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경험노동자 2백 명 김진숙에게 공개편지

80년 전 평양 고무공장 여성노동자가 임금을 깎지 말라고 외치며 을밀대 지붕 위에 올랐다. 그리고 아직도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송전탑, 건물옥상, 크레인에 오르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오른 지 2백 4일째. 누구보다 ‘고공농성’의 고통과 심정을 잘 아는 고공농성 경험자들이 28일 김 지도위원에게 공개편지를 띄웠다.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던 이갑용 민주노총 전 위원장부터 현대하이스코, 코오롱, 한국지엠, 코스콤, 기륭전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콜텍 등 35곳 노동자 2백 여 명은 이날 “살기 위해 하늘로 올랐던 우리가 김진숙을 응원한다”며 “반드시 살아 내려와 함께 싸우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들은 이날 공개편지를 통해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살아 내려온 우리는 당신이 살아 내려와 하늘에서 뿌린 희망의 씨앗을 함께 수확하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김 지도위원에게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30일 출발하는 3차 희망버스에 전국의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 힘을 보탤 것을 호소했다.

   
▲ 이인근 콜텍지회장은 "김진숙을 살려낼 수 있도록 우리가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주
이날 공개편지를 발표하는 자리에는 과거 고공농성을 펼친 경험이 있던 당사자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수십 년 전에도 당했고 독재시대에도 당했던 우리가 똑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며 “전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해 김진숙을 찾아가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전 위원장은 “자본과 정권이 두려워할 무기는 바로 노동자의 단결이고 흩어진 노동자들을 모아내는 구심역할을 민주노총이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청 앞 조명탑과 기륭전자 구로공장 경비실 옥상에 두 번이나 올라야 했던 유흥희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은 “투쟁 천 일을 앞두고 고공농성을 할 때 나와 같이 올라갔던 조합원은 고소공포증이 심했다”면서도 “올라가는 내내 울면서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불렀고 우리는 그 심정으로 하늘로 올랐다”며 눈물까지 보였다. 유 조합원은 “당시 언론에서 많이 취재를 하러 왔지만 목숨을 걸어야만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관심 가져주는 사회의 모습에 오히려 너무 슬펐다”고 덧붙였다.

세아베스틸의 이재현 노동자는 고공농성 당시를 회상하며 “1백 32일을 공장 굴뚝에 있으면서 매일 아침 땅을 보면서 동지들이 있는지 확인했다”며 “동지들이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며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공개편지 발표자리에 참석한 이들 모두 고공농성자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는 땅에서의 연대와 더 힘찬 투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7년 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최일배 코오롱노동조합 위원장은 “고공농성자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며 ”김진숙 개인의 영웅적인 투쟁을 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정리해고를 철회하기 위한 전면전을 펼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2008년 양화대교 남단 송전탑에 올랐던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김진숙 동지가 건강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며 “반드시 우리가 김진숙을 살려내고 두 발로 내려올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이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띄운 공개편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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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른 사람들 200명이 김진숙에게 보내는 편지

하늘에서 희망을 일군 당신은

살아서 내려와야 합니다

85호 크레인의 김진숙님!
당신이 하늘에 오른 지 7개월, 204일이 되는 날, 당신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1월 6월 새벽, 혹한의 추위와 새벽 칼바람을 뚫고, 김주익이 올랐던 그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오르면서 결심했던 당신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다른 길이 있다면 이곳을 외면하고 싶었던 흔들리는 마음을 누르면서 한계단 한계단을 올라 그 높은 곳까지 다다른 당신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김진숙님!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과 추위가 3월의 봄날까지 85호 크레인을 휘몰아쳤던 날들,
잠시나마 느꼈던 따스한 햇살이 폭염과 뙤약볕으로 변해 화염으로 달궈진 쇳덩어리들 속에 갇힌 날들을,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바다를 넘어온 폭풍우와 태풍이 당신의 작은 몸을 휘어 감았던 날들을 떠올립니다.

   
▲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있다 .강정주
그러나 회사가 고용한 젊은 깡패들에 맞아 쓰러지는 조합원들의 핏자국과,
해고는 살인이라며, 남편을 살려달라며 싸우는 아내들을 끌고가는 경찰들의 방패와,
노동조합 집행부가 정리해고를 인정하고 사측과 악수를 나누던 장면과,
절망에 패배감에 휩싸인 형님, 동료, 아우들이 하나 둘 크레인을 떠나가던 뒷모습이
그 어떤 자연이 주는 고통보다 당신의 가슴을 짓이겨놓았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김진숙님,
우리는 절망의 동토에서 희망의 꽃씨가 피어나는 기적을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85호 크레인에서 당신이 보낸 사람의 향기가 자본의 썩은 비린내를 이겨내고 번져나갔고,
하늘에서 당신이 흩날린 희망의 씨앗이 자본이 쳐놓은 탐욕의 철조망을 넘어 날아갔으며,
35m 그곳에서 함께 살자는 당신의 외침이 자본이 쏟아놓은 굉음을 뚫고 퍼졌나갔습니다.
당신이 보낸 향기와 씨앗과 외침이 희망의 민들레 홀씨가 되었고, 희망의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희망의 꽃들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당신에게 달려갔고, 그 희망의 버스는 다시 퍼져나갔습니다.
희망의 버스는 자본의 탐욕에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 세웠고, 잃어버린 꿈을 찾게 했습니다.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노동의 새벽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다시 밝아오고 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김진숙님,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연약한 작은 몽뚱아리 하나가 하늘에 매달려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들이 200일이 아니라 1분 1초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육체의 고통을 이겨낸다고 하더라도 그 높은 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닥쳐오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힘들다는 것을. 하나 둘 떠나가는 늙은 노동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숨 쉬는 순간마다 엄습해오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가 힘들다는 것을.

사랑하는 김진숙님,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0년 울산의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에서부터
지난 봄 거제 대우조선 15만4천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까지
우리는 하늘을 향해 올랐습니다.
80년 전인 1931년 5월 평원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이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 임금 삭감에 맞서 첫 고공농성을 벌인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살기 위해 하늘로 올랐습니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생명에 대한 살육이 없는 세상을 위해
굴뚝과 크레인으로 철탑으로 올라갔고,
지붕위로, 밧줄을 묶고, 망루에 매달려 싸웠습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내려왔고, 때로는 진압되어 끌어내려졌으며, 때로는 승리의 소식을 안고 걸어왔습니다.

85호 크레인의 김진숙님,
헬리콥터에서 쏟아지는 최루탄 폭우를 온 몸으로 맞으며 86일을 버틴 굴뚝에서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에 의해 수십 리 밖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130m 크레인에서
포클레인 삽질로 강과 사람을 죽이는 살육의 시간들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고공에서
15만 4천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곳, 지켜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88일 송전탑에서
잘못하면 발을 잘라야 한다는 경고를 듣고도, 동상에 걸린 발을 감싸며 영하 40도의 밤을 지낸 아치위에서
예수의 40일 금식 두 배가 넘는 94일을 물과 소금만으로 견디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공장 옥상에서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살아 내려온 우리가 당신에게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김진숙님, 당신은 반드시 살아서 내려와 하늘에서 뿌린 희망의 씨앗을 함께 수확해야 합니다.
탐욕과 어두움을 불사르고, 나눔의 새벽을 깨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김진숙님,
당신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가겠습니다.
희망버스를 타고 저희가 달려가겠습니다.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워 희망의 행진을 만들어내겠습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나라, 사람사는 세상, 인간의 향기가 가득한 사회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2011년 7월 28일 하늘에 오른 200명의 노동자들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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