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뜻 이어받아 노동해방 쟁취하자!”...마석 모란공원 전태일열사묘역 옆 안장

▲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가 땅 속에 뭍히셨다.7일 오후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에서 故 이소선 여사의 하관식이 이뤄지고 있다.이명익기자
▲ 故 이소선 여사의 무덤은 아들 전태일 열사의 무덤 바로 위에 안치되었다. 7일 오후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보이는 뒤편으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이 치뤄지고 있다.이명익기자
이소선 어머니를 아들 전태일열사 곁으로 보내드리는 장례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어머니는 어머니를 알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아들 전태일열사 옆에 안장됐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7일 서울대병원과 대학로, 청계천 전태일다리, 마석 모란공원 등에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을 거행했다. 민족민주인사들과 투쟁하는 노동자, 시민 등 추모객들은 이소선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당일 오전 8시 발인예배로 장례를 시작한 대오는 어머니 영정과 명정, 꽃상여를 앞세우고 대학로까지 행진을 벌였다. 신학철 작가가 어머니가 전태일열사 영정을 안고 오열하는 모습을 그린 영정이 맨 앞에 섰다. 어머니 영정 뒤에는 전태일열사가 상주가 돼서 어머니 영정을 들고 있는 최병수 작가의 그림이 배치됐다. 이어 이소선 어머니의 부활도는 이윤엽 작가가 그렸다. 어머니가 활짝 웃는 얼굴로 두 팔을 벌려 노동자 민중을 끌어안으려는 모습이다.

어머니 영정은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명정은 공무원노조와 서비스연맹, 민주일반연맹, 전빈련 등이 들었고, 이소선 어머니 꽃상여는 공공운수노조, 전북고속지회, 총연맹, 금속노조,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매고 행진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대표단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_전태일과 이소선의 뜻, 우리가 이어받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어머니 상여를 뒤따랐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전태일열사가 이소선 어머니 영정을 안고 있는 사진을 들고 함께 했다.

▲ 7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예배에 참가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예배에 참가한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와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오전 발인예배를 마친 故 이소선 여사의 운구가 영결식을 치르기 위해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이명익기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82개의 만장이 장례행렬 주변에서 휘날렸다. “노동자 총단결”, “어머니 행복하시지요?”, “노동해방 이소선”, “정리해고 없는 세상”, “우리모두 전태일이 되겠습니다”, “어머니, 태일이 만나 훨훨 춤추소서”, “어머니 환한 미소가 그립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 비정규직 철폐하자!”, “편히 쉬세요 노동자의 어머니”, “우리모두 전태일이 되자!”, “이소선 어머니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명박 심판!”, “아니다 아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민중 총단결로 인간해방 쟁취하자!”, “노동자는 인간이다!”, “단결하여 어머니의 노동해방 염원 이뤄내자!”, “어머니 당신은 별이십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 영결식에서 배은심 상임장례위원장(유가협 회장)은 개식사를 통해 이소선 어머니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표했다. 배 상임장례위원장은 “87년 8월12일, 제가 어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 어머니는 제 아픈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누구보다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다”고 말하고 “괴로움에 지쳐 자식을 따라서 죽고 싶었더너 저는 그 이후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어머니 모습을 밤낮으로 배우며 어머니와 함께 오늘까지 살아왔다”고 전했다.

이어 “2009년 11월13일 전태일 39주기 추모식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하나의 천에 구호로 이름을 나란히 적은 플랑카드를 보며 어머니는 ‘이제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억압받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며 무척 좋아하셨고, 우리도 ‘아! 어머니가 그렇게 원하시던 것처럼 양대노총이 이제 하나가 되겠구나, 어머니가 바라시는 대로 노동자가 하나가 되는구나’ 싶었다”면서 “오늘 어머니 장례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모시니 어머니 기뻐하시라”고 밝혔다.

배 상임장례위원장은 “아들을 꿈에서라도 한번만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그 말씀이 가슴을 찢는데, 그 보고 싶던 아드님을 만나셨는지, 얼싸안고 소리내 우셨느냐?”면서 “우리도 멀지 않아 어머니처럼 보고싶은 혈육들 곁으로 갈테니 그때 우리 다시 만나서 한울삶에서 오순도순 살 때처럼 못다나눈 이야기도 하고 다시 오순도순 살자”고 말했다.

이숙희 청계피복노조 전 조합원은 어머니의 길 낭독을 통해 이소선 어머니의 약력을 소개했다. 고은 씨가 이소선 어머니를 기리며 쓴 시 ‘당신의 죽음을 울지 않습니다’를 영화감독 여균동 씨가 낭송했다. (아래 표 참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조사에서 “어머니, 물푸레나무 채찍을 아직 갖고 계시나? 이명박정권과 조남호, 그리고 악덕자본들의 종아리를 걷어 올려 짝 짝 짝 짝 쳐야 한다,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동지와 여러 사람들을 살리러 가시겠다는데 너무 빨리 가셔서 쫓아갈 수가 없다”고 말하고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하고 절규했다.

고 조영래 변호사 부인 이옥경 씨는 조사를 통해 과거 이소선 어머니가 얼마나 따뜻하고 어떤 분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어머니는 전태일을 훌륭히 살려내셨고, 어머니의 고군분투와 사랑이 있었기에 전태일은 많은 이들 가슴에 살아서 지표가 됐다”면서 “부족했던 저는 어머니 영전 앞에 그저 드릴 말씀이 없고, 하늘에서 전태일과 조영래를 만나 재미있게 노시라는 말씀만 드린다”고 밝혔다.

▲ 7일 정오 장례식장인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온'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운구행렬이 노제를 치르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오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영결식에 참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유가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조가를 함께 부르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오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영결식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故 이소선 여사의 아들 전태삼씨가 호상 인사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오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영결식에 참가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공동 조사를 마친 후 헌화를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던 전태일의 외침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저는 황망하고 죄스럽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끝없이 이어지고 정리해고 칼날은 모두에게 겨누어져 있으며, 힘있고 돈 있는 자들 곳간은 차고 넘치는데 노동자 서민들은 내일의 희망조차 꿈꾸지 못한다”고 전하고 “죽지 말고 살아내려오라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아직도 85호 크레인을 지키고 있다”면서 눈물을 적셨다.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던 날 태일이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기쁘다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고 말한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라는 어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며, 전태일정신으로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어머니의 따뜻함과 열정으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김영훈 위원장은 “배가 고프다던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못먹이고 먼저 보냈던 전태일 곁으로 이제 고이 가시라”면서 “이 생에서의 고통과 아쉬움은 다 잊으시고 전태일 열사와 함께 저 높은 곳에서 이 땅의 노동자들을 지켜봐 달라”고 간곡히 말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어우러지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힘을 모아 차별없이 세상,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어머니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22년을 아들 전태일과 함께 살다 41년을 만인의 어머니로 산 이소선 어머니의 돌아가시기 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장기표 새문명연구원 원장의 호상인사에 이어 유가족을 대표해 이소선 어머니의 아들 전태삼 씨가 감사인사를 전했다. 전태삼 씨는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피해가지 말라시던 어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어머니를 보내드린다”면서 “또 장례기간 내내 전태일과 어머니를 눈동자 속에 담은 채 장례를 위해 애써준 여러분의 소중한 마음을 평생 잊지 않고 가슴에 품고 살겠다”고 밝혔다.

▲ 7일 정오'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의 운구행렬이 마로니에 공원을 거쳐 노제가 치뤄지는 전태일 다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정오'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의 만장행렬이 마로니에 공원을 거쳐 노제가 치뤄지는 전태일 다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정오'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의 운구행렬이 마로니에 공원을 거쳐 노제가 치뤄지는 전태일 다리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이명익기자
이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등 민주노총 노동자들과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등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임을위한행진곡을 합창했다. 영결식 사회를 맡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조선 직총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등 북측 단체, 일본 등에서 이소선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보내온 메시지를 낭독했다.

종교인들의 기원에 이어 유족과 전태일열사 친구들, 장례위원장단과 고문 등 순서로 헌화로 영결식을 마친 추모대오는 이소선 어머니 영정과 명정, 상여를 앞세우고 청계천 전태일다리로 1시간 여를 다시 행진해 노제를 지냈다.

민주노총의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전태일열사 동상 앞에 놓인 이소선 어머니 영정에 투쟁의 의지를 표명했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이소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왔고, 쌍용차지부는 2009년 77일 투쟁 당시 조합원들이 입었던 ‘함께 살자’가 쓰여진 셔츠와 화이바, 쌍용차 투쟁을 중심으로 펴낸 책 등을 바쳤다.

한진중공업지회는 가대위가 만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어머님, 기필코 승리하겠습니다”고 적힌 현수막을 어머니 영정 앞에 놓았고, 전북고속지회 조합원들도 지난해 12월8일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투쟁경과를 설명하고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하겠다고 결의했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조사를 통해 “오늘 이 시각, 어머니는 전태일다리 위에 계시는 것 같지만 사실 정리해고 멈추라는 희망버스에 계시고, 평화를 지키자며 강정마을에 계시고, 내 조국강토 독살하지 말라며 캠프캐롤에 계시고, 한미FTA 거두라며 국회의사당에도 계신다”고 말하고 “이승을 떠나면서 오히려 더욱 널리 더욱 멀리 이 나라 민초의 삶을 옥좨는 모든 곳에 횃불로 계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순 변호사도 “어머니는 근로기준법 책을 영원히 가슴에 묻고 분신한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셨다”고 말하고 “한진중공업 등을 통해 볼 때 한국 노동현실과 민주화는 전태일이 분신하던 당시와 다를 것이 없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약자를 지키며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어머니의 아픔과 희생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 야당 대표들은 각각 조사를 통해 이소선 어머니의 살아생전 하시던 말씀과 그 유훈을 받들겠다고 밝혔다.

청계천 전태일다리 노제를 마친 추모객들은 버스를 나눠타고 이소선 어머니 장지인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어머니 묘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 전태일열사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마련됐다. 조헌정목사와 이소선 어머니 영정, 길놀이패를 선두로 어머니 관을 따라 유가족과 추모객들이 뒤따랐다.

장례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동지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는 가운데 이소선 어머니 하관식이 진행됐다.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어머니에게 자신들의 결의를 담은 투쟁기념품을 드렸고, 유족은 이를 다시 양대노총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투쟁기념품은 어머니 묘소 앞 아크릴함에 보관될 예정이다.

▲ 7일 오후 서울 청계천 전태일 다리 앞에서 열린 노제를 마친 故 이소선 여사의 운구행렬이 하관식을 치르기 위해 마석 모란공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이명익기자
하관예배에 이어 색스폰과 플롯연주, 노래공연을 통해 민중가요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유가족과 전태일열사·어머니의 지인들, 그리고 추모객들 순서로 취토를 하고 조헌정 목사가 호상인사를 했다. 김남주 시인의 시 ‘조국은 하나다’가 낭송됐고,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소찬을 준비해 초헌·아헌·종헌 등 예법에 따라 제사를 올렸다.

장례 내내 유가족들의 오열이 계속됐다. 추모객들도 어머니의 살아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 삶을 되새기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를 가까이서 뵙고 지냈던 사람이나, 멀리서 바라보며 어머니에게서 힘과 용기를 얻었던 사람이나 모두가 어머니의 온힘을 다해 살아낸 그 삶의 경이로움에 깊은 경의와 조의를 표했다.

추모객들은 살아생전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며, 노동자민중의 단결투쟁을 결의하는 구호를 외쳤다. “어머니의 소망이다 비정규직 철폐하자!”, “비정규직 철폐하고 노동해방 앞당기자!”, “어머니뜻 이어받아 비정규직 철폐하자!”, “어머니뜻 이어받아 노동해방 쟁취하자!”, “노동자민중 똘똘뭉쳐 진보정당 통합하자!”

노동자들의 영원한 어머니이자 버팀목이었고 힘의 원천이었던 이소선 어머니가 이제 노동자민중의 가슴 속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마음 안에 영원히 남게 됐다.

▲ 7일 오후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에 참가한 故 이소선 여사의 유가족들과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오후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에 참가한 장기표 새문명연구원 원장이 오열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7일 오후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에서 故 이소선 여사의 묘지를 다지는 의식을 지켜보는 유가족들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명익기자
▲ 7일 오후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에 참가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故 이소선 여사의 영정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이명익기자

당신의 죽음을 울지 않습니다
_이소선 씨 별세에 부쳐

고은

고은이 세상에 종결은 없습니다
그토록 꿈꾸던
그토록 싸우면서 찾던
다른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눈 감기 전부터
당신 이후의 후유증이 와버렸습니다
눈 뜬 자
귀 펑 뚫린 자들이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가슴 칩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시대를 종결없이 다했습니다
엉엉 울고 싶어도
팍팍한 하늘 밑에서
슬픔이라면
오직 목구멍의 먹먹한 어둠입니다
언제나 찾아가던 당신
언제나 찾아오던 당신
언제나 거기 가면
가장 먼저 와 있던 당신이
이로부터 어디에도 없게 되다니
이게 무슨 노릇입니까

이소선 어머니
당신의 죽음을 울지 않습니다
저 먹통같은 시대 또는 개같은 시대에
생짜로 아들을 묻은 어머니로부터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내내
바람쳐대는 땅 위의 어머니였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한 아들의 어머니이자
한 아들의 무덤인 어머니이자
세상의 아들의 뭇 어머니로
뼈 앓으며 살 쓰라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에게는 혈육이었고
누구에게는 동지이고
누구에게는 호박넝쿨 울타리이고
누구에게는 심연이었습니다

거듭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 아들 이후의 아들이었고
당신 아들의 어머니 이후
세상의 동서남북 떠도는 어머니였습니다
거기 얼어붙은 평화시장 아스팔트 바닥
그 겨울 아래
당신의 고통은 기어이 불타올라
기어이 영광의 고통이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누워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서 있지 않았습니다
늘 숨차오르며 걸었습니다 내달렸습니다

사람이 사람 아닌 때로부터
당신의 언어는
사람이 사람일 때를 위하여
반생애의 미래 다 바쳐
시퍼런 달밤의 언어였습니다
어제는 위로였고
오늘은 독전督戰이었습니다
한 번 입을 열면
시작도 끝도 없이
진진한 옛 이야기 같은
오늘 하루의 이야기보따리 보고서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이기를
새벽같이
저녁같이 부르짖는
그 불덩어리 그때 이래
노동자가
노동자일 때
닭장 아니고 돼지우리 아니고
사람이 두 번 세 번 사람일 때
그때를 가슴에 담고
빈 몸으로 나아가는 길고 긴 행로였습니다

폭염의 세월이었습니다
혹한의 세월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바친 뒤
그 고통의 꼭대기에서 내팽개쳐진 이래
그럴수록 당신은
조상과 자손의 산천초목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아들의 생모로
만인의 성모로
여기도 저기도 마다 않고
몇 10년 입은 헌 옷차림으로 와 있었습니다

그런 10년 동안
또 10년 동안
또 10년
또 10년 동아
어느 골짜기인들 거르지 않고
바느질로 촘촘히 챙기고
어느 비탈인들
사방풍 안고 파도치는 어머니였습니다
고려의 어머니였습니다
동방의 어머니였습니다
누군가 약해지면 다그쳐
강한 누구이기를
누군가 물러서면 밀어올려
앞장서는 누구이기를
그러는 동안
언제 어디
당신으 마음 푸근한 밥상이고
질펀한 밭두렁 논두렁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몇백만의 당신으로
몇백대代의 당신으로 섬기는
내일의 추모를 해마다 바칠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 이소선을
우리의 속삭임으로 삼고
우리의 포효로 삼겠습니다
당신의 이름 이소선을
마침내 우리 역사에서
버젓이
버젓이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시의 80년을
우리 현대사 시간 속에 응결시킬 것입니다
가소서 가시는 듯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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