그치질 않고 옆의 동지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걷다보면 발과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다. 깔깔깔.

오후 5시 경 음식점 앞에 소를 실제크기로 만들어 세워둔 모습들이 눈에 띄는 걸 보니 청도에 도착했나 싶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이창근 실장에게 많이 힘드냐고 물었다. “밤마다 숙소에 한의사분들이 오셔서 침도 놔주고 안마도 해주고 그래요. 안 그랬으면 아마 더 힘들었을 건데 밤에 풀어주니까 훨씬 낫죠. 하루 일정이 끝나갈 무렵이 가장 힘든데 그럴 때 ‘와~ 침 맞으러 가자~’ 하며 달려가곤 해요.” 길벗 한의사들을 비롯해 대구한의대 학생들, 강종완 한의사와 그 제자들이 매일같이 차례로 찾아와 부산을 향해 걷는 도보행진단의 지친 몸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쌍용차 해고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일 게다.

그러고 보니 쌍용차지부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행진단 모든 이들이 발목까지 오는 여성용 스타킹을 신고 있다. “아, 이게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요. 이걸 신으니까 물집이 잘 안 생겨요.” “군대갔다온 사람은 다 알아요. 특히 행군 많이 하는 군대에서는 노하우 중 하나에요.”

쌍용차지부와 연대하러 온 성원들 사이에서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앞에서 유성기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충남 아산 유성기업까지 꼬박 이틀을 걸었다. 그리고 지난 5일 경북 구미에 있는 KEC지회 사무실로 가서 6일부터 행진단과 함께 걷는 중이다. 운동화를 벗고 양말과 스티킹을 벗어 자신 앞에 가지런히 말리면서 이갑용 위원장은 차분히 이야기한다.

“우리가 비정규직 철폐라고 하지요. 정리해고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요구는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라 철폐여야 해요. 민주노총도 법을 바꾸자고 할 게 아니라 그 법이 잘못이니 없애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최저임금위원회도 그렇잖아요.”

▲ 오후 낮잠시간. 곤히 잠든 쌍용자동차 조합원의 발 곳곳에 그 간의 강행군으로 잡힌 물집을 치료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명익기자
▲ 국도를 이용하는 도보순례이다 보니 정해진 휴식시간이 되면 도로옆에서 라도 휴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순례를 지휘하고 있는 쌍용자동차지회 이창근 기획실장이 도로 가드레일에 발을 얹고 쉬고 있다. 이명익기자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이 6일 행진단에게 점심을 샀는데 이갑용 위원장은 목에 잘 안 넘어가더라고 했다.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누가 만들었습니까? 김대중·노무현정권 때 그 사람이 장관하면서 다 같이 한 일이죠. 노무현 때 비정규직 만들었고.”

그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야당과의 관계를 달리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85호 크레인에서 김주익이 죽었고 김진숙이 올라갔어요. 민주노총이 야당과 공조할 순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법을 잘못 만들었다고 시인하고, 잘못 만든 법이니 바꿔야 한다고 말해야 한나라당에게도 더 압박이 되죠. 민주노총이 명확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노총의 요구가 뭔지 세상에 보여주고 말해야 돼요. 공조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거에요.”

오후 6시 반 경 또다시 출발. 아까부터 낯선 얼굴들이 몇 보인다. 그 중 앳돼 보이는 한 여성이 마침 옆에서 걷는다. 박경미 씨(27살)는 부산 ‘열린공방’에서 왔다. 부울경열사회, 현대차지부 대의원과 함께 오늘 오후 2시부터 결합했다. 부산과 울산에 있는 열린공방은 그림 그리는 사람, 천연염색가 등 작업을 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부산 열린공방의 방장이기도 한 박경미 씨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한 학기를 마친 후 전북 무주에 있는 푸른꿈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대안학교 교사들로부터 사회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제가 부산에 살기도 하지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서 왔어요. 어제 부울경열사회에서 같이 가지 않겠냐고 연락이 와서 얼른 가겠다고 했죠. 어렵게 투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 가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어요.” 박경미 씨는 해군기지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 사나흘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달려오는 길이다.

오후 9시가 다 돼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54km나 되는 강행군을 한 데다 비를 맞아 성동역 근처에 있는 모델을 숙소로 정했다. 먼저 숙소에 들어가 차례로 씻고 침을 맞은 다음 밤 10시 경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행진단은 새벽 5시30분 출발한 이레째 일정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과 남정수 지원팀장, 김상구·원상현·오광수·이철희·남상수 조합원, 염동희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수석부지회장 등 8명은 지난 1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부터 전 일정을 걸어가고 있다. 또 그들에게 연대하고자 하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쪼개 며칠, 하루나 이틀, 아니면 단 몇 시간이라도 함께 하려고 행진단을 찾아온다. 그리고 만난 곳에서부터 함께 걷기 시작한다.

적게는 20여 명, 많게는 40여 명, 하루 평균 30여 명이 행진단을 이루며 걷고 있으니 7일까지만 해도 연 인원 300여 명이 함께 걸었다. 각 지역을 다닐 때마다 그 지역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시지부, 산별연맹의 지역 간부와 조합원들, 진보정당 지역 당원들, 그리고 지역 시민들이 같이 걷거나 간식거리를 보내준다.

첫날은 소정리역 앞에서, 둘째날은 현도면사무소 앞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을 했다. 셋째날과 넷째날은 비가 와서 모텔에서 잤고, 다섯째날에는 KEC지회 사무실, 여섯째날은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에 지친 몸을 뉘었다. 둘째날과 셋째날, 다섯째날에는 정말로 비가 많이 왔다.

<노동과세계>는 아흐레 일정 중 불과 10여 시간을 행진단과 함께 걸었지만 그 시간 동안 소금꽃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도 만났다. 서로에게 힘을 보태주려는 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착하고 정직하다.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동지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다. 휴식시간이면 베개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머리 밑에 놓아주고, 먹을거리 하나라도 옆 사람을 먼저 먹이려 하고, 먼저 가서 깔개를 깔아 뒤쳐진 사람이 쉬게 한다. 그렇게 7일을 걸어왔고 남은 이틀도 그렇게 걸을 것이다.

이창근 실장은 평택을 떠나 부산까지 전국 지역을 걸으며 밤잠 안자고 써서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말로 전해도 위로가 안 될 것 같아서, 몸으로 정직하게 하루하루 걷는다... 함께 살자, 함께 웃자, 그리고 함께 걷자.” 부산 입성을 하루 앞둔 8일,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과 연대성원들은 또다시 애초 일정을 늘려 50km를 걷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이 땅의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의 정리해고 분쇄투쟁을 함께 하러 간다.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아름답게 간다. 깔깔깔.

▲ 쌍용자동차 조합원들과 함께 일반 시민들도 '소금꽃 찾아 천리길'도보순례에 나섰다. 도보순례단은 9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85호 크레인이 있는 부산 영도 조선소에 도착한다.이명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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