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깃발 쥐고 기필코 승리해서 현장에 들어가겠다”

전북지역 버스 노동자들 파업투쟁이 1년을 넘겼다. 어용노조 사슬을 끊고 인간답게 살겠다며 시내버스 5개사, 부안 스마일교통과 함께 전북고속 조합원들이 공동파업에 돌입한 것이 지난해 12월 8일. 시내버스는 합의서를 작성하고 복귀했지만 전북고속 황의종 사장은 합의를 거부했다. 전북고속 버스노동자들은 이겨서 현장에 들어가겠다며 파업을 잇고 있다. <노동과세계>가 12월12~13일 1박2일 간 전북고속 파업현장을 찾아 조합원들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 일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버스가 오면 앉는 자리는 더이상 운전석이 아닌 승객석 뿐... 운전을 할 수 없는 운수노동자들이 일년 넘게 버스정류장을 멤돌고 있다. 법원의 선고도 국회의원의 권고도 무용지물이 되는 '전북고속' 그 전북고속분회 남상훈 분회장은 오늘도 일터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이명익기자
“노동조합 파괴는 단순한 현장조직 파괴가 이니라 1년여에 걸쳐 키워온 우리 신념과 의지를, 행복, 희망이라 믿어왔던 나와 동료들의 무수한 관계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끔 파괴하는 일이다. 그게 황의종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다.” “장기파업의 주범, 법원판결도 무시하는 ‘악덕전북고속’ 사법부는 철저한 수사로 대표이사 구속하고 강력처벌하라!”, “노동탄압 임금착취! 황의종 구속하라!”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옆 골목 안에 자리한 전북고속분회 농성천막 외벽에 걸어놓은 현수막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현수막들이 모두 찢겨져 있다. 나중에 물어보니 조합원들이 집회하러 갔을 때 사측 용역이 그랬다고 한다.

“노동과세계입니까? 어서 오세요. 이리 들어와 앉으세요.” 상경투쟁 때도 간혹 만났던 정홍근 쟁의부장(45세)이 반갑게 맞아준다. 기다랗게 바닥을 만들고 장판을 깐 농성장. 이불 밑에 손을 넣어보니 꽤 온기가 느껴진다. “저기 식당에서 전기를 끌어와 쓰고 있어요. 전기세 내고요. 거기서 우리 투쟁한다고 밥값도 3,000원씩만 받아요.”

두런두런 하는 소리에 옆에서 이불 덮고 누워있던 최태훈 상황실장(43세)이 벌떡 일어나 대뜸 묻는다. “노동과세계에요? 왜 우리는 신문 안 보내줘요? 며칠 전에 대우타타 가서 처음 봤네. 우리 조합원들 보게 한 10부 보내줘요.”

“네, 그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오전 황의종 사장 만난 이야기 좀 해주세요. 황 사장이 나왔어요?”

“나왔죠. 만나긴 가끔 만나요. 노조는 만나는 걸 문서화하자고 하는데 사장은 만날 선복귀하라고만 하죠.” 사측은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해서 복귀를 종용한다. “이제 들어올 때도 되지 않았느냐? 나이도 있고 힘들텐데 들어와서 일해라”며 회유를 일삼는다.

오늘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쟁의부장은 단박에 그 문제부터 제기했다. “회사가 자꾸 우리 조합원들에게 전화해서 복귀하라고 하는거 알고 있다. 부당노동행위다. 당장 중단하라. 민주노조를 깨는 짓 집어치워라.” 제대로 된 교섭이 아니면 아예 사측을 만나지 말라는 주변의 지적도 있다. 남상훈 분회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그래도 만나서 얼굴을 보고 말을 터야 한다는 생각이다.

황의종 사장은 노조 지도부가 너무 강성이고, 조합원들이 복귀하고 싶어도 지도부 때문에 못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파업이 길어지니 자신도 여기저기서 압박을 많이 받는다며 하소연도 늘어놨다. 그리고 자주 만나서 신뢰를 회복하자면서 다음 만날 날짜를 잡자고 했다.

지도부가 사장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에게서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들려줄 이야기가 별로 없는 쟁의부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 조합원들이 더 강성이에요. 지도부가 업무복귀를 가로막는 게 아니에요.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버티는 거죠.”

▲ 12일 저녁 전주고속분회 조합원들이 촛불집회를 하는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전북고속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이명익기자
지난해 12월8일 시내버스 5개사와 부안 스마일교통, 전북고속이 공동파업, 공동복귀 원칙을 천명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시내버스 5개사는 민주노조 인정을 비롯한 몇 가지 합의를 거쳐 올해 4월 말 복귀를 결정했다. 하지만 전북고속 사측은 이 합의를 완강히 거부해 합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전북고속분회는 공설운동장에 있던 농성천막을 5월2일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겨왔다.

파업 1년이 넘은 지금 조합원들의 생계난이 극심할 것은 물으나마나일 터. 지도부는 조합원들에게 생계투쟁을 나가라고 했다. 건설현장 일용노동자로 일하는 조합원도 있고, 덤프트럭을 운전하거나 식당 주차장을 관리하기도 한다.

남상훈 분회장과 황태훈 상황실장, 정홍근 쟁의부장 등 3인방은 농성장을 지키며 투쟁을 지휘한다. 1년 넘게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분회장은 빚이 2천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정홍근 쟁의부장은 초등학생 둘에 유치원생까지 세 아이를 둔 아빠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말로 할까? 정광수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장은 물어보기도 민망하다고 했다. 몇몇 조합원들은 생계투쟁으로 번 돈을 조금 떼서 이들에게 담배 보루를 건네거나 따뜻한 점퍼를 사다 준다.

“6시 다 됐네. 나갑시다!” 전북고속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촛불집회가 매일 저녁 6시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다. 농성천막에서 터미널까지 200m 정도를 한 조합원과 함께 걸었다.

조합원들에게 ‘희동’이라고 윤환호 전북고속분회 대의원. 그러고 보니 정말 얼굴 생김새가 만화 ‘둘리’에 나오는 희동이와 흡사하다. 순하고 착해 보이는 그는 2001년부터 11년째 전북고속 버스 노동자로 일해왔다. 윤 대의원은 오늘 건설현장에서 생계투쟁을 하고 오는 길이다.

“한국노총 시절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어요. 그래서 힘들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우리가 민주노총으로 오기 전 한국노총 조합장 선거를 했는데 그 사람이 되고 나니까 근로조건이 더 후퇴하는 거에요. 통상임금과 퇴직금에 산정되던 ‘키로수당’을 ‘장거리수당’으로 바꿔 임금을 하락시키고, 자기 측근들을 골라서 포상으로 제주도 여행을 보내주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어요.”

윤 대의원은 자신이 더 일찍 20대에 노동운동을 접하지 못한게 아쉽다고 했다. “저는 아직 미혼이에요, 기혼자들보다 더 열심히 싸워야죠. 우리는 내내 회사와 어용노조에게 돈을 떼먹히고 살았어요. 우리가 싸우는 건 임금 때문도 아니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서에요. 기어이 이기고 들어갈 겁니다.”

전주시외버스공용터미널 앞에서 ‘전북고속 파업해결을 위한 시민연대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보조금 횡령! 노조탄압! 전북고속 사업권을 즉각 환수하라!”, “노동탄압, 노조말살, 임금착취 자행하는 황의종을 구속하라!” 전북고속 사측을 규탄하는 글귀가 적힌 피켓들을 놓고 촛불을 밝혀든다.

▲ 12일 저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전주고속분회 조합원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터미널 건너편 촛불집회 장소에 처음에는 2명이 앉아있더니 차츰 수가 늘어난다. 최태훈 상황실장이 마이크를 들고 이제 전주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시외버스터미널 입구에 촛불이 있다. 자세히 보니 한 여성이 촛불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길을 건너가 그가 들고 있는 피켓을 읽어봤다. “전북고속 버스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1년,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것이 죄입니까! 도민 여러분! 우리들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습니다. 힘을 모아 주세요. 전주시민”

“전주시민이세요?” “아, 네!”

김OO 씨(50세)는 지난 11월18일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시작한 후 촛불대오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생각에 터미널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11월22일부터 날마다 퇴근 후 이곳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놀랍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조합원들이 1년 넘게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극한투쟁을 해야 사람의 권리를 인정받는 이 세상이 너무 잘못됐어요. 저는 조합원들이 힘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에요. 이 문제는 조합원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두의 문제에요. 제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게 하려면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하잖아요.”

그는 민주노총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노동자는 하나라고, 항상 연대하라고 하죠. 사업장과 근무조건이 다르다고 노동자가 아닌 건 아니에요. 사무직이던 건설노동자던, 못배웠건 배워서 머리에 든 게 많건 계급은 다르지 않아요. 모두 노동자 계급임을 인식하고 단결하시길 바라요.”

다시 길을 건너 촛불집회 장소로 왔다. 그런데 대오 중간 쯤에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가 있다. 조합원들은 “꼬민아, 꼬민아”하며 만져주고 안아주고,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이를 앞에 두고 앉은 아버지는 양규서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아이는 19개월 됐고, 성과 이름이 ‘양아름찬꼬뮌’이란다.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지난해 12월 8일 파업을 시작할 때부터 연대했다.

“공공재인 시내외버스는 완전공영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곳도 있고, 전북지역에서도 완전공영제 공청회 등을 통해 도민들이 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버스노동자들 투쟁이 승리하면 그 모범이 전국지역으로 확산되겠죠.”

양규서 소장은 민주노총이라는 거대조직이 있으니 버스 투쟁 승리는 물론이고 완전공영제도 실현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끝까지 함께 할 거라고 약속했다.

저녁 7시 경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다시 농성천막으로 돌아오는 길. 한 조합원에게 말을 걸어봤다. 생계투쟁을 하다가 오는 길이라는 김유진 조합원(46세)은 조금 있다가 다시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두 달 전부터 학원과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김 조합원은 2009년 7월 전북고속에 입사해 파업 기간까지 합쳐 만으로 2년 반 정도 됐다. 전북고속 노동자로 일한 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한국노총 어용노조 행태를 알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다.

▲ 12일 저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한 전주시민이 촛불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한국노총 간부들 쳐다보기도 싫어요. 전 노동운동 경력은 없지만 정말 그럴 수는 없어요. 노조는 노동자 권익을 대표하고 월급을 떼 가면서 심부름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노동자 위에 군림하면서 노동자들 피땀을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에요. 전 그런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민주노총에 가입했어요.”

김유진 조합원은 전북고속 투쟁이 정당하다고 했다. 굴절되고 잘못된 사회 전체 시스템을 바로잡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투쟁이기에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혼자 사는 입장에서 생계투쟁을 하려니 동지들에게 미안하죠. 힘들어도 승리한다는 신념을 변치 말고 끝까지 싸웠으면 좋겠어요.”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온 조합원들은 농성천막 안에 모여앉아 회의를 한다. 희망버스 영화제를 언제 할지, 위장집회신고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가 오간다. 조합원들은 연대 동지들과 함께 상록수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하고 또다시 천막에 모였다.

간부와 조합원들은 전북고속 투쟁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과 결부되는 민주노총 사업과 투쟁, 그리고 민주버스본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낸다.

“사상 유례없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자행되고 있어요. 민주노총의 강력한 투쟁이 요구되는데 어느 순간 노동자 투쟁은 자취를 감추고 정치문제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노동운동이 사민주의식으로 전락했다고 봐요.”

“우리는 과감히 한국노총을 탈퇴했고, 조합원들은 왜 투쟁이 필요한지를 깨달았어요. 127명이 파업을 시작해서 1년이 지난 지금 80명이 남아 싸운다는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버스 노동자들 투쟁은 물론이고 전북지역을 통틀어 이런 투쟁은 처음이에요.”

“시내버스 조합원들이 복귀한 후 전북고속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상급단체 활동가들이 모두 떠나버렸어요. 전북고속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전북지역 전체가 깨집니다.” 실제 전북고속투쟁만 해도 상급조직 보다는 시민단체 연대가 더 활발하다며 조합원들은 서운한 마음을 내비친다. 이어지는 성토는 지역 국회의원과 도지사 등 민주당 권력 실세들에게로 옮겨간다.

“정동영 의원이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하자고 부산을 여러 번 가고 했지요. 그런데 정작 자신 지역구에서 일어난 일은 해결을 못해요. 자기 지역구 문제는 포기하고 민주노총과 형제인 것처럼 행세하는 걸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한때 조합원이 188명이었던 적도 있어요. 전북고속 노동자가 350명이니까 절반이 넘죠. 복귀하라는 사측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80명이 남아 민주노조 역사를 다시 쓰고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자부합니다.”

“황의종 사장을 로비의 천재라고 해요. 보조금까지 주는 버스회사를 관리감독해야 할 도청이 이 사태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다는 것은 뭔가 서로 발목을 쥐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물증이 없을 뿐이죠. 김완주 지사가 행정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조치를 취할 의사가 없다고 봐요.”

▲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차려진 전주고속분회의 천막농성장.이명익기자
버스투쟁 이후 많은 조합원들이 생계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른바 ‘돌싱’(돌아온싱글)인 조합원도 많고, 아이를 군대에 보낸 가정도 몇 곳 된다. 아이 학습지를 끊거나 적금과 보험을 해약한 집은 말할 것도 없다.

버스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에서도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다. “위원장께서 내려와서 선도투쟁하느라 애쓴다, 전국 지역의 복수노조 사업장들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격려해주면 정말 좋겠어요.”

“재능투쟁에 비하면 우리 1년 투쟁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죠. 하지만 시내버스와 달리 고속버스는 한 번 나갔다 하면 3박4일 때로는 더 오래 혼자 일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개개인이 개성이 강하고 단결이 어려워요. 그래서 80명이 남아 싸우는게 대단하다는 겁니다. 우리 투쟁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오늘 아침에 목욕탕에서 전북고속 한국노총 조합원을 만났어요. 그 사람 하는 말이 자기는 용기가 없어 못한다고, 동참은 못해도 지지한다는 거에요. 우리 투쟁 이후 사고비 자부담도 없어지고 돼지우리 같던 숙소도 훨씬 좋게 고쳤어요.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황의종 사장은 더 이상 안 된다고 해요.”

심각한 이야기들이 오가는데 갑자기 상황실장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도아 동지!” 예쁘고 앳된 모습의 한 여성이 농성장에 들어와 일행을 향해 미소를 보낸다. “도아 동지, 우리 도아 동지 왔네!” 상황실장은 계속해서 희색이 만연하다.

김도아 씨(29세)는 이곳 전북고속 뿐만 아니라 강정마을, 한진중공업 등 투쟁현장에도 늘 연대하는 전주시민이다. 그는 지난 7월 쌀과 김치 등을 싣고 전북고속 버스 노동자들 농성천막을 찾아왔다. 막걸리가 필요하다는 조합원들 농담과 채근을 듣고는 무주 막걸리공장에 다니는 친구에게서 막걸리도 받아왔다.

밤 10시30분 경 농성천막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날인 13일 오전 일찍 다시 농성천막을 찾았다. 당번인 최태훈 상황실장이 이불을 정리하며 아침을 맞는다. “우풍도 우풍인데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자니까 온몸이 바짝바짝 말라요. 몸 상태가 갈수록 안좋아지죠. 제가 워낙 건강한 체질인데 요즘은 술을 마시면 아침에도 잘 안깨고 그러네요.” 만날 이렇게 지내니 아무리 강철체력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 민주당 소속의 단체장과 지역구 의원이 있지만 전북고속 문제해결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이명익기자
정홍근 쟁의부장이 원래 아침을 안먹는다며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체인력 투입상황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터미널로 가니 그때까지 사진을 찍고 있다. 전북고속 차량번호를 적고 기사 이름도 확인해 적어놓는다.

전북고속이 대체인력을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한 예를 들자면 전주고속 5개 노선에 기사 6명을 배치하고 남는 1명을 전북고속에 투입하는 식의 편법이다. 전주고속은 전북고속의 자회사다. 전북고속 부사장이 전주고속 사장을 겸하고 있다. 사업자면허가 다르니 명백한 대체인력이다. 전북고속은 이미 대체근로금지가처분을 통해 대체인력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법원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투쟁 초기 대체인력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대체근로자와 조합원 간에 충돌도 있었다.

오전 8시30분 경 농성천막으로 돌아와 남상훈 전북고속분회장·민주버스본부 전북지부장(54세)을 만났다. 그는 4개사 지회장이 3월26일 전교조 옥상 고공농성 과정에서 35일 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남상훈 분회장 앞으로 고소고발 된 건이 40건이다.

남 분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16세에 전북여객 시외버스 차장을 시작으로 평생을 버스노동자로 살아왔다. 전북고속에서는 87년부터 일했다. “작년 12월 8일 파업을 시작하면서 우리 조합원들이 팔뚝질도 처음 해봤어요. 피켓을 드는 것도 얼마나 쑥스럽던지 얼굴을 가렸죠. 지금은 어딜 가나 연설도 잘하고 투쟁도 잘하고...”

그는 전북고속분회장이자 버스본부 전북지부장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시내버스 교섭이나 지역 버스 사업장 문제도 책임지고 일하고 있다. “시내버스가 복귀했지만 복귀해서 싸운다는 것만 다르지 투쟁은 계속되고 있어요. 그래도 현장에서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자랑스럽게 싸우고 있죠. 조합원들도 2/3 이상으로 늘었구요.”

전북고속 투쟁의 성과로 황의종 사장이 10월7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려나갔다. 교섭을 왜 안하느냐는 국회의원 질타에 그는 “한국노총 노조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교섭을 하자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용역을 왜 써서 파업조합원들을 위협했느냐고 하자 황 사장은 “주유소를 폭파할까봐 그랬다”고 대답했다. 전북고속이 용역과 노무사, 변호사 비용으로 쓴 돈이 10억이 넘는다.

천막 입구가 소란해 눈을 돌리니 가마니와 양동이를 든 사람들이 농성장으로 들어선다. “안녕들 하십니까? 어제 김장을 했어요. 그래서 쌀이랑 갖고 왔죠.” 황정구 진보신당 전주시당 부위원장이다.

“언제까지 (투쟁)하라고 쌀을 갖다 주느냐?” 남상훈 지부장의 농담 섞인 푸념에 모두가 웃는다. 지역에서 늘 꾸준히 연대하는 이들이 있고, 마음을 보태는 사람들이 있기에 버스 노동자들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으며 싸울 수 있다.

어용노조의 온갖 패악과 비리를 경험한 버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과거의 굴욕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투쟁의 길을 택했다. 전북고속 80명의 버스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쥔 채 아름다운 저항의 역사를 쓰고 있다.

▲ 정홍근 전주고속분회 쟁의부장이 13일 아침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전북고속의 대체인력 투입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12일 저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전주고속분회 조합원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정광수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장. 이명익기자
“전북고속 동지들 127명이 파업에 돌입한 지 1년이 넘었고 지금 80명이 남아 싸우고 있어요. 조합원들은 1명이 남든 2명이 남든 끝까지 싸운다는 의지를 갖고 있어요. 내년 설명절이 되기 전에 집중투쟁을 배치하고 해결지점 찾을 겁니다.”

전북고속분회 파업현장으로 향하는 길에 정광수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장(49세)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 4월 본부장에 취임해 1년 8개월 간 지역본부를 이끌었고, 이달 초 본부 임원선거에서 연임으로 당선됐다.

1년 넘게 완강히 계속되는 전북고속분회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부는 지역의 다른 현안들도 챙겨야 한다. 시내버스 조합원들이 복귀는 했으나 사측이 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을 해태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시내버스는 각 사업장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2/3 이상을 점하고 있어요. 힘적 우위를 차지한 거죠. 정류장 가면 민주노총 조끼를 자랑스럽게 입고 있어요. 버스 운전하는 열린 공간에서도 조끼를 입고 일해요. 버스에 구호가 적힌 피켓이나 손펼침막을 붙이고 다닌다. 한국노총 집행부와 개인적으로 엮인 일부 사람들 말고는 다 넘어왔다고 봐야죠. 현장이 바뀐 겁니다.”

또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지회 불법파견 투쟁으로 징계자가 수십 명 발생했고, 부안 군내버스인 새만금교통이 민주노총 조합원을 떨쳐내기 위해 폐업신고를 했다. 화섬 사업장인 아데카코리아는 노조 탈퇴공작에 조합원들 투쟁이 촉발되고 있다. 지역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는 곳만 해도 전북고속, 신성여객,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부안 새만금교통 등 4곳이다.

“전북고속 동지들 생계난이 심각해요. 어떤지 차마 묻지도 못해요. 그렇게 힘든데도 80명 넘게 남아 싸우니 대단한 조직이죠. 사실 시내버스랑 지난해 12월8일 공동파업에 들어갔지만 전북고속은 그 전부터 투쟁을 시작했어요.”

정 본부장은 지역본부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조직을 정비해서 한미FTA 투쟁과 함께 전북고속 투쟁 해결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노사가 가끔 만나기는 하는데 우리는 민주노조 인정을 복귀에 앞서 요구하고, 회사는 일단 들어오면 하는 거 봐서 신분보장이나 그런 건 선처할 수 있다고 하죠.”

전라북도가 전북고속에 보조금을 주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황의종 사장 목숨줄을 3개월 연장시키는 거라고 본부장은 말한다. “우리가 힘이 있으면 보조금 지급을 막을 수 있을텐데 안타깝죠. 사태 해결을 계속 지연시키는 셈이 되니까요. 버스 동지들이 지역본부에 주문하는 것이 많은데 선거 때문에 어려웠어요. 도 보조금 지급 시기를 놓고 최대한 동력을 모아 압박하며 투쟁하려고 합니다.”

정광수 본부장은 버스 투쟁으로 지역 연대가 살아났다고 전한다. 민주노총이 너무 강하게 나간다고 지적하며 고깝게 보던 시민사회도 버스대책위를 중심으로 연대대오를 형성했다. 그는 모든 투쟁이 어렵고 힘들지만 투쟁을 방기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 민주노총과 함께 싸운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저놈들은 악랄하게 민주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죠. 투쟁을 통해서 현장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미래는 없어요. 몸을 사리지 않고 같이 투쟁한다면 언젠가 이길 것이고, 노동자가 꿈꾸는 세상은 올 겁니다.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외롭지 않게 엄호하고 지지하며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민주노총이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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