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
사고치는 집단 하나를 꼽으라면 군대가 빠질 수 없다. 천안함, 연평도 같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서 논란을 일으키는가하면, 심각하다 못해 유치한 사고도 종종 친다. 1만 원 짜리 USB(휴대용 기억장치)를 90여만 원에 구입해 조롱을 받았고, 난데없이 금서 목록을 만들고 베스트셀러까지 못 읽게 한 일은 쉽게 떠오르고, 최근에는 또 군대다운 칙칙한 정신교육이 도마에 올랐다. 군은 우리 사회 내부의 적으로서 ‘종북세력’을 운운하며 그 활동을 소개했는데, 이미 정부와 법원이 대표적인 국가폭력으로 인정한 ‘제주4.3항쟁’과 ‘인혁당’ 사건을 그 사례로 들고 민주화운동을 핑계로 세력 확산을 꾀했다는 내용이다. 이런 구제불능의 시대착오 집단이 징병제를 통해 국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니, 우리사회의 진보와 민주적 발전이 정체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단지 정치사상적인 영역에서만 군의 폐해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군에서 구타나 여타의 폭력을 경험해보지 못한 남성들이 극소수일 정도고 해병대 등 최근까지 군에서는 끔찍한 사망사건이 계속됐다. 그런데도 해병대를 마치 남성성의 상징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군에서 장성들은 특권이 당연시되며 섬기는 절대존재이고, 절대복종의 위계의식은 물이 스미듯 군대 밖으로 전이되었다. 상하 위계질서가 모든 조직의 존재방식인 양 인식되고, 하다못해 ‘고참’은 직장사회에서 상당한 권위를 행사하는 비공식 직급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군대의 남성 중심적 사고는 성차별까지 양산한다. 지난 21일 언론에 보도된 ‘성 군기’ 교육 사례는 그 해괴한 명칭만큼 가관이다.

군의 성희롱 대처법은 이랬다. 적당한 때를 봐서 상관에게 커피를 건네며 “혹시 제가 오해를 한 것 때문에 기분나빠하실까 걱정이 되지만… 물론 대대장님께서는 저를 아끼시는 마음에 나쁜 의도가 전혀 없으시겠지만,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라고 하란다. 상관이 억지로 술을 권할 경우에는 탁자 밑 빈 잔에 눈치껏 버리고, 마신 척하고 물잔에 뱉거나 물수건에 몰래 버리란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여군은 평소 애교스러운 말투나 농담을 자제하고, 일과 후에 몸에 붙는 쫄티나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여성이 제대로 처신만하면 성폭력은 없다는 편협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한 때 우리 사회는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통념이 있던 시대였다. 지금은 대체로 그렇지 않지만 혹자는 여전히 그런 주장을 펴고, 정치인들은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군 입대는 국민 모두의 신성한 의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군 복무가 결코 신성한 일이 아니며 되레 사람을 망치는 곳임을 누구보다 기득권세력과 정치인들이 일찍이 알아챘다. 병무청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내각의 군 면제 비율은 24.1%로 일반 국민 2.4%의 10배에 달했고 고위공직자의 군 면제비율 역시 10.9%이며, 18대 국회의 면제율은 16.2%로 일반인보다 7배나 높다. 그리고 한 언론사 조사에 따른 재벌가의 면제율도 32.2%에 달했다. 그럼에도 극우집단은 걸핏하면 군복을 걸치고 정부 옹호와 재벌 역성에 나서는데, 그들이 몸소 주장하는 바가 군대가 사람 만들어 준다는 것인지, 아직도 사람답지 못해 군복을 입고 다닌다는 것인지 한심할 따름이다.

한국군 병력이 65만 명에 달하고 매년 20만 명의 젊은이들이 군을 거쳐 간다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군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군대를 기피하는 현상은 어쩌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역설적으로 군 기피자에 대한 극도의 예민함을 보이는데 이는 군 복무가 신성한 의무라서가 아니라, 우리만 억울하게 뺑이 칠 수 없다는 자기방어로서 한 측면 당연한 정서이다. 최근 경비용역 폭력 알바에 나선 한 대학생의 인터뷰는 맹목적 군인정신이 자본주의의 맹목적 규율과 어우러져 어떻게 생존의식을 타락시키고, 이 사회의 부조리를 조장하는지 잘 보여준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까라면 깐다. 양심에 가책은 없다. 방학에 자리가 있다면 또 할 생각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