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구지역지부 경상병원분회장 신은정

430일 넘었다. 내가 다니던 병원이 파산하고 투쟁을 시작한 지 두 번째 맞이하는 여름이다.

살을 파고드는 따가운 햇살도, 가로수에서 울려오는 시끄러운 매미소리도, 끓어오르는 아스파트 열기도 작년 여름 그대로이지만, 파산으로 영업을 중단해 텅 비었던 병원건물만은 새로 단장한 뒤 환자가 드나드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병원 정문 앞 컨테이너 농성장에서 병원을 쳐다볼 때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민다. 저것은 병원이 맞는가.
 
파산사업장은 인수자가 나서도 고용승계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경산병원분회는 투쟁으로 법원이 인수자에게 고용을 보장하게 만들었고 합의서를 작성하도록 만들었다. 인수자가 병원을 인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병원을 지키던 노동자를 모두 고용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인수자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이 들어가기로 약속 받았던 자리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고 우리는 아직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병원은 개원 첫날부터 수 십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해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1년이 넘도록 대화 한번 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하더니 병원 문을 열자마자 용역깡패를 선보였다. 환자는 병원을 드나들기 두려워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용역깡패와 마주칠 때마다 혐오감을 느낀다. 노조를 깨기 위해 억 단위의 돈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출한다. 급기야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말았다. 나를 포함한 조합원 3명을 ‘처리’해달라는 의뢰를 용역깡패에게 하기에 이르렀다. 방법도 참으로 흉악하다. 강간, 성매매, 교통사고 유발, 방화...
그냥 들어도 끔찍한 범죄인데 사람 살리는 병원이 단지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사람을 ‘처리’해 달라 의뢰했다. 이 사건이 폭로되자 병원의 부도덕성에 시민들도 분노하고 매일 울리는 우리의 투쟁가가 시끄럽다던 환자도 힘내라며 병원을 비난하고 있다.
 
병원이 문을 연지 4개월이 지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는 병원이 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빈대 잡으려고 초가 삼 칸 태운다’더니 갓 문을 연 병원에 역량을 다 쏟아도 모자랄 판에, 노조를 깨기 위해 많은 힘을 낭비하고도 결국 경영에 물의를 일으켰다.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는 병원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킬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자본 중심의 사회로 일그러져 있는 지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싸운다. 자본이 노동자와 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지 않고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병원을 병원답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투쟁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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