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에셀, 임희근 옮김, 『분노하라』, 돌베개, 2011.

“나는 언제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왔다.”

프랑스 지식인 스테판 에셀은 1917년생으로 올해 나이 94세이다. 레지스탕스 출신이고, 세계인권운동에 깊이 개입해 왔다. ‘아니오’라고 이야기하며 ‘자유롭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라고 주장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아파하고, 더불어 분노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왔던 듯하다. 그래서 그가 최근 발표한 『분노하라』(Indignez vous! · 앵디녜 부)에 눈길이 머문다.
 
“분노하라!”, 그의 선동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발간 7개월 만에 200만부가 팔렸다. 올해 5월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한국 노동현실을 직시하며 희망버스에 오른 이들’, ‘등록금문제에 분노하는 대학생들’에게 정신적 자극을 주었다. 언론인 홍세화는 “프랑스 지식인의 앙가주망(참여) 전통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상찬했고, 철학자 강신주는 “분노의 진정한 적은 두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무관심’과 ‘체념’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라며 읽기를 권했다. 신영복 교수는 “프랑스보다 분노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우리들에게 그의 외침은 정수리에 올려놓은 얼음조각처럼 가슴 서늘한 깨달음이 된다”고 했고, 조국 교수는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며 평을 대신했다.
 
한국어판 『분노하라』는 27쪽 분량의 짧은 스테판 에세의 글에 프랑스 편집자의 후기, 저자와의 인터뷰, 조국 교수의 추천사, 옮긴이의 말로 구성됐다. 총 86쪽 밖에 되지 않은 소책자이다. 언어는 평이하고 짧은 분량만큼이나 읽기에 부담이 없다. 스테판 에셀은 침해당하는 언론독립, 빈부에 따른 교육차별을 심각한 위기상황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부의 편중을 조장한 전지구적 금권정치의 폭력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세계인권의 문제도 지속적인 관심사다. 1948년 UN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기여했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분노하고, ‘한 국가 내에서 자행되는 반인륜적 범죄’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봐요. 그러면 우리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주제들 - 이민자, 불법체류자, 집시들을 이 나라가 어떻게 취급했는지 등등-이 보일 겁니다.”라고 환기했다. 프랑스의 현실이면서, 달리하면 한국사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성적 소수자들을 한국사회는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그들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분노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가?
 
『분노하라』는 왜 이토록 프랑스와 한국에서 반향을 일으켰을까? 그것은 격동의 20세기를 살아온 노지식인의 현실과 정세판단이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의 켜를 견뎌내며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펼쳐보였다. 그가 단호하게 “21세기 첫 10년은 퇴보의 시기”라고 한 규정에 나는 공감한다. 9.11사태 이후 미국이 조장한 테러리즘 공포는 세계에 군사적 재앙을 불러일으켰고, 금융권력의 폭력 속에서 세계경제는 위기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있다. 게다가, 인류의 운명마저도 자본의 셈판에 올려놓는 탓에 지구온난화 같은 생태환경위기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스테판 에셀은 “노동계가 창출한 부를 정당하게 분배”받지 못함으로써 ‘금권의 시대’가 도래해 ‘21세기 초입이 암흑’에 휩싸였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후퇴했고, 한국 보수정치세력이 이를 왜곡해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변질시키는 짓에 나는 분노한다. 나는 전면무상급식 실시 거부를 정치반격 수단으로 삼는 오만한 금권정치에 분노한다. 아집과 폭력으로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생사의 경계 위에 세운 한국자본주에 분노한다. 나는 스테판 에세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따른 신념 때문이라고 본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언론의 독립, 차별 없는 교육에서 그 토대가 형성된다.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도 ‘금권정치’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스테판 에셀의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직시하게 된다. 세상에 대해 격분하고 있는 ‘아픈 이들’에게 스테판 에셀의 말을 빌려 진심으로 위안을 주고 싶다. “희망을 안고서 분노하자. 희망을 놓쳐 버린 분노는 자기파괴의 불행을 낳는다. 분노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으로 이어지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오창은(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강의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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